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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09일 13시 33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6월 09일 14시 12분 KST

한국에 태어난 게이 주제에

여자 남자가 결혼해도 시댁 처갓댁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파혼 이혼도 한다는데, 난 한국에 태어난 게이 주제에 무슨 복을 타고 나서 이렇게 좋은 가족들을 만났는지 모르겠다. 지난주 시골에 내려가기 전, 커밍아웃을 한 대학생이 가족에게 끝내 이해 받지 못하고 한강에서 투신 자살을 했다는 기사를 읽었었는데, 내가 누리는 이 행복이 온전히 내 운이 좋아서라는 생각에 한없이 감사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괜스레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내가 천의 하나로 복 받은 게이라면, 이 복 많은 게이가 차츰 백의 하나, 열의 하나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Pekic

형네 어머니가 입원을 하셨다. 그러니까 내 남편의 어머니, 다시 말해 시어머니인 듯 장모님 아닌 엄마 같은 어머니께서, 자주 안 좋았던 다리가 더 나빠져 고향 시골집 근처의 작은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형네 고향은 인구가 몇 만 안 되는 작은 동네다 보니 서울에서 내려가는 버스도 초저녁이면 끊긴다. 어쩔 수 없이 금요일 저녁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하기 위해 팀장에게 이렇게 말을 했는데, 딱히 거짓말이 아니잖아. 팀장님, 어머니가 다치셔서 집에 좀 내려가봐야 해서요. 오늘 조금만 일찍 퇴근하겠습니다.

버스 터미널은 흔히 말하는 읍내에 있고, 마침 병원도 읍내의 터미널 근처에 있어서 봄 밤 바람를 맞으며 살랑살랑 걸어갔다. 어머니가 계신 병원은 병실을 포함해서 시설 전체가 온돌로 되어 있었는데, 서울에도 이런 병원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무척 아늑하고 새로웠다. 신발을 벗어놓고 따뜻한 온돌마루를 지나 어머니가 계신 병실 문을 열자, 침대에 누워 나는 가수다를 보시던 어머니가 고쳐 앉으시며 우리를 온돌처럼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에구, 오느라 고생했지? 밥은 먹고 왔어?

병실에는 어머니 말고도 두 분의 아주머니가 더 계셨는데, 분위기를 보니 이미 다들 친구처럼 지내시는 모양이다. 어머니는 우리가 사 온 간단한 간식들을 보시고 옆 아주머니들께 나누어 드리라고 하신다. 포장된 빵이랑 과자 몇 개씩 드셔 보시라고 챙겨 드리니, 받으시는 아주머니들이 유난스럽게 고마워 하셔서 괜히 우리가 머쓱해졌다. 아유, 이거 몇 개 없는 데 괜히 우리 준다고 먹을 거 없는 거 아녀? 아니에요, 많이 사왔어요 드세요. 에유 고맙네 고마워, 잘 먹을게요잉.

이때 뒤에 계시던 아주머니께서 어머니에게 조용하고 별 일 아닌 듯 질문 하나를 던지신다. 그런데 총각들이랑 관계는 어떻게 돼유? 인사처럼 건네신 이 질문은 딱히 답이 어려운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뭐라 대답하기도 참 어려운 질문이었다. 뭐라고 해야 제일 적당할지를 빠르게 머리 굴려 생각하는 찰나, 어머니가 먼저 대답 하셨다. 관계는 무슨 관계, 둘 다 내 아들들이지. 아 그렇지? 그럴 것 같긴 한데 아무리 봐도 둘이 너무 다르게 생겨서 물어봤슈. 아까 왔던 아들이 큰아들? 갸는 둘째 아들. 첫째는 나중에 올 거고. 아, 그럼 아들이 넷이네? 딸도 하나 있고 그려. 아 그려유? 막내만 너무 다르네 그래. 형들은 다 큼직큼직 하구만 막내만 곱상하게 생겨가지고. 엄마는 막내가 제일 닮았네 그려. 어머니와 형과 나, 우리 셋은 묘하게 멋쩍으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아 함께 웃었다.

어머니는 계속 뭐라도 좀 먹으라며 귤을 까서 주시고 옥수수를 쥐어 주시고 음료수를 꺼내 주시고 하셨지만, 형은 우리 곧 치킨 먹을 건데 됐어요, 하면서 넣어 두시라고 어머니를 말렸다. 이제 박정현이 노래를 하려 할 때쯤, 병실에 먼저 왔었던 둘째 형님에게 치킨 사왔으니까 어머니랑 같이 내려오라는 전화가 왔다. 어머니는 주섬주섬 환자복 위로 외투를 입으시더니, 집에 좀 갔다 아침에 올게잉. 다들 잘 쉬어유, 하고 같은 방 아주머니들께 인사를 하신다. 어머니, 뭐 간호사나 그런 사람들한테 이야기하고 가야 되는 거 아니에요? 괜찮어 괜찮어, 내일 한 8시 전에만 들어오면 돼야. 병실이 온돌방이라는 것부터가 뭔가 심상치 않았는데, 간호사가 다른 층에 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외출 외박을 하시는 걸 보고서 아, 이게 시골 동네만의 정이구나 싶었다.

