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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1월 29일 06시 27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1월 29일 06시 27분 KST

다리 밑에서

새로 이사한 집 위에는 마포대교가 있고, 아래에는 한강이 있다. 나의 방은 반지하인데, 반지하에서 사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4년 전에는 반지하의 창문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와 자동차의 불빛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지만 지금 지내는 곳은 창문에서 쇠창살과 회색 담장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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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이사한 집 위에는 마포대교가 있고, 아래에는 한강이 있다. 강 건너로 국회의사당의 동그랗고 빛나는 뚜껑이 보인다. 나의 방은 반지하인데, 반지하에서 사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4년 전에는 반지하의 창문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와 자동차의 불빛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지만 지금 지내는 곳은 창문에서 쇠창살과 회색 담장만 보인다. 창문 위에 빨간색, 주황색, 파란색, 노란색 물감이 나선형으로 스민 커다란 천을 붙여놓았다. 두꺼운 천을 붙이자 방에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다.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24시간 같은 조명이 켜진 전시장 같다. 전기장판과 보일러를 켠 이곳에서 하루 종일 쓰고 그리면서 겨울을 나고 있다.

날씨가 조금 풀린 날 집 주변을 산책했다. 고개를 90도로 들어야 꼭대기가 보이는 아파트들이 주변에 빼곡하다. 길쭉한 아파트에는 모두를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은 네모 칸이 셀 수 없이 많다. 저 많은 집 중에 왜 내 집은 없을까? 내 키를 압도하는 건물 사이에서 나는 불개미가 된 것 같다. 불개미로 태어나게 한 부모를 떠올리다가, 1000채 이상의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소문이 떠오르고, 남아도는 집을 모아 집 없는 사람에게 집 한 채씩 나눠 주는 나라를 상상하다가, 로또 복권에 새길 번호 여섯 개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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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려면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썼는데, 내게 나만의 방은커녕 집도 없어 평생 월세에서 탈출할지도 알 수 없다. 물론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며 사는 방식이 좋다. 이런대로의 월세 생활에 적응도 됐고 나쁘지 않지만, 거창하지 않은 바람도 있다. 언제 틀어도 따뜻한 물이 잘 나오고, 위험한 열기구에 의존하지 않고도 보일러 폭탄 걱정 없이 겨울을 날 수 있고, 푹푹 찌는 여름에 숨을 쉴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에어컨이 달려 있는 방. 세 평이어도 좋으니 그런 방이 있다면 월세 내는 날이 다가올수록 축 처지는 바이오리듬도 달라질 텐데. 지금 사는 집은 웃풍이 있고 햇빛이 들지 않지만 전기장판과 보일러 3번 온도로 그런대로 겨울을 날 수 있다. 그러나 작은 에어컨 하나 없고 환기가 잘 되지 않는 반지하에서 다가올 여름을 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때가 되면 다시 짐을 싸서 어디론가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편함에는 악어가 입을 벌리고 있다. 대출 광고 전단지가 우편함마다 채워져 있고, 모르는 이름에게 날아온 대출 반납 독촉 딱지가 붙어 있다. 등 뒤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지금 바로 대출 가능, 내 집 마련, 꿈을 포기하지 마세요!' 밑으로 내려갔으면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는 행복론과 성장 시나리오를 따르지 않고 건물 밑을 배회할 거라고 말하곤 했지만, 굳이 힘주지 않아도 내 몸은 밑에 매달려 있다.

재난은 부서지기 쉬운 곳에서 시작된다. 여러 재난 방송을 들으면서 마음이 들쑤셔진다. 위기는 예외상황이 아니다. 아래에서만 보이는 풍경이 있다. 누군가 쓰던 책상 뒷면에서 오래된 껌딱지와 허술한 책상의 구조틀을 보는 것처럼. 거대한 다리 밑에서 볼 수 있는 금이 간 콘크리트, 검게 녹슬어가는 쇳덩이들이 있다. 모든 게 완결되었다는 듯, 마치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처럼 빛나는 건물의 뚜껑 아래가 보이는 나의 방이다. 보일러를 틀어도 글을 쓰는 손가락이 차갑다.

* 이 글은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