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5년 12월 22일 05시 05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22일 14시 12분 KST

'응답하라 2015' 는 없다

gettyimagesbank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인기다. 이 시리즈물의 공통된 기획요소는 '지나간 시대에 대한 향수'와 '주인공의 남편 찾기'다. 그런데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응팔'이 사람들 마음속 어떤 구석을 자극하는 포인트는 단순히 복고열풍이나 애정전선에 있지는 않다. "내 끝사랑은 가족"이라는 문장으로 집약되는 것처럼 이 드라마가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것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다. 앞집 옆집으로 이뤄진 쌍팔년도 쌍문동 공동체란 이상적인 모습으로 확장된 가족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응팔은 일종의 '판타지물'이다. 그것의 큰 인기는 우리 사회가 결핍하고 있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반영한다. 현재의 삶이 불안정해질수록 30년 전의 과거에는 존재했다고 회고하는 '따뜻한 낭만'을 찾게 되는 것이다. 맞아, 저런 시절도 있었지. 짧은 위로라도 구하기 위해서 말이다.

downton

나도 응팔을 좋아한다. <응답하라 1988>에 빠져 두 살 적의 아름다운 추억에 사로잡힐 때마다, 궁금한 것이 있다. 앞으로 20년이 흘러 응답하라 시리즈가 다시 제작된다면, <응답하라 2015>는 어떤 이야기가 될까. 지금의 젊은이들이 중년의 나이가 되면, 우리는 이 무렵의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세월호 사건, 메르스 사태, 백남기 농민, 노동개악, 역사교과서 국정화. <응답하라 2015>는 끝내 탄생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우리의 일상에선 어떤 판타지나 낭만, 반전의 요소도 기대하기 어려우니까. 누구도 현실의 비극을 드라마로 보고 싶어 하진 않을 테다.

나는 청년노동의 문제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노동유연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기점으로 1997년의 외환위기를 자주 언급한다.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노동자의 삶을 파괴해 버린 대규모 정리해고 이후 노동시장이 급격히 양극화되면서 불안정노동의 당사자로서 '청년'이 등장하게 됐다는 식이다.

그때 난 10대의 삶을 막 시작한 초등학생이었다. 물론 눈치껏 분위기 파악은 할 수 있는 나이였다. 내가 어린 기억 속에서 당시의 경제위기를 실감하는 것은 TV에서 봤던 감동적인 금 모으기 풍경, 아빠가 운영하던 작은 철강회사가 사라졌다는 것, 갑작스런 이사로 낯설고 좁은 집에서 살게 됐다는 것 정도다. 나라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우리 집도 가난해졌고, 나는 무언가 사 달라 말하지 않는 아이로 컸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반에서 만든 문집에는 '돈이 우리 가족을 힘들게 한다'는 주제로 13살의 내가 쓴 글이 실렸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IMF 위기다.

당신의 기억은 어떠한지 묻고 싶다.1997년부터 휘몰아친 구조조정의 광풍을 몸으로 겪은 앞 세대의 '실감'은 어땠을까. 당시에 청년이었던 이들이 목격한 사회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해 대학에 입학한 선배 한 사람에게 물었다. 답변이 돌아왔다. "그땐 어려서 얼마나 심각한지 잘 몰랐던 것 같아." 97학번 새내기는 30대가 돼 청년 노동조합을 결성한다.

최근 두산인프라코어·삼성물산 등 대기업들에서 신입사원을 포함해 20대 청년노동자들까지 희망퇴직 대상이 됐다는 소식을 마주했다. 순순히 쫓겨나지 않는 자들은 갖은 방법으로 떨어져 나가게 한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비정규직은 계약만료로, 정규직은 희망퇴직으로 '해고'된다. 정규직 친구들에게 부디 내년에 '명예퇴직'하지 않길 바란다는 연말 인사를 전해야 할 판이다.

기업의 위기를 낳은 것은 경영자들의 잘못이지만, 책임은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정리해고는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의 '합리적 개혁'으로 둔갑한다. 대규모 해고의 칼바람이 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그것에는 또다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기업을 살려야 한다는 이유가 붙을 것이다. 결국 재계의 핵심 민원사항이라는 '일반해고 요건 완화(저성과자 해고)'는 자본이 해고비용을 절약하기 위한 수단이다. 정부는 그 '노동개혁'을 강행하기 위해 국회 의장을 압박하며 헌정 질서마저 무시하고 있다. 어느 대학생은 수저 색깔이 생존을 결정하는 비합리적 사회에서 버틸 이유가 없다는 '합리적 사고'의 소산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리석은 나는 이제야 2015년의 사회현실을 실감한다.

드라마는 없을지라도 역사는 기록된다. 우리가 20년 전에 대해 이제 와서 말하듯, 20년 정도 후에 올해를 두고 이렇게 말하게 되지는 않을까.

"2015년은 경제위기를 앞두고 대규모 구조조정이 시작된 해다. 20대 청년들마저 정리해고의 대상이 됐다. 사회적 혼란의 와중에 오직 기업들만이 영리했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노동정책에 의해 한국 노동시장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렸다. 기간제 근로계약은 4년을 맘껏 쓰고 버리는 제도로 정착했고, 한국은 파견 천국이 됐다. 제조업 뿌리산업은 시작이었을 뿐, 전 산업으로 파견이 허용되기 시작했다. 그 후로 어떤 기업도 노동자를 직접고용하지 않는다. 그 결정으로 보통 사람들의 삶은 더 나빠졌고, 우리 사회는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2035년의 지금이 그 참혹한 결과다. 정치는 무능했고, 시민사회는 무력했으며, 노동운동은 크게 약화됐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보수 장기집권의 출발점이었다."

이것은 노동개악으로 시작될 미래의 디스토피아다. 항상 '겨울이 다가온다'는 마음으로 독하게 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Winter is coming." 유명 미국드라마의 명대사다.

하지만 비관 속에서도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희망의 근거는 여전히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지만, 상상 속 어두운 미래를 진짜 현실로 만나고 싶지는 않다. 바라건대 <응답하라 2015>의 다른 시나리오를 적어 나가야 한다. 드라마는 역시 행복한 내용이 좋으니까.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의 '청년노동칼럼'에 게재한 글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