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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09일 12시 29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09일 14시 12분 KST

복지 확대도 좋은 경기부양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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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음 해의 예산안이 발표되면 으레 기자들이 전화를 걸어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내가 늘 별로 할 말이 없다고 대답을 하니 이제는 그런 질문을 해오는 기자가 별로 없습니다.

그런 질문에 꼬빡꼬빡 대답해주는 경제학자가 많으니 구태여 나에게 답을 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겠지요.

내가 그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은 주된 이유는 특히 해줄 말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다 아시듯 우리나라 예산은 기본적으로 전년도 예산을 답습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다음 해 예산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이 별로 없습니다.

정부는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여기에 역점을 두었다 혹은 저기에 역점을 두었다고 홍보에 열을 올리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정해진 틀을 크게 벗아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예산안은 정부가 국정을 어떻게 운영해 갈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 사실입니다.

정해진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아도 약간의 강조점의 차이는 생길 수 있고, 이것이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어떤 경향성을 발견할 수 있고, 이것 역시 우리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할 대목이 될 수 있습니다.

어제 내년도 예산안이 발표되자 이런저런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한 보수신문을 집어들자 "복지, 국방 등 '고정지출' 급증 ... 경기부양 예산 부족해 SOC도 삭감"이라는 커다란 제목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한 진보신문에는 내년의 복지관련 예산 증가율이 역대 두 번째로 낮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예산안을 놓고도 진보와 보수가 이렇게 보는 시각이 다른 것이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보수신문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복지지출 예산이 급증했다는 걸 인정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경기부양 예산이 부족해진다는 주장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복지지출 그 자체가 훌륭한 경기부양 효과를 갖기 때문입니다.

기업에게 돈을 퍼주고 도로나 댐을 만들어야만 경기가 부양된다는 것은 낡아빠진 사고방식입니다.

여러분 사회복지 지출로 나간 돈이 누구 주머니에 들어가는지 생각해 보세요.

가난한 사람들의 주머니 그리고 보육교사나 간병인 같은 복지 관련 종사자들 주머니에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나날의 생활에 쪼들리는 그들로서는 이 추가적 수입을 바로 소비지출에 쓸 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구요.

그러니까 소비심리를 되살아나게 하는 데 복지지출만큼 효과를 갖는 게 없다는 말까지 할 수 있는 거죠.

정부가 복지지출을 늘림으로써 좋은 일자리가 획기적으로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마땅치 않아 하는 기업더러 일자리 늘려달라 읍소하느니 정부가 주도적으로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과감하게 복지지출을 늘림으로써 가난한 사람도 돕고 일자리도 더 만들 수 있다면 일거양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복지지출 확대에 쓸 재원을 마련하는 일인데, 내가 보기에는 얼마든지 방법이 있습니다.

당장 종합부동산세만 참여정부가 애당초 구상한 수준으로 회복시켜도 상당한 세수 확보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우리 국민의 불과 2%만 내고 나머지 98%는 아무 상관도 없는 세금을 깎아준다고 우리 사회에 무슨 큰 덕이 있겠습니까?

법인세율을 원래의 25% 수준으로 되돌리는 것을 통해서도 상당한 세수 확보가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법인세율을 올리면 기업들이 모두 해외로 도망간다고 겁을 주는 사람들이 있지만 예전의 25% 수준에서도 해외로 갈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법인세율과 투자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도 없습니다.

법인세율을 예전 수준으로 되돌린다 해서 투자가 줄어드는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것임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추가적 재원조달 방법은 소득세의 최고세율을 높이는 일입니다.

Anthony Atkinson 교수는 최고소득세율을 65% 정도까지 올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합니다.

다른 경제학자들도 이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컨대 연소득이 10억 이상인 부분에 대해서는 50% 내지 60%의 세율을 적용해도 무방한 일 아닌가요?

그런다고 고액 연봉자들이 일손을 놓아버릴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결국 문제는 증세 없이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확대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허황된 공약에 있습니다.

세금을 더 걷지 않으니까 복지지출 조금이라도 늘리면 다른 부문에 영향을 미치고, 그런 이유로 복지지출 확대에 눈을 흘기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정말로 민생을 생각하는 정부라면 지금이라도 그 허황된 공약 집어던지고 좀 더 현실적인 방식으로 현안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ps. 미국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극도의 경기침체에 빠진 2008년 대통령에 당선된 오바마(B. Obama)는 복지지출 확대를 주축으로 하는 재정지출 확대책을 추진했는데, 공화당의 집요한 반대공작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으킨 장본인들이라고 할 수 있는 공화당이 위기 해소를 위한 재정지출 확대책에 훼방을 놓았다는 사실이 아이러니칼한 일이지요.

크루그먼(P. Krugman)이나 스티글리츠(J. Stiglitz) 교수 같은 진보적 경제학자들도 재정지출의 과감한 확대를 부르짖은 바 있습니다.

불황기에 소비지출 진작을 위한 복지지출 증대는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시의적절한 대응책입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