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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21일 10시 28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1월 21일 14시 12분 KST

지구에 다녀간 사나이, 데이비드 보위

지난 1월10일(현지시각), 데이비드 보위가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간암이었다. 슬프기보다는 놀라운 소식이었다. 아니, 놀라웠다기보다는 믿기가 어려웠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차라리 그가 수백년째 지구에 머물고 있는 외계인으로 밝혀졌더라면 '아, 어쩐지...' 하면서 수긍했을 것이다. 하지만 죽음처럼 흔하고 당연한 인간사를 데이비드 보위와 연결짓는 건 아무래도 어색했다. 내게 그는 항상 세상의 기준을 초월한 듯한 록스타였기 때문이다. 흔하고 당연한 운명이란 이 뮤지션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처럼 느껴졌다. 이 문장은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도 있겠다. 세상의 모든 스타일을 힘들이지 않고 소화한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 따위는 아예 없었을 테니까.

1970년대에 영국에서 부상한 하위 장르인 글램록은 시각적인 이미지를 특히 강조했다. 보위는 그 대표주자 중 한명이었고, 배우가 작품에 따라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처럼 앨범의 콘셉트에 맞춰 다양한 페르소나를 선보였다. 그때마다 외모적으로도 극적인 변신을 감행한 건 물론이다. 가장 유명한 얼터 에고는 아무래도 지기 스타더스트(데이비드 보위가 1972년 발표한 앨범 <더 라이즈 앤드 폴 오브 지기 스타더스트 앤드 더 스파이더스 프롬 마스>에서 선보인 자신의 페르소나)다. 외계에서 온 양성애자 록스타를 표현하기 위해 그는 머리카락을 붉게 물들이고 짙은 화장을 했으며, 과장된 실루엣의 재킷이나 번쩍거리는 부츠 등을 착용했다. 일본 출신 디자이너인 야마모토 간사이와 함께 완성한 지기 스타더스트의 스타일은 이후 수많은 모방과 변용을 낳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앨범 <스테이션 투 스테이션>(1976년 작) 무렵의 페르소나인 '신 화이트 듀크'(The Thin White Duke)에 좀더 눈이 간다. 같은 해 개봉한 영화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에서 데이비드 보위가 직접 연기한 주인공인 토머스 제롬 뉴턴을 재현한 캐릭터였다. 뉴턴 역시 지기 스타더스트처럼 외계인이지만, 패션에 대한 취향은 사뭇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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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의 스틸사진을 활용한 앨범 <로>(Low)의 표지.

니컬러스 로그 감독의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는 한 남자가 외딴곳에 불시착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극이 한참 진행된 뒤에 밝혀지는 내용에 의하면, 그는 지구의 물을 가물어가는 자신의 행성으로 이송하기 위해 우주 저편에서 온 생명체다. 인간으로 위장한 이 이방인은 디자인이 단순하고 색이나 무늬도 도드라지지 않는 의상을 고수한다. 괜한 시선을 끌지 않으려는 의도 같다. 그러니까 더플코트나 헤링본 재킷, 타이를 매지 않은 채 입는 은은한 색감의 셔츠 등이 토머스 제롬 뉴턴의 스타일인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노력은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만다. 금발이 섞인 붉은 머리를 하고 오드 아이(홍채이색증·양쪽 눈동자의 색이 다른 눈)를 번뜩이며 창백한 무표정을 짓는 데이비드 보위는 눈에 띄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는 피사체다. 수도복 같은 무채색의 슈트를 걸치고 있을 때도 그는 신분을 감춘 지기 스타더스트처럼 보인다. 유행을 타지 않는 클래식 아이템으로 완성한 스타일링이 오히려 이 남자의 이질적인 존재감을 강조한다는 느낌도 든다. 40여년 전에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데이비드 보위만은 시대에 걸맞지 않게 세련된 모습이라 마치 2010년대에서 탈출한 시간 여행자 같다.

영화 속의 데이비드 보위는 외계인이자 마법사였으며 때로는 뱀파이어였다. 그럴 만도 하다. 쌍문동 보라 아버지 같은 일상적인 역할은 그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았을 거다. 혹은 일상적인 역할을 기이한 돌연변이로 만들어버렸을 수도 있다. 캐릭터든 옷이든, 데이비드 보위가 걸치면 이상하고 흥미로운 무언가가 되곤 했다. 이 아티스트는 어떠한 스타일에도 영향을 받은 적이 없다. 그라는 인물 자체가 강렬한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David Bowie (1947 ~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