큰 형님네와 누님네는 다른 날에 찾아오신다고 해서, 시골집에 옹기종기 모인 건 우리 형과 나, 그리고 서울에 비해서는 비교적 근처에 사시는 작은 형님과 병원에서 무단 외출하신 어머니, 이렇게 넷이었다. 식탁에 옹기종기 차려진 양념 한 마리 후라이드 한 마리 치킨들을 두고, 형님이 예전에 내가 출장 나갔다 사와 드렸던 위스키를 꺼내신다. 이걸 언제 먹어볼까 하다가 너희들 온다길래 들고 왔지. 위스키에 치킨이라니, 이건 뭐 알탕에 모히또도 아니고. 하지만 어쩌면 형님은 동생 게이 커플을 앞에 두고서 그래, 익숙하지 않고 낯설다고 거부하는 건 분명 고쳐야 할 자세야, 시대착오적인 편견은 구축되어야 해! 라는 이미 스스로 체화한 자랑스러운 신념을 치킨과 위스키의 메타포로 우리에게 보여주시고자 했던 건 아닐까.

술 못 먹는 우리 형을 빼고, 독한 술 큰 거 한 병을 형님과 둘이 비우다 보니 늦은 아침이 되어서야 눈이 떠졌다. 형님은 새벽 일찍 어머니를 병원으로 모셔다 드리고 돌아와 다시 한 숨 주무시고 계셨는데, 세수 하고 이부자리 정리하고 했더니 이제 점심시간이었다. 형님을 깨워 어머니께 인사 드리고 올라가겠다고 하자 그럼 엄마한테 인사하고 점심이나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하신다. 줄 서서 먹는 짬뽕집을 갈까 그 동네 오면 다들 먹고 간다는 칼국수 집에 갈까 하다가 이왕 내려온 김에 형님이 사시는 도시까지 같이 차 타고 가서, 거기에서 밥 먹고 고속버스를 타라고 하신다.

다 친척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농촌이다 보니, 형님 차를 타고 읍내로 나가는 길에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친척 아주머니 한 분을 선뜻 차에 태워 같이 가게 되었다. 형님과 우리 형은 앞에 앉아 있고 뒤에는 내가 앉아 있었는데, 아마 이 아주머니는 쟤들은 알겠는데 얘는 누구지 싶으셨을 거다. 어머니 요즘 집에 안 보이시던데 서울 가신 거 아니었어? 아뇨 좀 다치셔서 읍내에 입원해 계세요. 저희도 어머니 뵈러 어제 왔어요. 어머, 그래? 어디가 다치셔서, 많이 다치셨어? 어느 병원에 계신데?

원래는 셋이 함께 병원에 올라가 몸 잘 챙기시라고 인사도 드리고 준비해 온 빳빳한 오 만원 짜리도 좀 쥐어드리고 그러려고 했는데, 이 친척 아주머니께서 본인도 읍내 나온 김에 어머니 뵙고 가야겠다고 굳이 함께 올라가자고 하셔서, 나도 같이 인사 드리러 가면 이건 도무지 설명이 복잡해지는 상황이라 그냥 올라가길 포기했다. 괜히 나 혼자 있으면 무안할까봐 형님은 난 뭐 여기 자주 올 건데 그냥 밑에 있을게, 하시며 우리 형에게 너나 올라 가보라고 하신다.

화창한 봄날, 작은 형님 댁 근처까지 가서 맛있는 점심을 얻어먹고, 맛있는 간식까지 배부르게 얻어먹고 나서야 우리는 서울에 올라왔다. 어떤 식으로 보면 어머니나 형님 같은 형네 식구가 내게는 시댁이기도 하고 처갓댁이기도 하지만, 이럴 때 보면 정말 그냥 내 집 내 식구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건 어머니가 먼저 나를 막내아들로, 형제들이 먼저 날 막냇동생으로 받아들여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도 잘 안다. 형의 가족들을 만나면 내게 얼마나 넘치게 베풀어 주시는지, 함께 있으면 정말 재미있고 마음이 편하고, 온돌방에 누운 듯 따뜻해진다. 이젠 형의 가족, 형네 가족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뭔가 불편할 정도로.

여자 남자가 결혼해도 시댁 처갓댁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파혼 이혼도 한다는데, 난 한국에 태어난 게이 주제에 무슨 복을 타고 나서 이렇게 좋은 가족들을 만났는지 모르겠다. 지난주 시골에 내려가기 전, 커밍아웃을 한 대학생이 가족에게 끝내 이해 받지 못하고 한강에서 투신 자살을 했다는 기사를 읽었었는데, 내가 누리는 이 행복이 온전히 내 운이 좋아서라는 생각에 한없이 감사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괜스레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내가 천의 하나로 복 받은 게이라면, 이 복 많은 게이가 차츰 백의 하나, 열의 하나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 괜히 또 술 한잔이 생각나는 밤이네. 다음 출장 때도 형님들과 마실 술 몇 병쯤 사와야겠다.

(www.snulife.com에 게시했던 글을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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