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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30일 13시 31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30일 14시 12분 KST

기후변화혁명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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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서울 기후 행진.

활동가는 오만했고 시민은 위대했다.

30일(현지시각) 오늘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이하 파리기후총회)를 앞두고, 175개국에서 열린 '기후 행진'을 직접 기획하고 참여한 소감이다. 28일부터 6개 대륙을 가로지르며 무려 70만명 이상이 모였다. 파리 행진이 빠졌는데도 사상 최대 규모다. 멜버른 6만, 런던 5만, 로마 2만, 마드리드 2만 등 10개 이상의 도시에서 역대 기후 행진의 기록을 깼다. 그리고 그 집계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기후변화는 시민들 속으로 파고들지 못한 관심 밖 이슈로 통했다. 활동가들도 기후 행진을 앞두고 실현 가능성을 쉽게 믿지 못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최근 10년동안 가장 큰 규모로 열리는 파리기후총회를 앞두고 시민들은 스스로 거리로 나왔다. 바야흐로 '기후변화혁명'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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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무려 6만명이 참여한 호주 멜버른의 기후 행진

활동가의 오만 1. 아무도 믿지 않았던 기후 행진의 기적

기후 행진(Global Climate march)은 국제캠페인단체 '아바즈'(www.avaaz.org/kr)가 지난해 처음 전세계 규모로 기획한 행사다. "기후변화는 시민들의 관심사가 아니다"라며 적극적 대응을 미루는 정부와 업계에 진짜 민심을 보여주겠다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그렇지만 지난해 9월 첫 기후 행진이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이게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단체들은 "가당키나 하냐"며 혀를 내둘렀다. 아바즈 내에서도 의구심을 품은 활동가들이 많았다. 하지만 파리기후총회 15개월을 앞두고, 전세계에서 무려 70만 명이 모였다.

그리고 올해, 우리는 또 안심하지 못했다. 최소 40만 명이 모일거라 예상한 파리 거리 행진이 최악의 테러 사태로 인해 불과 1주일 전 취소됐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활동가들의 걱정은 기우였다. 예상을 깨고 지난해보다 더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행진 대신 각자 이름을 적은 신발을 갖다놓기로 한 파리의 대체 시위에는 2만 쌍의 신발들이 놓였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반기문 총장의 신발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온라인에는 신발과 사진을 찍은 지지자들의 사진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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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서울 기후 행진.

활동가의 오만 2. 30분 전까지 텅빈 광장을 보며 걱정과 한숨만

나는 아바즈의 유일한 한국인 활동가로서 올해 서울 행진을 제안, 그린피스와 350.org, 기후행동 2015, GEYK 등의 단체와 함께 청계광장 행사를 준비했다. 지구적인 이 행사는 그러나 개인적인 교훈을 더욱 강렬하게 남겼다.

29일 당일 행사 30분 전. 광장은 텅 비어 있었다. 쌀쌀한 날씨,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장갑을 꼈는데도 손은 꽁꽁 얼어 붙었다. 마음은 더 추웠다. 공동진행을 맡은 다른 활동가와 "얼마나 모일까" 이야기하면서, 내 머릿속에는 '기후변화를 신경쓰는 사람들은 활동가밖에 없다'는 생각이 꽉 들어찼다. '멜버른은 6만 명이 왔다는데... 비교되면 어쩌지?'처럼 승산없는 걱정까지 생겼다. 시민들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그 시민들을 믿지 못하는 꼴이었다. 불신이 낳은 오만은 나와 시민들의 거리를 점점 벌려 놓았다.

그런데 부끄러운 상황이 벌어졌다. 행사 10분 전 어느덧 청계광장이 가득 찬 것이다. 학생, 수녀, 어린이, 외국인 등 각기 배경은 달랐지만 파리에서 모일 정상들에게 "기후변화를 막아달라"며 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100명 정도였던 지난해 규모를 훨씬 뛰어넘어 서울의 기후 행진 참가자는 1,000여명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숫자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참가자 숫자로 시민들의 의식수준을 가늠하려 했던 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얻었다는 사실이 더 값지다.

물론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부딪혀보기도 전에 "우리나라는 이래서 안돼, 우리 국민은 이래서 안돼"라며 속단해버리는 것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를 비롯한 활동가들은 마음 깊이 새겨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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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대응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신발 2만쌍이 놓인 프랑스 파리 시내

사람들은 묻는다. 걷는다고 세상이 바뀌겠느냐고. 내 대답은 "그렇다"이다.

역사적으로 행진은 혁명을 가져왔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워싱턴 행진은 미국 인종분리정책을 종식시키는 계기가 됐다. 간디의 소금 행진은 영국 식민지 시대의 폐막을 예고했다. 이제 기후 행진이 '기후변화혁명'을 일으킬 차례다.

온라인 기후 행진은 언제나 열려있다. 전세계 360만명이 서명한 '100% 청정사회로 : 대규모 기후 청원'에 참여하자.


[화보] 활동가의 소망 : 기후 행진에 참여한 변두리 국가에도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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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기후 행진은 전세계 2,300여개 행사로 진행됐다. 다양한 인종과 세대가 저마다의 콘셉트를 가지고 참여했지만 우리가 보도에서 접하는 소식은 세계 주요 도시 위주다. 여기, (주류언론이 외면한) 기후변화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거나 테러를 당한 국가 시민들의 기후 행진이 있다. 기후변화가 우리 모두의 문제이니만큼 가난과 재난, 테러도 시민들의 행동을 막을 수는 없다.


*이 글은 자유기고가 김혜경님의 도움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