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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3월 03일 15시 18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5월 03일 14시 12분 KST

이미 시작된 19대 대선 - 누가 정치개혁의 깃발을 들 것인가

선거공학적 주판을 두드리며 진행하는 일회성 이벤트식의 연대나 단일화 논의가 시민들에게 얼마나 공허하게 다가오는지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은 이미 지난 대선 과정에서 뼈아프게 경험한 바 있다. 결국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위한 연대인지, 어떤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연대인지를 분명하게 앞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제3의 지대에서 신당을 창당하기로 발표하면서 이제 여의도는 완벽하게 6.4 지방선거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국회 출입기자들은커녕 각 진영의 핵심 인사들까지도 타결 전까지 그 내용을 몰랐을 정도로 신당 창당 발표는 충격적이었고 그만큼 다양한 평가가 갈리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이에 대한 평가는 잠시 유보하고, 최근 한국 정치 전반에 깔려있는 정치개혁의 흐름을 짚어보려고 한다.

어떤 미사여구를 사용하더라도 결국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이 신당을 창당하기로 결심한 것은 당장의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신당을 포함한 각 정당들은 광역단체장에서부터 기초의원까지, 즉 중앙에서부터 지역 구석구석까지 온통 누가 승리할만한 후보가 될 것인지에 대해 정신없이 주판을 두드릴 것이다. 지방선거는 그 자체로도 시민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지만, 선거 결과에 따라 향후 여의도 정치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요 대권주자들의 관심사는 사실 벌써부터 지방선거 이후에 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의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지난 2월 25일 한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으로 양분되는 현재의 낡은 양당제를 비판하면서 앞으로 선거제도 개혁 국민운동을 펼치겠다고 했다. 이미 다원화된 국내 사회구조를 양당제에 억지로 맞추려고 하는 과정에서 대결과 갈등이 극대화되고 있기 때문에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온건한 다당제를 바탕으로 정치적 안정과 정책의 연속성을 보장할 수 있는 '합의제 민주주의'체제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손 전 대표는 현재 한국사회의 수많은 사회경제적 문제들의 해법이 결국엔 정치에 있다는 점 그리고 그 대안은 새로운 백마 탄 왕자의 등장이 아니라 바로 선거제도 개혁에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방안으로 "개혁적 정치세력, 전문가,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연대회의를 만들겠다"고 제안했다.

안철수 의원 역시 최근 비슷한 생각을 피력한 바 있다. 그간 새 정치의 실체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고 비판받던 안 의원은 2월 11일 '새로운 정치를 위한 국민과의 대화'라는 토론회를 통해 자신의 기본 구상을 발표하면서 그 핵심 방안으로 대선 결선투표제와 총선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제시했다. 한국정치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을 제외한 제 3세력이 이렇게 오랜 기간 20~25% 내외의 지지율을 유지한 적이 있었던가. 많은 시민과 전문가들이 이를 통해 기득권 양당 체제를 타파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갖는 이유다. 하지만 시민들의 인내심은 그리 길지 않다. 이런 현상을 제도화하지 않으면 지금의 지지율도 연기처럼 사라져버릴 확률이 높다. 요컨대, '새 정치'는 '새 제도'에 담아야 '지속가능'하리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정치연합이 결선투표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강조한 것은 자신들의 지지율을 의석률로 전환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제안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민주당과 함께 신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도 바로 이런 개혁안이 얼마나 핵심의제가 될 수 있느냐가 안철수의 새 정치를 평가하는 핵심적인 기준이 될 것이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개혁적 진보그룹은 이미 오래 전부터 독일식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해왔다. 특히 올 해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는 심 원내대표는 최근 특위 활동을 마무리하는 메시지를 통해서 유권자들의 정치적 의사를 의석배분에 정확히 반영시키고 지역구도를 타파하는 정치제도 개혁을 위해 시민사회, 학계, 언론계, 법조계 등이 참여하는 '정치혁신범국민협의체'를 제안한 바 있다.

한편,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흐름이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감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새누리당 내에서 개혁적 목소리를 내고 있는 원희룡 전 의원은 최근 <무엇이 미친 정치를 지배하는가>라는 책을 통해 독일식 비례대표제와 온건다당제의 도입을 정치개혁의 핵심 과제를 꼽았다. '국가모델연구모임'을 이끌며 독일 모델을 공부하고 있는 남경필 의원 역시 한국의 승자독식 정치구조를 깨고 합의를 중시하는 독일의 정치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재오 의원이 주축이 되어 여야의원 154명이 참여하고 있는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도 분권형의 권력구조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큰 틀에서 이런 정치개혁 흐름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 민주당, 새정치연합, 정의당, 그리고 새누리당 내에서 개혁적 목소리를 내는 이른바 범개혁진영의 유력한 정치그룹들 사이에서는 독일식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통한 온건다당제 확보라는 정치개혁의 흐름이 저변에 흐르고 있는 듯하다. 이런 개혁안에 반대하는 진영의 상당수는 현재의 선거제도로부터 과도한 이익을 보고 있는 정치적 수구세력이다. 사실 이런 세력은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에 속해 있다는 점에서 정치개혁을 위한 연대는 '보수 vs. 진보'가 아니라, '수구 vs. 개혁'의 대결구도로 짜여지는 것이 핵심이다. 그야말로 중도진보, 진보 진영뿐만 아니라 중도보수의 개혁적 그룹이 연대해 정치개혁을 추진해가면서 광범위한 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흐름이 만들어져야 비로소 성공가능하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흐름은 물밑에서만 꿈틀거리고 있는 형국이다. 서두에서 말한 바와 같이 당장 6.4 지방선거가 눈앞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번 지방선거와 정치개혁이 마냥 떨어져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 시각을 달리해서 보면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이 두 가지 이슈를 더욱 긴밀하게 연결시켜야 할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지방선거가 다가올수록 정치권과 언론매체는 또 다시 야권 연대 혹은 후보단일화 이슈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주당이나 새정치연합과 비교해서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여전히 월등히 높고 견고하기 때문이다. 지난 일요일 김한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의 전격적인 신당 창당 합의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선거공학적 주판을 두드리며 진행하는 일회성 이벤트식의 연대나 단일화 논의가 시민들에게 얼마나 공허하게 다가오는지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은 이미 지난 대선 과정에서 뼈아프게 경험한 바 있다.

결국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위한 연대인지, 어떤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연대인지를 분명하게 앞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수구세력에 불만이 높은 일반 시민들은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연대해서 승리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렇게 승리해서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 가치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이미 범개혁진영은 암묵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즉, 기존의 체제로부터 기득권을 누려왔던 정치적 수구세력들을 타파하는 선거제도 개혁의 깃발을 올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공은 범개혁진영의 주요 정치기업가들에게 넘어왔다고 볼 수 있다. 누가 이런 정치개혁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주도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이런 흐름을 지방선거와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인가. 수구세력의 격렬한 반대를 이겨내고 동시에 시민들의 정치적 냉소를 참아내면서 중도진보와 진보, 그리고 중도보수까지를 아우르는 범개혁진영을 이끌고나갈 정치적 역량과 비전을 갖춘 인물과 세력은 누가 될 것인가. 19대 대선은 이미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