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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21일 06시 07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21일 14시 12분 KST

'구경꾼 민주주의'를 넘어서

한겨레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의 모습을 보면 악취가 진동하는 시궁창에서 서로 할퀴고 물어뜯는 지옥이 떠오른다."(한겨레 9월12일치 사설) "이번 야당 내분 사태는 내년 4월 총선에서 나 하나 국회의원 자리를 챙기는 것을 앞세우는 이기적 정치꾼들이 득실대는 야당의 실정을 드러낸 셈이 됐다."(조선일보 9월14일치 사설) "새정치민주연합의 내홍이 막장 드라마 수준을 넘어섰다."(중앙일보 9월14일치 사설)

독설에 가깝지만, 그래도 유력 신문들의 공식적인 사설 지면이라 말이 점잖은 편이다. 인터넷, 에스엔에스(SNS), 택시, 술집 등에서 터져 나오는 비난은 차마 글로 옮기기 어려운 욕설과 저주 일변도다. 미국의 독설가 앰브로스 비어스는 정치를 "범죄 계급 중에서도 특히 저급한 족속들이 즐기는 생계 수단"이라고 했는데, 비어스의 후예들이 우리 사회 각 분야에 포진한 가운데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독설을 폭포수처럼 퍼붓고 있다.

모두 다 국민과 사회를 아끼고 사랑하는 충정에서 비롯된 분노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이거 하나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지금 우리가 정치를 보면서 평가하는 방식은 '관중 스포츠 모델'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입장료를 낸 구경꾼들이다. 따라서 영 시원치 않은 경기에 대해 비난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우리가 정치를 단지 구경거리로 소비하고자 한다면, 한국 정치인들은 탁월한 능력을 가진 선수들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구경꾼의 분노와 저주를 유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분노와 저주는 관심의 산물이다. 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처럼, 우리는 욕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다음에 나올 정치 뉴스를 기다리곤 한다. 배설 욕구에 굶주린 구경꾼들에게 이렇게 일관되게 분노와 저주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먹잇감을 제공해주는 고급 엔터테인먼트가 이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정치인들에게 감사를 드려 마땅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우리가 정치를 대하는 기본 틀을 성찰의 대상으로 삼아보자는 뜻이다. 유권자가 구경꾼으로만 머무르는 '구경꾼 민주주의'라는 틀을 그대로 두고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인정하자는 이야기다. 우리는 일상적 삶에선 정치와 정당을 근접해선 안 될 '시궁창'처럼 대하면서, 그 시궁창이 시궁창답지 않기를 바라는 모순을 저지르고 있다.

우리의 '구경꾼 민주주의'는 구경꾼들에 대한 아첨을 일삼는 민주주의다. 사회적으로 무슨 일이 생기건 구경꾼들은 면책 대상일 뿐만 아니라 피해자라고 하는 담론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정치인이 구경꾼의 문제를 지적하긴 어렵겠지만, 왜 표를 얻는 일로부터 자유로운 언론과 시민사회까지 그래야만 하는가. 소비자를 황제처럼 떠받드는 '소비자 민주주의'의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겨우 소비자의 윤리와 책임을 묻는 일마저 엘리트주의로 여기는 이상한 미신이 횡행한 탓도 크다.

언론은 그런 '소비자 민주주의'의 선봉에 있다. 정치인들의 뒤만 쫓는 기존 보도 관행을 의심해보는 것도 필요하겠건만 그걸 움직일 수 없는 자연의 법칙처럼 여긴다. 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가 시민의 능동적인 참여를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정치 보도와 논평의 절반은 구경꾼으로 전락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삼는 게 옳지 않은가? 그렇게 하다 보면, 구경꾼들의 문제가 정치꾼들의 문제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것이 밝혀질 것이다. 유권자의 대다수가 구경꾼 노릇을 하는 가운데 전체 유권자의 1%도 안 되는 과격파 또는 '순수주의자들'이 타협을 적대시하는 열성적 참여를 하면서 정치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도 눈에 들어올 것이다.

대중문화학 분야에서 '스타 연구'는 '팬덤 연구'와 균형을 이룬 지 오래다. 스타 현상은 '공급'뿐만 아니라 '수요' 측면도 살펴봐야 온전히 규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급에만 매달리는 공급 중심 경제학의 보수성을 규탄하면서 어인 이유로 정치만큼은 여전히 공급 분야에만 집착하는가? 공급과 수요의 균형을 중시하면서 유권자가 책임을 분담할 때에 한국 정치의 살길이 열린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아지길 소망한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