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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1월 07일 11시 04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3월 09일 14시 12분 KST

성형과 디자인

<몰라보게 아름다워지기>로 결심했을 때는 긴 시간을 통해 축적된 인식의 자산을 일부 포기하고서라도 새로워지겠다는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아름다워지기>로 결심할 때는 눈에 띄게 변하고 싶다는 욕심은 자제하면서도 전통의 자산이 오래되고 낡지 않도록 소중히 다듬어 나가겠다는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방법 사이에는 '태평양'이 놓여있습니다.

지하철 신사역의 출입구는 성형외과 광고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신사동에 있어 출퇴근길에 성형외과 광고를 자주 보게 되는데,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 보여주며 이렇게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속삭이는 광고는 크게 두 가지 스타일의 성형방법으로 나뉘어져 보입니다.

첫째는 미켈란젤로가 조각을 하듯 '아름다움을 가리는 불필요한 부분'을 걷어내어 숨겨졌던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찾아주는 방법입니다. 조금 강한 턱 선을 부드럽게 하거나, 살짝 처진 코끝을 올리고 콧망울을 줄여 안면의 입체감을 살리는 것, 쌍꺼풀수술과 함께 아이라인을 앞뒤로 조금 넓혀 눈매를 서글서글하게 만드는 방법 등이 여기에 속할 듯합니다. 본래의 이목구비가 가진 기본적인 맥락을 유지하되 지금 시대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미의 기준에 근접하도록 부분부분의 매력을 높여 <자연스럽게 아름다워지는 방법>입니다. 둘째는 원래의 얼굴이 지닌 모든 맥락을 극복해버리고 가장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외모를 구현해주는 방법입니다. 그야말로 엄마도 아빠도 <몰라보게 아름다워지는 방법>입니다. 이전과 이후의 변화가 커서 과연 '의느님'이란 말이 그냥 생긴 말이 아님을 알게 해주는 방법입니다만, 우리 시대가 지향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이 다양하지 않기 때문인지 거리에 유사한 인상이 많아지는 단점도 있어 보입니다.

성형관련 온라인카페에 정통한 한 지인의 말을 들어보면 아름다워지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워지길 원하는 사람들>과 <몰라보게 아름다워지길 원하는 사람들>로 크게 나뉜다고 하고, 의사선생님들의 성향 또한 두 가지로 크게 스타일이 나뉜다고 하니 이제 성형 '티가 난다, 안 난다'는 논쟁은 묵은 이야기가 되었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선택의 문제가 더 중요하게 생각되는 때인 듯합니다.

© KAIST, ㈜ 디자인파크커뮤니케이션즈

작년 카이스트에서 학교 로고를 바꾸기 위해 시안을 공개하자 논란이 있었습니다. 기사를 찾아보니 카이스트의 로고변경프로젝트는 재작년인 2013년부터 시작되었더군요. 처음으로 로고시안이 공개된 것이 작년 초였는데 이때는 내부구성원들 사이에 로고변경 프로젝트 자체에 대한 공감대가 잘 형성되지 않은 상태였던가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전의 로고에 비해 확 바뀐 새로운 로고시안에 부정적이었고 기존 로고에 애착을 더 보이며 로고에 큰 변화를 줄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 의견을 반영해 새로운 시안이 공개된 것이 거의 일년이 다되어가는 작년 말경이었는데 이 때는 또 기존의 로고와 너무 비슷하다며 이렇게 비슷하게 만드는데 그 많은 돈을 쓴 것이냐, 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네티즌들이 직접 로고시안을 만들어 온라인에서 투표에 부치기도 했고 로고와 함께 제안된 캐릭터가 의도치 않게 주목을 받으면서 패러디물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작년 말에 새로 제시된 안은 기존 카이스트 로고를 자연스럽게 유지하며 만들어졌습니다. 영문글자의 파란색이 더 진해져 인상이 또렷해졌고 글자 사이의 자간이 넓어져 이전보다 시원한 느낌을 주면서도 글자의 비례를 가로로 넓혀 안정감을 확보했습니다. 손이 많이 간 글자는 S자입니다. 기존의 S자 안쪽의 라인은 각이 꺾여서 인상이 투박한 반면 새로운 S자는 사각을 확실하게 다듬어 부드러우면서 세련된 인상을 줍니다. A자도 시술을 많이 받은 글자입니다. 하단의 가로획 왼쪽 끝부분을 과감하게 깎아서 날렵하면서 상쾌한 인상을 줍니다. 이 부분은 앞 글자 K의 사선과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기존의 로고보다 역동적인 느낌을 줍니다. 하단의 가로타원형은 평면적이었던 기존의 단색에서 벗어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색이 점점 더 진해지며 자연스럽게 시선에 따라 변화를 자아내 로고 전체가 앞으로 다가서는 시각적 동세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처음 제시된 카이스트 로고시안은 <몰라보게 아름다워지기>를 권했습니다만 내부구성원들의 사전 공감대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격한 변화는 거부감을 들게 했고 외면 당했습니다. 이어서 오랜 시간 다시 공을 들여 공개된 로고는 <자연스럽게 아름다워지기>위해 변화를 최소화하면서도 세부적인 디테일에 공을 들였습니다만 안타깝게도 내부구성원들에게 의미 있는 수준의 변화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다시 한번 논쟁에 휩싸였습니다.

<몰라보게 아름다워지기>로 결심했을 때는 긴 시간을 통해 축적된 인식의 자산을 일부 포기하고서라도 새로워지겠다는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아름다워지기>로 결심할 때는 눈에 띄게 변하고 싶다는 욕심은 자제하면서도 전통의 자산이 오래되고 낡지 않도록 소중히 다듬어 나가겠다는 결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방법 사이에는 '태평양'이 놓여있습니다. 카이스트의 로고프로젝트는 수고롭게도 끝내 태평양을 건너고 말았습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항로를 수정해 '태평양'을 건너야 하는 상황은 키를 쥔 사람이나 노를 젓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힘든 일입니다. 애당초 북극으로 갈지, 남극으로 갈지 정도는 결정하고 출항했다면 하지 않아도 되었을 수고로움이 저 같은 구경꾼까지 안타깝게 만들었습니다. 성형수술을 하는 사람도 그 정도는 정하고 의사를 만날 테니까요.

<코만 다시 하자, 코만!> ©엄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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