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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03일 05시 58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03일 14시 12분 KST

환경경제학자의 사회적 책무를 다시 생각해 본다

한겨레

* 이 글은 한국환경경제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글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한국환경경제학회가 첫 선을 보인 것이 1990년이니 벌써 25년의 전통이 쌓여진 셈입니다. 그 동안 우리나라의 환경경제학 분야는 연구자의 숫자와 연구논문의 양 모두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룩했습니다. 그 중심에 한국환경제학회가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축하해야 할 일입니다. 환경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는 경제학자라고는 겨우 손가락을 꼽을 정도에 불과했던 그 시절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금치 못할 정도입니다.

1962년 카슨(R. Carson) 여사가 곧 닥쳐올 환경재앙을 경고하려는 의도에서 집필한 Silent Spring이란 책이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불과 10년 전쯤 1만 2천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런던 대스모그(Great Smog) 사건 등 심각한 환경재앙 사례를 접하고도 환경보존의 절박성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책이 기폭제가 되어 세계 각지에서 환경보존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크게 울려나오기 시작했고, 정치권과 학계도 이에 부응해 환경 보존을 위한 방책을 찾는 데 팔 걷고 나서게 되었습니다. 경제학에서 환경경제학이란 새로운 분야가 본격적으로 태동하기 시작한 때가 바로 그 즈음이라고 짐작합니다.

그러나 온 사회가 경제개발이란 지상과제에 매달려 있던 우리나라는 이와 같은 세계적 흐름과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우리의 환경도 상당한 위협에 직면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개발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논리에 밀려 환경보존을 외치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처지였습니다.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그 당시 우리의 처지에서 환경 운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말을 서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대도시와 공단주변의 대기오염이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었을 뿐 아니라 전국 각지의 하천의 수질오염도 우려되는 상황이었지만, 우리 사회의 관심은 온통 경제개발 하나에만 쏠려 있었습니다.

우리 정부가 본격적으로 환경 개선에 팔 걷고 나선 계기가 된 것이 1988년의 올림픽 개최였다는 사실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입니다. 그 동안 개발 우선의 논리에 눌려 뒷전에 밀려 있던 환경보존 우선의 논리가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라는 정권의 최우선과제 수행의 일환으로 환경 개선에 나서게 되었다는 것이 결코 자랑스러운 일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정부가 환경 개선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어느 정도 고무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것이 1990년 한국환경경제학회가 출범할 즈음 환경과 관련한 우리 사회의 분위기였습니다. 즉 환경오염의 문제가 서서히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는데도 아직도 개발 우선의 논리가 우세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만 해도 지속가능한 성장을 중요시하는 환경경제학의 메시지는 사람들에게 매우 생소하게 들렸을 것이 분명합니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올림픽을 개최하는 우리나라의 환경에 대해 시비를 거는 것을 불편하게 느꼈을 뿐, 환경개선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자발적으로 그 작업에 팔 걷고 나서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환경경제학회는 경제학적 관점에서 환경보존의 중요성과 지속가능성장의 당위성을 이론적으로 확립하고 그 연구 성과를 사회 각계각층에 널리 알려야 하는 중대한 임무를 갖고 출범했습니다. 경제학의 모든 분야가 정책과 관련을 갖는 것이 사실이지만, 환경경제학은 그 본질상 정책과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환경경제학자는 이론에만 함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정책의 동향에도 날카로운 촉각을 세우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환경경제학자 모두가 사회운동가가 될 수도 없는 일이고 그것이 바람직한 일도 아니지만, 최소한 환경정책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역할은 해야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똑같이 환경경제학을 전공한다 하더라도 무엇이 바람직한 환경정책의 방향인지에 대한 입장은 사람마다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개발이 우선되어야 하느냐 아니면 환경보존이 우선되어야 하느냐의 논쟁에서 환경경제학자가 자신의 소신에 따라 어느 편에든 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환경경제학자가 경제학의 다른 분야 혹은 경제학 이외의 분야에 있는 사람과 달라야 하는 점은 잘 보존된 환경 그 자체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 대한 분명한 인식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정책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 중 하나로 지속가능성을 꼽아야 한다는 점에서도 분명한 차이를 보여야 합니다.

