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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6일 06시 52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27일 14시 12분 KST

인간이 된 괴물들

뉴스1

세월호 참사 당시 언론은 보험액이 얼마인지, 유병언 아들이 동거하다가 무엇을 먹었는지에 대해 말했다. 사람들은 안전에 불안을 느꼈다. 수학여행에 보내지 말아야 한다, 혹은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듣지 말라고 가르쳤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죽음이기 때문일까. 그들의 죽음 앞에서 대한민국은 참 잔인했다. 타자의 고통은 일상적인 재난 방송이 된 걸까.

얼마 전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 뉴스를 듣고, 사람들은 말했다. "조류독감 유행이래, 조심하자." "치킨은 그래도 먹을 거야." "경제적 손실이 엄청나대." "대기업은 좋다는데?" 왕왕 한 말들 가운데, 땅속에 파묻힌 2500만개의 심장은 없다. 인간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을까. 사람도 먹고살기 힘드니까, 내 오늘이 고통스러우니까, 인간의 존엄이 우선이니까.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는 타자의 고통 앞에서 두려움에 떨거나, 미래나 과거를 계산한다. 애도는 너무도 멀다. 이것이 인간인가. 아, 인간이라서 그렇다. 예수의 생일 크리스마스다. 인간은 공룡보다 비겁하다. 비겁하기 때문에, 자연과 비인간 동물을 학살하면서도 아름다운 종교와 도덕에 취할 수 있다. 비겁은 인류의 동력이다.

2500만번의 비겁이다. 살아생전 햇볕 한 줌 받지 못한 존재들이 처음 햇빛을 만난 날 땅속에 묻혔다. 인간을 위해서, 인간 때문에. 크리스마스이브에 이들을 위한 위령제가 있었다. 그들을 위한 위령문을 바친다.

나는 너를 잊었다. 주린 배를 채울 빠르고 값싼 피가 필요했다. 내 뱃속엔 너의 피가 켜켜이 저장되어, 나의 몸은 실은 나의 몸이 아니다. 나는 너를 잊었다. 우리는 너를 잊었다. 인간에게는 망각의 강이 있어 오늘 무사히 웃을 수 있으니. 너의 고통을 잊고 비명을 산 채로 묻는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비명. 세상에서 가장 아무렇지도 않은 학살이다. 인간이 된 괴물들이 말한다. "계란 대란", "국산닭 씨가 마른다", "보상액 1500억원 돌파", "AI 공포 확산", "달걀 가격, 이주 만에 17% 급등", "프랜차이즈 치킨업계 '큰 타격 없다'", "AI 무서운 후폭풍, 크리스마스 케이크도 `비상'", "유통업계 `계란 구하기' 초비상", "사상 최악 AI, 소비까지 얼어붙나", "사람도 살기 어려운데, 동물까지 어떻게 챙기라는 거야". 네 죽음의 사건 속에 너는 없다. 뛰는 심장과 따뜻한 배, 깃털이 자라던 날개, 자루에 담겨 놀란 눈동자를 굴리는 소리, 맨발로 흙구덩이에 서서 날갯짓했을 몸부림, 햇볕 한 줌 없는 썩은 철장의 악취는 없다. 인간의 귀가 그것을 듣고 싶지 않아서. 인간의 코가 그것을 원하지 않아서.

발톱으로 할퀼 수 없어서 메아리가 대신 전하는 비명이 있다. 공장 문틈으로 새는 비명을 자루에 담아 흙구덩이에 묻는다. 땅에서 솟구치는 비명을 다시 공장 굴뚝으로 쑤셔 넣고, 쑤셔 넣고, 쑤셔 넣는다. 차가운 밥구덩이에 입을 대고 하아, 입김을 불어 넣으면 얼어붙은 깃털을 녹일 수 있을까. 감지 못한 눈동자를 달랠 수 있을까. 2500만개의 심장은 우리를 용서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용서받을 수 있을까. 인간이 뭐라고. 인간이 뭐라고. 우리는 용서받을 수 없다. 인간이 된 괴물인 나는 2500만번의 학살 앞에 뻔뻔하게 용서를 구할 수 없다. 우리가 모두 저 구덩이를 거쳐가야 한다, 거쳐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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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열린 AI 생매장으로 희생된 생명을 위한 위령제에서 동물단체 활동가들이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 뉴스1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