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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6월 29일 13시 32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6월 29일 14시 12분 KST

정치인은 메르스인가?

오직 다음 선거만을 내다보는 성급함과 그에 따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그리고 그 과정에 연탄가스처럼 스며드는 계파 패권주의, 이게 바로 야당을 골병들게 만드는 주범이다. 주요 이슈에 대한 이렇다 할 대안도 없이 증오를 동력으로 삼는 '심판과 응징'에 몰두하다가 종국엔 일을 그르치는 건 지겨울 정도로 많이 보아온 장면인데, 혁신마저 그런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학생들의 벼락치기 공부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면서 왜 정당의 혁신에 대해선 벼락치기 승부수를 보이지 않느냐고 몰아세우는 것일까?

연합뉴스

새정치민주연합이 김상곤 혁신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내건 슬로건은 '육참골단'(肉斬骨斷·자신의 살을 베어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이다. 조국 서울대 교수가 제안한 것이지만, 문재인 대표가 "육참골단의 각오로 임하겠다"고 말함으로써 사실상 혁신의 기본 노선이 되었다. 자신의 살을 베어주는 건 각오의 문제를 넘어서 조 교수의 '현역 의원 40% 이상 물갈이'론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혁신의 핵심 의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마지막 혁신'"이라는 제목의 <경향신문> 칼럼에서 "김상곤혁신위가 가장 중점적으로 수행해야 할 혁신 과제는 내년 총선을 대비한 공천혁신의 방안을 제시하는 문제"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그 방안만큼이나 그 수준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물갈이 여론이 드높은 국민의 요구 수준과 이에 대해 당연히 저항할 당내 현역의원들의 이해가 충돌하는 모순적인 상황에서 국민의 요구를 어떻게, 어느 정도 관철해낼 수 있는가가 바로 그 문제다. 당이 분열되지 않는 최저선을 지키면서도 높은 물갈이를 요구하는 국민의 기대 수준에 최대한 부응할 수 있는 엄정하고 공명정대한 공천 혁신의 방안 마련이 필요한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을 바라보는 민심을 잘 대변해준 말이 아닌가 싶다. 사실 물갈이가 곧 혁신으로 통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치혐오를 넘어서 정치저주가 일상화된 한국 사회의 오랜 전통이다. '40% 이상 물갈이론'에 동의하느냐고 주변에 물어보라.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심지어 100% 물갈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이게 과연 혁신일까?

우리는 사회의 어떤 곳이 아무리 부패와 무능의 악취를 풍긴다 해도 물갈이를 주장하진 않는다. 사안별 응징만을 요구할 뿐이다. 국민적 분노를 유발한 대형 사건들이 터졌어도 우리는 관료나 군 엘리트의 물갈이를 요구하진 않았다. 타락과 무능으로 비판받는 대학이 있다고 해서 해당 대학 교수의 40%, 아니 4% 물갈이조차 주장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유권자의 손으로 뽑은 사람들에게 유권자도 아니었던 사람들이 나서서 물러날 것을 요구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시민 없는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시민은 평소 정당과 정치인을 메르스처럼 대하면서 선거 때만 표를 던지고 후닥닥 손을 씻는 구경꾼에 불과하다. '시민 있는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대한민국을 전면 개조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고 지레 포기하고, 구경꾼들의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일에 몰두하는 게 지금껏 우리가 봐온 혁신의 전부였다. 유권자들이 그런 보여주기식 이벤트에 염증을 내자 혁신을 부르짖는 말들은 갈수록 과격해지고 있다.

이런 혁신은 유권자들을 존중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들을 응석받이 어린애처럼 여기면서 영원히 구경꾼에 머무르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유권자들에게 아첨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도 요구할 게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혁신은 대중의 일상적 삶에서 '정당·정치인의 메르스화'를 깨는 시도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것 없인 민의를 반영하는 시스템과 '게임의 룰'을 세우는 일 자체가 원초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큰 그림을 그려 제시하면서 유권자들의 인내와 참여를 낮은 자세로 요구해야 한다.

어느 세월에 그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맞다. 바로 이런 반문이 모든 문제의 정답이다. 오직 다음 선거만을 내다보는 성급함과 그에 따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그리고 그 과정에 연탄가스처럼 스며드는 계파 패권주의, 이게 바로 야당을 골병들게 만드는 주범이다. 주요 이슈에 대한 이렇다 할 대안도 없이 증오를 동력으로 삼는 '심판과 응징'에 몰두하다가 종국엔 일을 그르치는 건 지겨울 정도로 많이 보아온 장면인데, 혁신마저 그런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학생들의 벼락치기 공부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면서 왜 정당의 혁신에 대해선 벼락치기 승부수를 보이지 않느냐고 몰아세우는 것일까?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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