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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14일 05시 17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14일 14시 12분 KST

야당 내분이 이종격투기인가?

연합뉴스

기존 정치 저널리즘은 철저히 '공급' 중심이다. 출입처 제도는 기자들이 정치인들의 언행에만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물론 약방의 감초처럼 민심이 어떻다는 등의 수요 측면 이야기를 곁들이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건 공급 중심의 기사에 대한 반응을 전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일부 정치인들은 "기자들이 정책 이야기를 하면 거의 써주지 않고 싸움을 하거나 싸움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만 크게 써준다"고 불평하지만, 그건 정치인 중심의 공급 저널리즘이 원초적으로 갖고 있는 속성이다. 그런 속성을 가리켜 '인물 환원주의'라고 할 수 있겠다. 정치가 '인물의, 인물에 의한, 인물을 위한 정치'로 쫄아드는 현상이다.

인물 환원주의에 충실한 저널리즘의 기본적인 이야기 틀은 이종격투기 중계방송의 아나운서나 해설자가 하는 이야기 틀과 매우 흡사하다. 그간 엄청나게 양산된 새정치민주연합의 내분 사태 관련 기사들을 보라. 이종격투기 중계방송과 무엇이 다른가?

언론은 민심에 영합하려는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을 자주 비판한다. 대부분 옳긴 한데, 왜 그 반대의 생각은 해보지 않는지 궁금하다. 그런 비판은 유권자가 '갑'이라는 걸 말해주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정당의 내분 사태도 유권자들의 내분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은가. 적어도 유권자들이 정치인 못지않게 중요한 취재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건 분명하지 않은가.

언론이 앞으로 그런 취재를 많이 할 걸 기대하면서, 우선 내 생각부터 말씀드려 보겠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벌이는 내분 사태의 주요 원인은 문재인·안철수의 문제라기보다는 호남 유권자들의 분열이다. 언론은 '호남 민심'이라는 말을 즐겨 쓰지만, 호남은 노무현 시대 이후 더 이상 압도적 다수의 정치적 견해가 같은 과거의 호남이 아니다. 그래서 야당 내분의 교통정리 기능을 상실하는 바람에 지금과 같은 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전북일보>가 "전북은 초선들이 친노를 에워싸고 있어서인지 광주 전남과 기류가 다르다. 아직도 새정치연합이 주류다"고 했듯이, 광주·전남과 전북이 다르며, 정치인들과 유권자들의 생각이 다르다. 언론은 호남의 비노 정서에 대해 자주 말하곤 하는데, 그 이유와 실체가 무엇인지 아직까지 그 어떤 언론도 다루지 않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일부러 피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김욱 서남대 교수가 최근 출간한 <아주 낯선 상식: '호남 없는 개혁'에 대하여>는 바로 그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어 상실된 혹은 스스로 상실한 정치 저널리즘의 일부 기능을 훌륭하게 보완해주고 있다. 동의하기 어려운 대목들도 있지만, 이 책의 주요 논제는 호남을 넘어서 한국 정치의 핵심적인 딜레마를 제대로 건드렸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야당은 명실상부한 전국정당화를 위해 호남 색깔을 지우려고 애를 쓴다. 이는 야당의 집권을 원하는 많은 개혁·진보 세력도 동의하는 불문율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늘 명분은 개혁·진보를 내세우지만 호남만 일방적으로 당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호남은 개혁·진보 세력의 집권을 위해 몰표를 주고서도 지역주의적 투표 행태를 보인다고 매도의 대상이 된다. 지역적 욕망을 드러내서도 안 된다. 한국 정치인의 수준이 다 거기서 거기겠건만 정치인의 물갈이 대상도 늘 호남에 집중된다. 일방적으로 이용당하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못 받는 호남의 처지를 항변하는 목소리는 망국적 지역주의 선동으로 규탄된다. 이는 보수와 진보가 합작으로 전개하는 이데올로기 공세지만, 진보가 훨씬 더 공격적이다. 적잖은 호남인들이 이에 분노하거나 좌절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실명 비판과 함께 제시하는 <아주 낯선 상식>은 매우 불편한 진실을 폭로하는 책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거의 모든 언론이 이 책을 외면했을까? 아니면 이 책이 이종격투기 모델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일까? 정치저널리즘도 개혁하면 좋겠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