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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12일 06시 04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13일 14시 12분 KST

'박근혜법'과 '박근혜기금'을 만들자

한겨레/청와대사진기자단

2년 전 세계일보가 이른바 '정윤회·십상시 국정농단' 청와대 문건을 보도했을 때 박근혜 대통령은 모든 걸 바로잡을 절호의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는 대신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이라며 국가의 명운이라도 걸린 것처럼 유출자를 찾아내라고 펄펄 뛰었다. 박 대통령의 그런 적반하장으로 인해 억울한 희생자가 나왔으니, 그는 바로 14장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최경락 경위다. 최 경위의 형은 동생이 자살 전 검찰 조사 때 가혹행위를 당했다며 동생의 죽음을 사실상 '정권에 의한 타살'로 규정했다.

"너무 길어서 희망이 없어. 싸워서 이길 수가 없어." 최 경위가 죽기 전 형에게 한 말이라고 한다. 박 대통령의 임기가 1~2년만 남았어도 자신의 억울함을 입증하고 경찰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는데, 3년은 너무 길어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뉴스를 잘 챙겨 본다는 박 대통령은 이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렸을지 궁금하다.

나는 최 경위가 형에게 남긴 말이 대통령 탄핵의 이유가 된 '박근혜 게이트'의 핵심을 꿰뚫는 비밀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바로 그거였다. 남은 기간이 너무 길었다! 정권 출범 당시부터 박근혜 정권에 내장돼 있던 '박근혜 게이트'에 대해 언론과 검찰이 그간 내내 모르쇠로 일관했던 이유도 남은 기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언론과 검찰이 '박근혜 게이트'를 열심히 파헤친 것도 임기 말이었기 때문이다. 언론과 검찰을 포함해 그 누구건 대통령의 남은 임기와 관계없이 자신의 직무와 관련된 모든 일을 법과 도덕의 원칙에 따라 투명하게 할 수는 없는 걸까? 그렇게 하기 위해 기존 국가운영 패러다임이나 대통령제를 바꿔야 한다는 말도 옳겠지만, 나는 실천의 구체적 방법론에 눈길이 간다.

한국이 그 누구건 공익을 위해 자유롭게 제보할 수 있는 사회라면 '박근혜 게이트'는 오래전에 발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결코 그런 사회가 아니다. 언론과 검찰조차 겁을 먹는 대통령 권력과 관련된 비리 의혹을 제보했다간 신세 망치기 십상이라는 게 상식으로 통하는 사회다. 이와 관련해 '불감사회: 9인의 공익제보자가 겪은 사회적 스트레스'(2006)와 '내부고발자 그 의로운 도전: 성취, 시련 그리고 자기보호의 길'(2014)이란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한국은 공익 제보를 탄압하는 사회이며, 그러한 탄압엔 선량한 시민들도 공범으로 가담하고 있는 현실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재벌 총수들은 박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미르·케이(K)스포츠 재단에 모두 774억원을 냈다. 그 돈으로 '공익 제보자 보호기금'을 만들어 '박근혜 기금'이라는 이름을 붙이자. 민관을 막론하고 공익 제보자에 대한 보호를 튼튼히 하는 일련의 법 개정과 더불어 필요하다면 추가 법률을 만들고 이것들에 '박근혜 법'이라는 이름을 붙이자. 나는 이런 법과 기금이 만들어져 공익 제보가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 최대 공로자는 그렇게 할 수 있게끔 자극을 준 박 대통령이며, 이 점에서 그에게 감사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박근혜 법'과 '박근혜 기금'을 만드는 것이 말의 성찬으로 끝나기 십상인 '패러다임 전환'이나 정략다툼의 소지가 다분한 '개헌'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라고 믿는다. 지금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국민적 자율성과 능동성의 상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른바 '학습된 무력감'이 전 사회에 걸쳐 만연해 있다. "나 먹고살기도 바쁜데 내가 나선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어"라는 말로 표현되는 무력감은 시민들이 능동적 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 대신 포기, 체념, 냉소주의를 습관적으로 갖게 되는 '무력감의 사회화'로 이어져 왔으며, 이는 잘못된 상황을 바꾸려 하기보다는 그 상황에 적응하려는 각자도생형 투쟁을 격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국민이 자율성과 능동성을 발휘하는 건 이번 촛불집회처럼 몇 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인데, 이 감동을 일상적 삶에서 불을 밝히는 '촛불집회 상시화'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국민 스스로 자율성과 능동성을 갖고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뿌리를 내려야 하며, 이것을 방해하고 탄압하는 모든 기제·관행·의식을 제거하거나 바꾸는 것이 우선적인 과업이 되어야 한다. '박근혜 법'과 '박근혜 기금'은 그런 과업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