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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10일 09시 58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10일 14시 12분 KST

지옥에서 온 패셔니스타

슬래셔 호러의 괴물들은 대체로 이렇다. 검은색을 선호하고 그 외의 경우라 해도 화려한 색상은 되도록 피한다. 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며 답답할 정도로 말을 아낀다. 기숙학교의 교복만큼이나 보수적인 드레스 코드를 따른다는 이야기다. 이에 비하면 프레디 크루거는 교복을 멋대로 고쳐 입고 가톨릭 고등학교에 다녔다는 10대 시절의 마돈나에 가까운 존재감을 발휘한다. 웨스 크레이븐은 자신이 창조한 악당이 심하게 화상을 입은 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내도록 했다. 마스크 뒤에 숨지 않는 그는 표정이 풍부하고 수다스러우며 심지어는 유머러스하기까지 한 악마다.

언젠가부터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하는 부고가 많아졌다. 오랜 기간 팬으로서 지켜봐온 인물들의 죽음이 부쩍 잦아졌다는 뜻이다. 세상의 당연한 일부라고 여겼던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어느덧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새삼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게 되면서 다소 쓸쓸해진다. 8월30일에는 감독 웨스 크레이븐이 향년 76살로 영면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애틋한 상실감을 느낀 게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어떤 세대에게는 그가 <스크림> 시리즈의 감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웨스 크레이븐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1984년 작인 <나이트메어>부터 떠올리게 된다. 사실 꿈의 영역을 초현실적인 전쟁터로 활용한다는 발상 자체를 대단히 참신하다고 평하기는 어렵다. 심지어 패러마운트 픽처스는 당시 제작 중이던 조지프 루번의 <드림스케이프>가 이미 비슷한 설정을 다루고 있다는 이유로 크레이븐의 프로젝트에 퇴짜를 놓기도 했다(결국 크레이븐은 뉴라인시네마와 손을 잡고 영화를 완성해 엄청난 성공을 거둠으로써 후련하게 복수를 한다). 하지만 <나이트메어>에는 호러 장르의 계보에서 가장 개성 강한 악당 중 한명으로 꼽힐 프레디 크루거(사진)가 있다. 감독은 그가 모든 면에서 마이클 마이어스(<할로윈>), 레더페이스(<텍사스 전기톱 학살>), 제이슨(<13일의 금요일>) 등 기존의 '스타' 살인마들과 다르기를 바랐다. 그리고 이런 욕심은 캐릭터의 디자인에 꼼꼼하게 반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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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래셔 호러의 괴물들은 대체로 이렇다. 검은색을 선호하고 그 외의 경우라 해도 화려한 색상은 되도록 피한다. 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며 답답할 정도로 말을 아낀다. 기숙학교의 교복만큼이나 보수적인 드레스 코드를 따른다는 이야기다. 이에 비하면 프레디 크루거는 교복을 멋대로 고쳐 입고 가톨릭 고등학교에 다녔다는 10대 시절의 마돈나에 가까운 존재감을 발휘한다. 웨스 크레이븐은 자신이 창조한 악당이 심하게 화상을 입은 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내도록 했다. 마스크 뒤에 숨지 않는 그는 표정이 풍부하고 수다스러우며 심지어는 유머러스하기까지 한 악마다. 녹색과 빨강의 줄무늬 스웨터도 밉살맞게 쾌활한 성격과 잘 어울린다. 감독은 프레디가 눈에 거슬리는 보색의 조합을 입길 원했다고 한다. 그리고 키우던 고양이의 날카로운 발톱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특수효과 감독과의 상의 끝에 칼날이 달린 장갑을 제작했다. 마이클 잭슨의 사이코패스 팬이 선호할 법한 소품이다. 웨스 크레이븐이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하게 설계하고 지휘해 완성한 프레디 크루거는 독창적인 캐릭터이자 효과적인 디자인이기도 하다. 과감한 색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액세서리의 활용에 적극적인, 지옥에서 온 패셔니스타라고 해야 할까? 물론 스타일링의 결과는 근사하다기보다는 끔찍한 쪽에 가깝다. 하지만 프레디 크루거는 이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일 거다.

현재 뉴라인시네마는 <나이트메어>의 두번째 리부트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2010년의 판갈이(새뮤얼 베이어가 연출하고 재키 얼 헤일리와 루니 마라가 주연을 맡았던 프로젝트)가 영 만족스럽지 못했던 모양이다. 웨스 크레이븐의 악몽은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듯하다. 정작 감독 자신은 악몽 없는 영원한 잠 속에서 편히 쉬게 됐지만 말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