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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23일 06시 40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2월 23일 14시 12분 KST

GNP, GDP로는 우리 모두가 행복할 수 없다

Norman Bock

선진국과 후진국은 무엇을 기준으로 나눠왔을까? 바로 생산(Product)이 었다. GDP, GNP는 생산을 많이 하는 나라일수록 앞선(先)나라였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뒷선(後)나라라는 기준이 되어 항상 1위부터 꼴찌까지 서열이 매겨진다. 한때 우리나라는 11위를 했다고 뿌뜻해 하곤했고, 15위로 밀렸다고 불안해하기도 했다.

생산을 많이 한다는 말은 곧 소비를 많이 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그래서 모든 나라들은 앞선나라가 표준모델이 되어 30년 또는 10년 뒤졌다고 채근하며 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시절도 있었다. 궁극의 목표는 바로 미국과 같은 나라였다. 그러나 이들 국가의 석유소비가 기후변화라는 전지구적인 위기의 원인으로 부각되면서 이제까지 척도가 된 발전의 지표는 어리석음과 무지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발전 프레임을 바꾸고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가게 하기 GDP와 GNP를 대신할 새로운 지표을 만들기 시작했다.

오늘날 세계 70억인구의 5%밖에 안되는 미국이 전세계의 석유를 23%정도를 소비하고 있다. 또한 20%밖에 안되는 잘사는 국가들이 전세계의 화석연료를 83%사용한다. 거꾸로 말하면 80%의 가난한 나라사람들이 17%의 화석연료를 갖고 나눠쓰고 있다는 말이다. 현재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환경문제는 마땅히 83%의 화석연료를 소모하는 20%의 잘사는 나라들의 책임이다. 바꾸어 말하면 오늘날 미국와 유럽, 일본, 한국이 이렇게 많은 자원소비하고도 빨리 망하지 않고 살수 있는 것은 바로 80%의 가난하게 살고 있는 나라들의 적은 자원소비 때문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가난한 나라가 지구의 파괴와 위기를 연장시키고 유예시키는 역할을 해온 것이다.

이른바 선진국의 대량생산과 소비, 그리고 대량폐기의 풍요의 개발논리에 치명적인 문제는 바로 본래 '유한한 자원'을 '무한한 것'으로 착각하여 만들어진 발전논리라는 점이다. 20%의 소수국가가 누리는 풍요를 언젠가 시간간격을 두고 인류 모두가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은 자원이 무한하다는 전제 위에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실제의 세계는 어떨까? 자원이 당연히 무한하지 않다. "하나뿐인 지구"라는 말은 곧 그 유한성을 강조한 것이다. 현재 잘사는 국가들은 가난한나라들과 골고루 평등히 나눠써야할 자원을 빼앗으며 누리는 풍요이다. 더 나아가 미래세대들이 써야할 자원까지 남김없이 빼앗아 쓰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우리를 유토피아로 이끌 것이라고 생각한 국민총생산 (GNP)이라는 지표가 반대로 우리를 디스토피아(Dystopia)로 끌고온 것이다. 그래서 행복과 발전의 프레임을 다시짜기위해서 나온 지표가 참진보지수 (GPI Genuine Progress Indicator)나, 지구행복지수 (HPI Happy Planet Index)가 있다.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1970년대초 부탄에서 제시했던 국민행복지수 (GNH Gross National Happiness)이다. 최근 OECD를 비롯하여 프랑스나 일본등의 나라들은 이 GNH를 지속가능한 발전 지표로 구체적인 적용을 위해 개발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 더 이상 선(先)진국과 같은 발전방식은 희망이 아니다. 오히려 인류의 위기를 초래하는 발전방식이었고 더 이상 모든 지구인들이 지향해야할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선진국이라는 표현대신 <소수세계>라는 표현을 쓰자고 제안했고, 반대로 더 많은 가난한 나라들의 삶이 자연과 공동체를 유지하게 만든 보편젹인 삶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동안 후진국이라는 말대신에 <다수세계>로 바꾸어 부르자고 제안하여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