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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04일 06시 21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4월 05일 14시 12분 KST

헌법재판소를 강원도로 옮기자

연합뉴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2015년 자사 사이트에 등록된 기업들의 신규 채용공고 650만건을 근무 지역별로 분석한 결과, 전체 채용공고의 73.3%가 수도권 지역에 몰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 비중은 서울 40.9%, 경기 24.7%, 인천 7.7%, 부산 5.4%, 대구 3.2%, 대전 3.1%, 충남 2.9%, 충북 2.3%, 경남 2.2%, 광주 1.8%, 울산 1.3%, 경북 1.2%, 전북 1.2%, 전남 0.8%, 강원 0.5%, 제주 0.4%, 해외 0.4% 등이었다.

이 통계는 이른바 '인서울 대학'들이 경쟁력을 누릴 수 있는 이유를 잘 말해준다. 대입 정원을 현재의 56만명에서 40만명으로 줄이는 '정원 16만명 감축 프로젝트'를 맹렬하게 추진하고 있는 교육부는 이런 경쟁력에 근거해 정원 감축을 지방대에 집중시키고 있다. 2017년 전체 대학 입학 정원은 2012년보다 5만여명 줄어드는데 서울만 증가하는 추세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인서울 대학'에 들어가려는 전쟁은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입시가족: 중산층가족의 입시사용법>이라는 명저의 저자인 김현주씨는 "중산층 가족 사이에서 자녀교육의 동의어는 '인서울 대학' 진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서울은 '역사성이 사라진 난민촌'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지만, 대다수 한국인에게 그 난민촌은 들어가지 못해 안달하는 이상향이다.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에 등장하는 시골학교 음악선생의 고백처럼 "미칠 것 같아요. 금방 미칠 것 같아요. (...) 아이 서울로 가고 싶어 죽겠어요"라고 신음하는 젊은이들이 지금도 전국 방방곡곡에 흘러넘친다.

그렇지만 '인서울 광풍'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 살던 곳을 떠나 지방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서울 학생들도 고통을 당하지만, 인서울 진입에 성공한 지방 출신 학생들은 비싼 학비와 주거비 문제로 빈곤의 비애를 겪어야 한다. 수명이 늘어난 반면 노후 자금이 부족해 퇴직 후에도 은퇴하지 못하는 '반퇴 시대'에 부모들은 또 무슨 죈가. '인서울 대학'에 자녀를 보낸 지방 부모들은 '반퇴 푸어'가 아니라 '당장 푸어'가 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며, 덩달아 지방 경제도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럼에도 빚을 내서라도 자녀를 부와 권력이 집중돼 있는 서울로 보내야 한다는 게 지방 부모들의 한결같은 염원이다. 유권자들의 그런 염원을 잘 아는 지방 정치인들은 앞다투어 지역의 우수 인재를 서울로 보내는 데 도움이 될 공약을 내놓기에 바쁘다. 사실상 '지방대 죽이기' 정책이 지방민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동력 삼아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 정부가 "수도권 규제를 단두대에 올려 과감하게 풀자"는 슬로건을 착실하게 이행하는 정책을 펴도 지방 유권자들이 표로 응징하지 않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당장 경제적 성과를 얻으려는 5년짜리 정권에는 수도권에 더 많은 권력과 부를 집중시키는 게 유리하겠지만, 이 나라가 어디 5년짜리 나라인가? 더불어민주당이 4·13 총선 공약으로 '국회의 세종시 이전'을 발표해 놓고 하루 만에 물러선 것은 야당에게도 기대할 게 없다는 걸 말해준다. "충청권 표를 의식한 전형적인 선거용 포퓰리즘 공약"이라는 비판에 무게를 실어주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국회의 세종시 이전은 총선 후 차분하고 진지하게 논의할 사안이지만, 나는 그 일에 앞서 헌법재판소를 강원도로 옮기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2004년 10월 헌재의 행정수도 위헌 결정에 대한 성찰과 국토의 균형발전을 천명한 헌법 제11조·119조·122조에 대한 재인식은 재판관들이 지방에서 살 때에 비로소 가능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왜 강원도인가? 강원도는 모성 사망비(산모가 출산과 관련해 사망하는 비율)가 서울의 4.6배에 이르러 "후진국만도 못한 강원 산모 사망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현 '서울공화국' 체제의 폐해를 웅변해주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국민이라는데, 제발 더불어 같이 살아보자.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