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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15일 07시 24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15일 14시 12분 KST

전셋값이 무슨 샤이니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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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되면 만나서 넷이 같이 저녁 먹고 수다 떨고 하는 후배 게이 커플이 있다(일전에 이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쓴 적도 있다). 이 꼬꼬마 친구들이 동거를 한 지 벌써 이 년이 되었다는 게 참 실감이 안 나지만, 집 계약이 끝나 이사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화살 같은 시간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각자 살던 친구들이 처음으로 살림을 합쳐 집을 얻었던 거니, 이 둘이 함께 하는 이사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서 와, 이사 지옥은 처음이지?

지난 주 이사를 마친 동생들이 집들이 오세요, 하고 연락을 해왔는데, 생각해보니 우리 집 계약도 이제 반년이 채 남지 않았다. 재작년 봄 그래도 꽤 괜찮은 조건으로 운 좋게 들어온 집이었지만, 요즘 같은 시기에 전세금이 와장창 오를 건 불 보듯 뻔한 일. 동네마다 집마다 다 다르기야 하겠지만, 요즘 보니 전세 재계약 때 이삼십 퍼센트 오르는 건 일도 아닌 것 같더라.

우리 동네 아파트 단지 안에서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산 게 벌써 오 년이다. 싼 전세 시세에 비해 남편이나 나나 출퇴근 하기에 교통도 괜찮고, 쇼핑하고 외식하기에도 환경이 나쁘지 않아서 들어올 땐 마음대로 들어왔지만 나갈 땐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덕분에 이래 저래 잘 지내온 고마운 동네이긴 한데, 아무래도 너무 한 동네에서만 살다 보니 좀 지겨운 것도 있고, 새로운 동네로 가서 적응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직장을 옮기거나 도시를 옮긴다면 스트레스도 크겠지만, 서울에서 동네 정도 옮기는 것 정도는 대단한 긴장 없이 적당한 활력소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역시나 이사할 때 이 시대 최고의 문제는 모다? 돈이지 돈. 둘이 열심히 버는데 왜 이놈의 돈은 모이질 않는 걸까. 굳이 큰 돈 아니라 해도 형이 1일 1인 1닭 하시는 치킨 값과, 내가 뇌 건강 포기한 듯 마시는 술 값과, 둘이서 사이 좋게 처발처발하는 화장품 값 조금씩만 아껴도 훨씬 더 모을 수 있다는 건 알지만... 치킨에 술에 몸에 안 좋은 걸 그렇게 먹고 마시는데 아무리 비싼 화장품 푹푹 찍어 바른다고 해서 피부관리가 제대로 될 것 같지도 않지만...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도 돈이 더 안 모인다. 돈을 모아도 모아도 전세금이 모이지 않는 건, 마치 옷을 사도 사도 옷장에 입을 게 없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고 보니 옷을 계속 사고 사고 해서 전세금이 안 모이는 건가...

마음 같아서는 거실도 좀 더 넓고 방도 하나쯤 더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러려면 출퇴근길의 편리성을 포기해야 할 거고, 좀 더 회사 다니기에도 좋고 놀기도 좋은 서울 시내 안쪽으로 가려면 집 사이즈를 늘리긴커녕 줄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모아놓은 돈이랑 오른 전셋값이랑 퉁 쳐서 지금 집이나 지금 동네에 계속 사는 것도 한 방법이긴 하겠다만, 이젠 인사도 곧 잘 주고 받는 동네 가게 사장님들이, 뭐지 저 남남 커플 이상해, 6년을 봤는데 늙지를 않아, 하며 지져스 크라이스트나 키아누 리브스로 의심할지도 모르니 아무래도 이젠 이 동네를 떠나긴 떠나야겠어.

서울 바닥에서 집 한 칸 얻어 사는 게 쉽지 않다는 건 하루 이틀 된 이야기도 아니지만, 요즘 들어서는 진짜 전셋값이 무슨 샤이니도 아니고 눈 깜빡 할 때마다 리즈를 갱신하고 있으니, 뭐가 잘못되어도 잘못된 게 아닌가 싶다. 아무리 우리가 소비에 죄책감이 조금 모자란 부부라 해도, 애 없이 차도 없이 둘이 버는 우리 집조차 이렇게 전세금 걱정에 부들부들 해야 하는 꼴이라면, 외벌이에 차 몰면서 아이들까지 키우는 집들은 참 말이 아닐 것 같다. 오, 리스펙트가 절로 나오네. 양 집안의 도움 없이 결혼해 살림을 하고 있는 거긴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부부가 우리뿐만은 아닐 테고, 그나마 반월세 살다가 이번 집부터 빚을 얻어 전세 들어온 처지인데 원금을 갚기는커녕 전셋값 올려줄 생각만으로도 살림이 벅차니, 이것 참 집 없는 설움에 눈물이 벅차네. 어릴 때 벅차게 산 벌을 이렇게 받는 건가 하...

신세 한탄은 신세 한탄이고, 어쨌든 서울 어느 동네로 이사를 가야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을지 이제 슬슬 형이랑 좀 고민을 시작해봐야겠다. 말이 반 년이지, 시간은 화살이고 운명은 정해져 있으니 금세 또 유목민처럼 이삿짐을 싸야 될 텐데, 미리 몇몇 동네 찍어서 거기엔 밤 늦게까지 하는 맛있는 밥집이 많은지, 아디다스 오리지날 매장은 도보로 접근 가능한지, 어이없게 소주 한 병에 오천 원이고 그렇진 않은지 알아봐야겠다. 사천 원까지는 봐줄 용의가 있다.

이따 시간 날 때는 회사 근처 무지 매장 들러서 동생들 집들이 선물로 줄 찻주전자나 사야겠다. 무늬 없는 백자로 사야지. 덩치는 산만한 애들이 미적 감각은 또 어찌나 까다로운지, 무슨 마음에 안 드는 무늬라도 있으면 도자기 굽는 장인처럼 우리 안 볼 때 깨부숴버리고 어머 김게이 형, 실수로 톡 건드렸는데 툭 깨져버렸어요 히잉 하면서 트롤 발을 내밀지도 몰라.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카톡으로 이거 사달라고 무지 백자 티포트 사진을 보내네. 쯧쯧, 역시 게이들 취향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