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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5일 11시 47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15일 11시 47분 KST

더 이상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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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나의 20대는 마치 멀티탭 위에 제멋대로 엉킨 코드선 같았다. 빈틈없이 빽빽했고 자칫하면 화제로 이어질 만큼 아찔한 모양이었다. 나는 친구들이 학교에 다닐 때 대학로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했다. 낮에는 극장을 청소하고 밤에는 공연을 하고 아침이 올 때까지 선배들의 빈 잔에 술을 채웠다. 이후엔 대학교를 두 번 씩이나 자퇴한 덕에 여름이나 겨울을 가리지 않고 학점을 채워야 했다. 대학원에 입학하고 난 후엔 더 빡빡해졌다. 공부와 일을 겸해야 했으니까. 물론 인생의 황금기라는 20대를 바삐 보낸 이가 나뿐인 것도 아니고 모두 내가 자처한 일들이었지만 나는 자주 피로했다.

30대가 되어서도 달라진 건 거의 없다. 오히려 더 일이 많아졌다. 직장을 다니고 주말에 일을 하고 여기에 블로그를 운영하고 취미생활을 하고 작게나마 사업까지 시작했으니 말이다. 지난여름엔 아르바이트로 작가 일을 맡은 적이 있는데 역시나 쉽지 않았다. 이미 투잡을 뛰고 있던 터라 몸도 정신도 고됐다. 오죽했으면 한 달간 눈코 뜰 새 없이 완성한 원고의 파일명이 '개 바빠'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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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대와 비교했을 때 나는 지금 훨씬 여유로워졌다. 비결은 단순하다. 나는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단지 부정문 형태라는 이유로 '꿈을 꾸지 않는다'로 오해하는 이에게 부연 설명을 하자면 기대와 꿈은 다르다.

그간 나는 수도 없이 사랑을, 우정을, 미래를 기대했다. 그리고 곧 그 크기만큼 실망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그저 바랄 뿐 일의 결과를 타인의 의지나 상황에 맡기는 꼴이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스스로 정해 놓은 기준치에 상대나 여건이 받쳐줘야 한다는 건 애당초 어리석은 바람이었다. 말장난 같지만 '기대한다'는 몸이나 물건을 무엇에 의지하는 모양의 '기대다'와 매우 닮았다.

반면 꿈은 내가 주체다. 과정도 결과도 온전히 나 자신에 달렸다. 나 또한 현실적인 걸림돌에 자주 넘어졌기에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지닌 의미를 잘 알고 있지만 분명 나를 다시 일어나게 하는 것 또한 꿈이었다.

꿈을 직업으로 제한한다면 나는 불행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다. 얕은 우물만 이곳저곳 파느라 딱히 내세울 만한 기술이나 경력이 없다. 그러나 나는 꿈을 꾸며 이를 이뤄가고 있다. 살아있다는 것이 곧 이를 증명한다. 누구라도 그러하다. 혹 깨닫지 못할 때에도 소망은 오늘을 살아내게 한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는 것, 스스로를 기준을 정하지 않는 것 등 때로는 하지 않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막연한 기대를 멈추고 나는 매 순간을 살고 싶다. 살아있는 한 꿈은 절대로 시들거나 꺼지지 않을 테니까.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