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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06일 13시 10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1월 06일 14시 12분 KST

형 같은 소파를 사야지

한 달 전부터 이사 갈 집을 찾아 다녔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형도 같은 생각이어서, 틈이 날 때마다 밖에 나가 이 동네 저 동네 부동산을 부부구경단처럼 들쑤시고 다녔다. 물론 다닐 때마다 저희는 일심동체이다 못해 일심동성까지 된 부부입니다, 라고 하지는 못하고, 방을 나눠 쓸 선후배 사이라고 설명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 되도 않는 거짓말을 누가 믿었을까 싶기도 하다. 형은 날 쳐다만 봐도 눈에서 파블로프의 하트가 뿅뿅 나오는데.

어제는 계약한 새집에 가서 모든 벽을 줄자로 재고 왔다. 인터넷에서 찾은 새 집의 평면도는 워낙 조악하게 그림이 뒤틀어져 있어 도저히 직접 재보지 않고서는 안 되겠더라. 침대를 넣으면 책상 놓을 자리가 나올지, 냉장고를 놓으면 식탁 놓을 자리는 있는지, 거실에 소파는 길이가 어느 정도 되면 적당할지 아무래도 가서 직접 재봐야 알 것 같았다.

한 달 전부터 열심히 서울 동네방네 돌아다니면서 이사 갈 집을 찾아다녔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나 그 전 집도 너무 돈에 맞춰서 타협해 들어간 느낌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좀 더 우리가 진짜 살고 싶은 집을 찾아보고 싶었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형도 같은 생각이어서, 틈이 날 때마다 밖에 나가 이 동네 저 동네 부동산을 부부구경단처럼 들쑤시고 다녔다. 물론 다닐 때마다 저희는 일심동체이다 못해 일심동성까지 된 부부입니다, 라고 하지는 못하고, 방을 나눠 쓸 선후배 사이라고 설명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 되도 않는 거짓말을 누가 믿었을까 싶기도 하다. 형은 날 쳐다만 봐도 눈에서 파블로프의 하트가 뿅뿅 나오는데.

그렇게 열대여섯 집을 열심히 돌아다니고 결국 계약한 집은 지금의 우리 집에서 5분 떨어진 같은 단지의 다른 동 아파트. 서울 동서남북 돌아다닌 게 무색하게 이렇게 될 거, 발품을 들여 귀한 시간 허비한 게 너무 아까워 죽겠다, 는 생각은 사실 전혀 안 들고, 오히려 이렇게 돌아다녀보고 계약한 거니까 신 포도 없이 미련도 안 생길 것 같고 부지런히 잘했다 싶다.

계약금 걸 때만 해도 이사하려면 아직 한참 남았네 싶었는데, 어라, 지금 보니 내가 32살이고 이사는 한 달 남았네? 계약 마치고 그동안 한 거라고는 줄줄이 이어진 송년회에서 술 마신 것밖에 없는데, 폭탄 돌리기 하다 잠깐 딴 생각한 사이에 내 앞에 폭탄이 멈춘 것 같은 이 기분은 뭐지. 요즘 홈쇼핑에서 자주 애용하는 무료체험 기회처럼, 32살을 한 달만 이용해 보고 무료로 반품해버릴 순 없을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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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살도 32살이지만, 이사가 이제 한 달 남았는데 준비해야 할 건 리스트에서 지워진 게 거의 없어서 마음이 괜히 급해졌다. 리스트의 백만 가지 중에 지금까지 처리한 건 침대 하나밖에 없다. 동거 시작 전부터 형이 혼자 쓰던 더블침대에 둘이 잔 게 이제 5년이 넘었으니, 좁은 침대에서 폭 껴안고 자는 것도 좋지만 술 취한 날 침대에서 떨어지는 게 더 이상은 힘들어 바꿔야겠더라.

지난 연휴 때 그나마 여기저기 규모 있는 가구 거리의 매장들, 백화점 매장들을 찾아 다니며 마음에 드는 침대를 계약한 게 성과라면 성과다. 하지만 이것도 무슨 파랑새의 축복인지 연금술사의 저주인지, 논현동에 용산에 여기 저기 대형 매장, 백화점 다 알아보고 돌아왔는데 우리 동네 백화점에서 더 싼 값에 준다고 해서 10분 만에 계약했다. 물론 싸게 잘하긴 했는데 뭔가 억울해...

인상적이었던 건 가구거리 매장들을 거의 사립탐정 수준으로 샅샅이 조사하며 돌아다녔는데, 그 수많은 매장에서 한 번도 나와 형의 관계를 묻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다. 어차피 사지도 못할 500만원짜리 매트리스에 둘이 함께 누워 와, 여기서 매일 잘 수만 있다면 주 5일 근무도 불평 없이 할 수 있겠어, 라고 감탄하고 있는 순간에도, 옆에서 이 비싼 매트리스의 비쌀 수밖에 없는 재질과 구조를 설명해주던 직원분은 이 침대를 누가 쓸 건지, 우리 둘이 무슨 사이인지 한 번도 묻질 않았다. 부동산 다닐 때마다 애정의 체취를 숨기기 위해 선후배라는 위장향을 뿌려야만 했던 경험에 무척 피로했던 우리로서는, 침대 쇼핑하는 동안만은 예상 외로 500만원짜리 매트리스만큼 무척 안락했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가구 매장 직업군을 닮을 필요가 있다. 이분들처럼만 세상 사람들이 남의 일에 관심을 안 가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진짜 오지랖이 없는 거든 고도의 영업 전략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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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좁은 집에 살다가 평수 조금 넓혀 가는 입장이라, 이것저것 준비할 게 참 많다. 지난번 이사할 때도 꽤 이것저것 가구를 했었는데, 왜 이사할 때마다 사야 할 게 많아지지. 이제 크게 해야 할 가구는 소파랑, 테이블, 술장 정도인가. 아, 옷장도 한두 칸 더 해야 하는구나. 이놈의 옷은 버려도 버려도 왜 옷장에 다 안 들어가지. 이 정도면 친누나랑 살 때 자연 발생하는 듯했던 머리카락만큼이나 미스터리인 것 같아... 가구도 가구고, 가전제품도 사야 할 게 쌓여 있다. 할 일, 쓸 돈이 태산이네. 주말에 복권도 한 장 사야지 이거 원.

가전제품이야 워낙 형의 덕력이 충만하니 예산만 정해 주면 알아서 최선의 선택을 할 거고, 그래서 우리는 이제 소파를 함께 결정하러 가기로 했다. 침대 보러 다니면서 당연히 소파도 열심히 살펴봤지만, 아직 뭔가 부족해. 이 놈의 소파들은 어릴 때 나 좋다고 쫓아다니던 남자들도 아니고 잘생겼으면 불편하고, 편하면 못생겼어... 어딘가에 분명 나 같이 주제 모르고 외모와 내면을 모두 따지는 사람에게도 어울릴만한, 오래 같이 있을수록 나에게 더 잘 맞는, 계속 봐도 질리지 않고 항상 좋기만 한, 우리 형처럼 멋지고 편한 소파가 있을 거야.

그나저나 그제 영국 사이트에서 입욕제를 왕창 직구했는데, 어제 비어있는 새 집에 구경 가보니 아뿔싸 이 집 욕실엔 욕조가 없었구나. 이걸 어디에서 다 쓰지 하...

(www.snulife.com 에 게시된 글을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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