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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15일 07시 29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15일 14시 12분 KST

장애인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얼굴

Shutterstock / Gertan

바로 전 글에서 장애인과 관련한 BEAR.BETTER사의 훈훈한 얘기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해 이런 따뜻한 배려보다는 오히려 잘못된 편견이 더욱 많은 것 같아 한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은 인종차별이 매우 심한 나라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모르고 있는 사실은 차별이나 편견으로 치면 미국보다 우리 사회가 훨씬 더 심하다는 점입니다.

최소한 미국 사람들은 소수자에 대해 공공연하게 경멸적인 언사를 쓰지 않도록 철저히 교육이 되어 있습니다.

속마음이야 어떨지 몰라도 공개적으로 소수자들이 듣기에 거북한 언사를 절대 쓰지 않는 걸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소위 'political correctness'라는 것이 바로 그런 태도를 뜻하는 것이지요.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공공연히 내보이는 사람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교양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기 일쑤입니다.

미국의 교육은 바로 그 점에세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를 보십시오.

버젓이 대학까지 나오고 자신울 교양인으로 자부하는 사람조차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거침없이 내보이는 걸 자주 목격할 수 있습니다.

자기와 출신지역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성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거리낌 없이 경멸적인 언사를 쓰고서도 그것이 부끄러운 일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도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는 고질적 병폐 중 하나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장애인들이 들으면 기분 나쁠 언사를 마음대로 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지 않습니까?

그들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태도보다는 그들을 업신여기는 태도가 더 자주 눈에 띄지 않습니까?

며칠 전 BEAR.BETTER사의 이 대표를 만났을 때 장애인의 처지와 관련한 가슴 아픈 애기를 하나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장애를 가져 슬픈 사람들을 더욱 슬프게 만드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강북의 한 지역에서 어떤 중학교의 남는 공간을 발달장애인 직업훈련장으로 활용하려는 시교육청의 계획에 대해 주민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답니다.

결국 예정대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주민들은 공사를 중단하라는 행정소송으로 맞서고 있답니다.

주민들이 장애인 직업훈련 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릅니다.

표면적으로 내건 이유와 본심이 다를 수도 있을 테니까요.

대략 짐작을 해보면 그 시설의 존재가 주변 지역의 주택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반대의 주된 이유가 아닐까요?

만약 장애인 직업훈련 시설이 들어섬으로 인해 정말로 주변지역의 주택가격이 떨어진다면 제3자로서는 감 놔라 배 놔라 하기 힘든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 부유하지도 않는 지역 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주택가격 하락은 심각한 문제일 테니까요.

거기 살지 않는 내가 그 사람들을 향해 장애인들을 위해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라고 설교할 자격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대표 말에 따르면, JTBC가 이 문제에 관해 조사한 바가 있는데 장애인 관련 시설이 들어온 후 주변의 주택가격이 하락한 증거를 찾기 힘들다는 결론을 냈다고 하더군요.

만약 이 분석 결과가 사실이라면 주민들로서는 주택가격이 떨어질 것이라고 미리 겁을 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자신의 경제적 이익과 결부되어 장애인 관련 시설의 진입을 반대하는 것은 어찌 할 바 없는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반대하는 본심이 징애인들과 섞여 살기 싫다는 데 있다면 그것은 큰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처지를 바꿔서 내가 장애인이라면 이런 태도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반대하는 주민들도 나름대로의 명분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상생의 길을 찾을 수는 없는 걸까요?

지역주민과 장애인 두 측이 모두 자신을 피해자로 보는 구도에서는 적절한 해법을 찾는다는 게 무척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해도 주민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편견이 설 자리가 없게 만드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면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배려는 일종의 보험과도 같은 것입니다.

어떤 이유로 나 자신이 장애인이 될 수도 있는 일이고, 내 가족이 장애인이 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불의의 사고에 대비하려는 의도에서 보험을 들듯, 우리 모두가 장애인이 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배려라는 보험이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이기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은 비장애인이라 할지라도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배려를 적극 지지해야 마땅한 일입니다.

장애인이라 해서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별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장애가 있든 없든 모두가 내 이웃이라는 점에서는 하나도 다를 바 없습니다.

또한 장애가 있기 때문에 주변의 더욱 많은 배려가 필요하다는 점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점입니다.

BEAR.BTTER사의 이 대표를 오랜만에 만나 우리 사회의 장애인 문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