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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29일 09시 51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3월 01일 14시 12분 KST

총선을 맞은 청년, 무엇을 할 것인가

참여연대

2016년 작은 변화의 희망조차 말하기 어려운 청년의 현실을 마주한다. 40여일 앞으로 다가온 국회의원 선거에서 청년이 화두가 되리라는 흔한 예측은 넘쳐나지만 정작 청년들의 마음은 '기대할 것 없는 삶'에 대한 냉소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사회가 아예 붕괴했으면 좋겠다, 어차피 이번 생은 망했다, '탈조선'만이 답이라는 분노와 자조가 커지고 있다. 생존을 위한 경쟁에 내몰린 개인은 '함께 바꾸는 것'보다는 '혼자 살아남는 것'을 선택한다.

칼럼니스트 박권일은 헬조선 담론이 '혐오 담론'의 하나라는 점에 주목하며 분노와 혐오를 구분한다. 어느 저명한 경제학자는 소득불평등을 이유로 미래세대인 청년들이 분노해야 한다고 선동하지만, 청년은 분노하는 대신 혐오한다. 그런데 분노하는 주체는 대상을 마주해 저항과 변화를 시도하지만, 혐오하는 주체는 대상과 자신을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놓는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청년은 잘못을 바로잡는 일을 체념했고, 그것의 이유를 만들기 위해 혐오를 동원한다. 내 식으로 이해하자면 '더러워서 피한다'는 마음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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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분노를 주문하는 장하성 교수의 책 '왜 분노해야 하는가'가 최근에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청년문제를 주제로 다양하게 활동해 온 사람들은 다시 '함께 만드는 변화'의 가능성을 생각한다. 청년을 비롯해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 사회의 대다수 보통 사람들은 더 행복하고 안정적인 삶을 가질 권리가 있다. 언론이 붙인 'N포세대'라는 말이 유행하지만, 사실 우리는 아무것도 직접 포기한 적이 없다. 포기하지 않겠다. 체념을 인정하는 순간 정말 끝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를 계기로 한 번 더 서로에게 이야기를 걸어 보려고 한다. 청년의 정치참여는 거창한 선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변화의 동력, 청년의 한 표가 세상을 바꾼다"는 그럴듯한 표현에는 희미한 가슴 떨림도 없다. 애초에 그건 청년이 한 말이 아니라 표를 호소하는 정치인들이 지어낸 말이기 때문이다. 청년 투표율이 높아야 한다는 열정적인 말을 들으면 이제는 속이 답답하다. 청년이 마주하는 현실이 우리의 투표율이 낮은 탓인가. '투표율'을 강조하는 사고방식은 손쉽게 '20대 개새끼론'이 된다.

질문부터 먼저 꺼내야 한다. 내 바로 옆의 누군가에게 그리고 얼굴을 알지 못하는 수많은 우리 세대 동료시민들에게 '내가 투표하는 이유'부터 '우리가 바라는 좋은 사회'까지 조심스럽게 질문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그리고 사회시스템에 오로지 충성하거나 탈퇴할 것을 강요당하는 청년들이 자기 목소리를 가질 수 있는 곳, 그것을 모으고 드러낼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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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3일, '2016 총선청년네트워크' 출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참여연대

총선 D-50이었던 지난 23일 '2016 총선청년네트워크'가 출발했다. 우선 16개 청년단체가 모였다. 네트워크는 청년의 삶·정책·정치참여에 대해 고민하고 4월 총선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은 모든 청년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연결망이자 공동사업을 위한 단체들의 연대기구다. 네트워크에 모인 단체와 사람들은 '따로 또 같이' 하며 청년의 정치참여 활동을 만들어 갈 계획이다.

청년이 세운 기준으로 '반(反)청년 인사'를 공천 부적격자로 직접 선정해 정당에 "이런 사람만큼은 공천해선 안 된다"고 요구하고, 청년 유권자 참여를 통해 후보·정당 선택의 사회적 기준을 만드는 캠페인을 구상하고 있다. 그리고 청년이 청년에게 말 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청년과 장년·노년 세대가 '더 나은 다음 사회'를 위해 투표참여를 함께 약속하는 세대연대를 제안할 것이다. 생애 첫 투표를 하는 청년이 조부모와 함께 투표를 하고, 청년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영세 자영업자와 함께 투표를 하고, 렌트푸어 청년 세입자가 하우스푸어 집주인과 함께 투표를 하는 것은 어떤가.

총선청년네트워크는 문턱이 낮다. 전국의 모든 청년단체·모임·개인에게 열려 있다. 소속된 곳이 없을 경우에는 내 옆의 친구 한 사람과 함께 '강북 청년들'이나 '전주 청년들'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해도 좋다. '청년'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다양한 차이와 정체성·삶·목소리들이 담길 수 있기를 바란다.

어차피 급할 것 없다. 이번 선거는 당장 한 달 조금 넘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야기는 4월13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가쁘지 않은 호흡으로, 더 긴 시야로 청년의 참여와 변화를 그려 나갈 수 있길 기대한다. 여전히 큰 희망을 가지긴 힘들지만, 다시 한 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가 작은 디딤돌이 되기를 희망한다.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의 '청년노동칼럼'에 게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