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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24일 10시 33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3월 25일 14시 12분 KST

유승민 의원에게 보내는 편지

새누리당은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국민이 바라는 바를 실현하고자 한다는 의미에서의 공당이 더 이상 아닙니다.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소수의 사람에 의한, 소수의 사람만을 위한 정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이 내 판단입니다. 내가 조심스럽게 제의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만약 유 의원이 재기에 성공한다면 이 참에 아예 참신한 개혁보수세력을 결집해 새로운 깃발을 들어올리는 것이 어떠십니까? 더 이상 존재의의를 잃어버린 새누리당을 역사의 뒤안길로 몰아내고 개혁보수 세력이 주도권을 장악한다면 유 의원은 이 땅의 정치사에 두고두고 남을 업적을 남기는 셈이 될 것입니다.

연합뉴스

유 의원이 경제학자로 활동하던 시절 학회 같은 곳에서 몇 번을 스치기는 했지만 깊은 대화는 나눠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정치에 뛰어들어 의원이 된 후에는 서로 만날 기회가 더욱 적어졌습니다.

나야 정치와 철저하게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라 정치인을 만날 일은 거의 없으니까요.

유 의원이 갑자기 나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2015년 4월 국회대표연설을 할 때였습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새누리당을 낡아빠진 보수의 아성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더군다나 불통과 아집으로 특징지워지는 리더십하의 새누리당은 민주주의의 이념과도 점차 멀어져 가고 있다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유 의원의 대표연설을 듣고 새누리당에도 이런 정치인이 있었나라는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그 놀라움이란 영어로 'pleasant surprise'라고 표현하는 종류의 놀라움이었지요.

유 의원의 유연하고 열려 있는 자세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불통과 아집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새누리당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비슷한 때에 나를 놀라게 한 또 하나의 발언이 있었습니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었습니다.

복지에 쓸 돈이 하늘에서 만나처럼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세금을 더 걷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세금을 더 걷지 않으려면 공약을 저버리고 복지를 축소시키거나 아니면 빚잔치를 벌일 수밖에 없는 일 아닙니까?

그런데 현 정부가 증세에는 왜 그리 강경한 자세로 손사래를 치는 것일까요?

감세를 만명통치약으로 오인하는 신자유주의의 세뇌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 어리석은 자세를 정확히 집어내 비판한 유 의원의 혜안과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만약 새누리당이 정상적인 정당이라면 유 의원이 불러일으킨 새 바람이 케케묵은 껍질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개혁보수 정당으로 거듭 태어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새누리당은 그런 정상적인 정당이 아니었습니다. ,

새롭게 거듭 태어나기는커녕, 우리가 역사에서 흔히 보아왔던 일을 또다시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보였습니다.

무조건 맹종으로 일관하는 자들만 남기고, 올곧은 말을 하는 사람들은 쫓아내는 어리석은 짓을 한 것입니다.

'배신의 정치'라는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씌워서 말이지요.

도대체 누가 누구를 배신했기에 그런 말이 나오는 것입니까?

정치인이 믿음을 지켜야 하는 것은 오직 국민뿐이고, 유 의원은 국민의 믿음을 저버린 적이 없습니다.

그 배신의 정치라는 말을 듣고 우리 정치가 언제 이런 정도로 후퇴하고 말았는지 개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내가 보기에 새누리당의 문화에서 배신자에게는 오직 보복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갖는 사람을 포용하는 너그러움은 찾아보기 힘드니까요.

이번 공천파동에서 명명백백하게 드러났듯, 나와 정치적으로 경쟁관계에 있는 사람은 철저하게 밟아 재기불능으로 몰아가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 곳입니다.

공당으로서의 새누리당은 유 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하려면 마땅한 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단지 누구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공천에서 배제하는 것은 공당다운 모습이 아닙니다.

공천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유 의원을 고사시키려는 치사하기 짝이 없는 전략을 쓰지 않았나요?

결국 유 의원은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정의가 짓밟힌 데 분노한다. ... 정의를 위해 출마하겠다."는 유 의원의 출사표에 나는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내주고 싶습니다.

정의란 것은 단지 유 의원 개인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새누리당,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입니다.

새누리당이 이런 유 의원에게 돌려준 것은 "의원 한 번 더 하려고 당에 침 뱉고 떠났다."는 독설뿐이었습니다.

유 의원을 그렇게 구박하고선 그런 인간적 모욕까지 퍼붓는다는 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어제 유 의원은 "저의 오랜 정든 집을 잠시 떠나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잠시' 떠난다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요?

공천 못 받아 탈당해 무소속으로 당선된 사람들이 흔히 하듯 당선된 후에 다시 새누리당으로 들어가겠다는 말인가요?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강력하게 말리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우선 새누리당으로의 복귀는 유권자들을 배신하는 행위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새누리당을 심판하려는 의도에서 유 의원에게 표를 던져주는 것입니다.

당선 후 그 심판의 대상에 다시 복귀한다는 것은 유권자의 믿음에 반하는 일입니다.

유 의원의 복귀를 말리고 싶은 더 중요한 이유는 새누리당이 이미 존재의미를 잃어버린 정당이라는 데 있습니다.

새누리당은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국민이 바라는 바를 실현하고자 한다는 의미에서의 공당이 더 이상 아닙니다.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소수의 사람에 의한, 소수의 사람만을 위한 정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이 내 판단입니다.

내가 조심스럽게 제의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만약 유 의원이 재기에 성공한다면 이 참에 아예 참신한 개혁보수세력을 결집해 새로운 깃발을 들어올리는 것이 어떠십니까?

더 이상 존재의의를 잃어버린 새누리당을 역사의 뒤안길로 몰아내고 개혁보수 세력이 주도권을 장악한다면 유 의원은 이 땅의 정치사에 두고두고 남을 업적을 남기는 셈이 될 것입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