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6년 01월 12일 11시 58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1월 12일 14시 12분 KST

[명화를 빛낸 장신구] 신성함을 돋보이게 하는 금관

그지없이 엄숙하지만 황홀하고 신비로운 기운이 화면 전체에 피어올라 숨소리 내는 것마저 조심스럽습니다. 처음에는 황금 빛 세례를 받은 듯 성스러운 몽롱함에 빠졌다가 오래 바라보면 황금의 바다에 익사할 것 같은 당혹감까지 엄습하지요. 시에나화파를 이끌던 두치오(Duccio)의 수제자인 마르티니는 머리카락같이 가는 금실로 수를 놓은 듯 정교하고 우아하게 '수태고지'를 묘사했습니다.

[명화를 빛낸 장신구] 신성함을 돋보이게 하는 금관

annunciation

시모네 마르티니(Simone Martini 1284-1344), 수태고지 Annunciation, 1333

그지없이 엄숙하지만 황홀하고 신비로운 기운이 화면 전체에 피어올라 숨소리 내는 것마저 조심스럽습니다. 처음에는 황금 빛 세례를 받은 듯 성스러운 몽롱함에 빠졌다가 오래 바라보면 황금의 바다에 익사할 것 같은 당혹감까지 엄습하지요.

마르티니는 이탈리아 피렌체 인근의 중세도시 시에나(Siena) 출신입니다. '시에나 화파'는 중세의 화풍을 유지하면서도 극도의 우아함과 섬세함을 특징으로 자신들만의 화풍을 구축했습니다. 시에나화파를 이끌던 두치오(Duccio)의 수제자인 마르티니는 머리카락같이 가는 금실로 수를 놓은 듯 정교하고 우아하게 '수태고지'를 묘사했습니다.

수태고지는 대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성령에 의해 잉태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역사적인 이벤트를 말합니다. 이 엄청난 메시지를 가지고 방금 하늘에서 내려온 온 대 천사 가브리엘은 미처 날개도 접지 못했습니다. 휘날리는 망토자락에서 그의 쿵쿵하며 뛰는 맥박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 같네요.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가지를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는 8명의 천사가 만든 원형 속에서 내려오는 '성령 비둘기'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가브리엘의 "우아한 마리아여, 그대는 성령을 받은 유일한 여인입니다" 라는 따끈따끈하고 성스러운 메시지는 마리아의 마음에 화인(火印)처럼 찍히는 듯합니다.

보석 라피스 라줄리를 갈아 만든 깊은 푸른색 옷을 입고 권좌에 앉아있는 동정녀 마리아! 그녀는 이 엄청난 통보에 놀라서 읽던 책을 멈추고 옷깃을 여미며 긴장에 휩싸여 천사를 바라봅니다. 놀라움의 진동으로 마리아가 쓰고 있는 왕관도 잠시 흔들리는 듯 합니다. 핏빛 루비와 하늘처럼 푸른 사파이어 등으로 장식한 금관은 그녀의 단아하고 성스러운 이미지를 한결 높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네요. 동시에 운명에 조용히 순응하는 그녀의 고고하고 견고한, 영원불멸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자세히 보면 올리브나무 가지의 관을 쓴 가브리엘도 산호와 진주 등 보석으로 장식한 깜찍한 금관을 쓰고 있습니다. 장신구를 매체로 성스러움의 예(禮)를 고조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가브리엘과 마리아 양 옆에는 두 성인이, 두 사람 사이에는 백합꽃이 자리하면서 마리아의 지고지순함을 증언합니다.

마르티니의 작품세계에 도도히 흐르는 우아한 감수성과 감미로운 색채, 시적인 감성과 숭고함은 우리의 마음을 오래 붙잡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2차원의 납작하면서도 뾰족뾰족한 고딕양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지만 이미 용트림을 시작한 르네상스 운동의 미동을 감지하게 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 작품에서 얻은 성스러운 감동은 기독교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희 박물관의 주요 소장품인 십자가를 수집하는 귀한 동기를 부여해주었습니다. 감동적인 그림 한편의 힘이 한 사람의 인생의 지평을 넓혀주고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준 것이지요.


* 이 글은 동아일보에 게재된 글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