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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23일 11시 08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5월 23일 14시 12분 KST

광고인이 되고 싶은 졸업생들에게

여러분이 원하는 광고가 꼭 광고회사 안에서만 만들어지는 시대는 가고 있습니다. 더 다양하고 더 많은 '광고' 같은 것들이 만들어지고 필요한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의 '광고회사'라는 형태는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광고 업무에 따라 직종을 구분하는 카피라이터, 아트디렉터, PD, AE, AP 같은 명칭들도 무의미한 말들이 될지도 모릅니다.

'졸업'은 차가운 말이 되었습니다. 한 과정을 마친 뒤의 홀가분한 마음이나 정든 곳을 떠나야 하는 아쉬운 마음을 돌아볼 여유도 주지 않는, 더 이상 청춘을 유예할 수 없다는 차가운 선고의 말이 되었습니다. '졸업이 곧 실업'이 되는 시대에 '취준생'이라는 이름으로 학생과 직업인 사이의 진공상태를 견뎌내며 광고인을 꿈꾸는 분들의 질문을 간혹 받습니다. '광고회사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죠?' '전 PD가 되고 싶은데, 신입사원으로 PD뽑는 곳이 없어요.' 수업이 끝난 빈 강의실에서나, 주저주저하며 새벽에 써 내려간 메일로 받는 질문에 명쾌한 답을 주기란 어렵습니다.

오랜 경기침체는 다른 업종뿐만 아니라 광고분야의 취업도 더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절차를 진행하는 회사가 사실 몇 되지 않고, 광고회사들은 교육비용이 많이 드는 신입보다는 경험으로 검증된 경력사원을 선호하는 추세입니다. 광고업종의 취업이 어려운 것은 1차적으로는 경기침체가 기업들의 광고비지출하락으로 이어지고 광고회사의 매출감소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경기침체는 어려운 취업시장의 공통된 원인이겠습니다만, 광고분야의 경우 광고업 자체만의 또 다른 원인도 있습니다. 광고일 하는 사람들끼리는 농담 반 진담 반 '광고는 사양산업'이라고들 합니다. 비용이 많이 드는 공중파 TV광고중심의 매출수익구조를 가지고 있는 기존의 광고회사는 온라인과 모바일에 의한 미디어환경 변화에 근본적인 구조자체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9시 뉴스 앞에 모여 저녁을 먹거나 주말연속극 앞에서 수박을 나눠먹던 사람들은 흩어졌습니다. 몇몇 신문 앞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손톱을 깎던 사람들도 사라졌습니다. 모두들 노트북이나 태블릿, 스마트폰을 들고 각자의 방으로 사라졌습니다. 위세 등등하던 공중파TV와 주요일간지들은 시청률하락과 구독률 하락으로 힘이 빠졌고, 기업 입장에서는 비싼 매체비를 써가며 고비용 커뮤니케이션활동을 할 이유가 적어졌습니다. 그 대안으로 온라인광고, 모바일광고, 주문형컨텐츠채널, SNS, 블로그, 바이럴동영상 등등으로 흩어진 소비자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영역은 넓어졌고, 광고예산은 잘게 쪼개졌습니다. 거대 광고회사들의 매출은 줄어들었고 신입사원 채용도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네, 기존형태의 광고는 이미 사양산업입니다. 대형 광고회사의 신입사원이 되는 기회는 앞으로 더 줄어들지도 모릅니다. 여기까지가 현실입니다.

'광고'는 사양산업이지만 '광고 크리에이티브'를 필요로 하는 곳은 더 많아졌습니다. 얼마 전에 경쟁프레젠테이션에 초대받아 오리엔테이션을 받으러 간 자리에서 저는 재미있는 광경을 봤습니다. 네 군데의 회사가 초대받아 한 자리에 모였는데 일반적인 개념의 광고회사는 단 한 곳뿐이었고 나머지는 웹 에이전시, 온라인 매체사, 그리고 SNS 채널을 관리하는 회사였습니다. 기존의 개념으로 보면 나머지 세 개의 회사는 참여할 수 없는 프로젝트입니다만, 각각의 회사가 본연의 업무영역에 '컨텐츠' 제작능력을 보유하면서 광고까지 업무영역을 넓힌 회사들이었습니다. 이제 광고가 꼭 광고회사에서만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광고가 꼭 공중파TV에만 나오는 시대가 아니니까요. 광고는 친구가 보내준 웃긴 동영상 속에, 자주 가는 온라인 카페에, 타임라인에, 새로 설치한 앱 속에, 공짜로 즐기는 게임 속에, 내가 결제한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채널을 돌리는 막간에, 지금 읽고 계시는 이 글의 왼쪽하단에서 거치적대고 있습니다. 새로운 미디어와 소비자의 접점이 다양해질수록 광고의 형태도 다양해졌고 광고를 만드는 곳도 다양해졌으며 '광고 크리에이티브' 역량이 필요해진 일들도 많아졌습니다. 이것은 희망입니다.

여름 인턴채용과정에서 떨어진 학생들에게, 하반기 공채과정에서 탈락해 실의에 빠진 분들께 제가 고민 끝에 드릴 수 있는 말은 '방향'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광고가 꼭 광고회사 안에서만 만들어지는 시대는 가고 있습니다. 더 다양하고 더 많은 '광고' 같은 것들이 만들어지고 필요한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의 '광고회사'라는 형태는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광고 업무에 따라 직종을 구분하는 카피라이터, 아트디렉터, PD, AE, AP 같은 명칭들도 무의미한 말들이 될지도 모릅니다.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광고산업과 그를 둘러싼 미디어환경의 변화를 예의주시하시면서 '방향'설정을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광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로 설정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어떤 회사에 어떤 업무를 담당하시더라도 '크리에이터'라는 등대를 기준으로 '방향'을 점검하시면서 업무경력을 쌓아나가 보십시오. 때론 등대에서 멀어질 때도 있고 때론 운 좋게 원하는 방향으로 조류를 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기회와 때를 기다리며 먼 항해를 하다 보면 언제고 원하던 항구에 도착할 수도 있고, 아니면 더 운 좋게 크리에이터의 신대륙을 발견할지 누가 알겠습니까? 중요한 건 어떻게든 지금 첫발을 내딛는 것이고,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알고 출발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오래 가야 할 길 여러분만의 방향을 가르쳐줄 등대를 찾기를 기원하면서 좀 늦었지만 다시 차가운 말을 건네드립니다.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자신만의 방향을 찾길 기원하는 부적일러스트> ©엄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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