그 동안 우리 정부의 환경정책이 걸어온 길에서 환경경제학자들이 상당한 정도로 유형, 무형의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환경경제학자가 위원회 활동이나 자문 등의 형태로 환경정책의 수립에 직접적으로 간여하는 경우가 많을뿐더러, 설사 직접적으로 간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가 쓴 논문 그리고 그가 강의한 내용은 환경정책의 방향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주게 마련입니다. 케인즈(J. M. Keynes)가 말했듯, 경제학자들의 생각은 그것이 맞든 틀리든 간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갖는 법입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우리 국민의 환경의식과 정부의 환경정책에 그런대로 많은 발전이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환경경제학자들은 이 과정의 일익을 담당한 데 대해 자부심을 가져도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환경경제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너무나도 아쉬운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 동안 우리 정부가 추진해 온 크고 작은 개발 프로그램 중 주변 환경에 매우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큰 두 개의 사업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새만금간척사업이고 다른 하나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4대강사업이었습니다. 이 두 사업은 당연히 환경경제학자의 지대한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의 진행과정에서 환경경제학자들 대부분은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그 결과 그 사업들이 주변 환경에 대해 미칠 영향이 제대로 검증되지 못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사업이 진행되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2001년에 쓴 논문에서 지적했듯, 새만금사업 수행의 근거가 되었던 비용편익분석에서는 사업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할 부정적 환경영향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갯벌을 간척해 논을 만들면 환경개선 효과가 발생한다는 식의 상식에 어긋난 왜곡평가가 판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철저히 잘못된 비용편익분석 결과에 기초해 새만금사업은 경제적 타당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아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환경경제학자의 입장에서 사업 전체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는 없었다 하더라도, 최소한 그와 같은 대규모 사업이 환경에 대해 미칠 부정적 영향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점만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갔어야 합니다.

새만금사업은 우리 사회에서 당시에도 개발 우선의 논리가 환경보존 우선의 논리를 압도하고 있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환경과 생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시절 갯벌은 한낱 쓸모없는 땅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러나 환경과 생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도 꽤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 갯벌이 엄청난 가치를 가진 생태계의 보고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새만금간척사업에 관한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에는 간척사업을 통해 새로 조성된 농지가 얼마나 큰 가치를 갖느냐는 말만 오갔지 갯벌 보존의 중요성에 관한 말은 별로 나온 적이 없었습니다. 이는 개발을 우선해야 한다는 논리가 압도적 우세를 보이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로서, 우리 환경경제학자들도 이에 대해 일단의 책임을 져야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환경경제학자의 입장에서 볼 한층 더 아쉬운 일은, 우리 국토의 환경과 생태계에 거의 재앙에 가까운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4대강사업과 관련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방관자 노릇만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도 새만금사업의 경우에는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갯벌을 간척해 경제적 용도로 전환하자는 명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4대강사업에는 그런 최소한의 명분조차 없었습니다. 정부는 4대강사업이 필요한 이유로 홍수 방지, 용수 확보, 수질 개선을 들었지만, 내용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허황된 명분이라는 것을 바로 간파할 수 있었습니다. 단지 토목공사를 위한 토목공사를 한다는 의도에서 전국의 강들을 모조리 파헤친 사업이 바로 4대강사업의 본질이었습니다.

4대강사업의 삽을 뜨기 전에도 4대강 연변은 홍수에 대한 대비가 거의 완벽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구태여 준설을 통해 하상을 낮추어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4대강 공사 구간에서 일어난 홍수 피해가 전체 홍수 피해의 고작 4%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홍수 방지를 위해 4대강공사가 필요했다는 주장이 얼마나 허황된 것임을 생생하게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재작년의 극심한 가뭄에서 잘 드러났듯, 주요 가뭄 피해지역은 4대강사업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엄청난 양의 물이 댐에 갇혀 있었어도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었습니다. 흐르는 물을 댐으로 막기만 하면 수질이 정화된다는 주장은 아예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황당무계한 것일 뿐입니다.

4대강사업은 전 국토의 생태계를 뒤바꿀 정도로 대규모의 사업이지만 그것과 관련된 환경영향 평가는 불과 몇 달만에 날림으로 끝나 버렸습니다. 몇 년, 몇 십 년을 두고 분석하고 또 분석해도 그와 같은 대규모 공사의 파급효과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터인데, 불과 몇 달만의 날림으로 끝내버렸으니 그 부실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을 것임은 의심의 나위가 없습니다. 그와 같은 부실한 환경영향 평가는 당연히 환경경제학자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어야 마땅한 일이었지만, 아쉽게도 이에 대해 본질적 이의를 제기하는 환경경제학자는 별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4대강사업이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던 상황에서 환경경제학회가 최소한 이 문제에 관한 공론의 장을 여는 일만은 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환경경제학자들 중에 자신의 소신에 따라 4대강사업에 찬성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수 있습니다. 4대강사업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간에 환경과 생태를 주요한 관심사로 삼는 우리 환경경제학자들은 공론의 장에서 이 사업의 타당성 여부를 객관적으로 검증했어야 합니다. 환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종교인들과 지식인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는 터에 정작 환경을 연구하는 우리 환경경제학자들이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환경경제학회는 물론 다른 경제학 분야 학회들도 해마다 몇 차례나 걸쳐 정책 관련 심포지움, 세미나, 토론회 등을 자주 개최합니다. 그러나 4대강사업을 둘러싸고 온 사회가 들끓고 있었을 때 환경경제학회를 위시해 경제학 관련 학회 그 어디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그 흔한 토론회 한 번 개최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4대강사업과 관련해 온갖 주장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이 문제에 대해 가장 잘 알 수 있는 처지에 있는 경제학자, 특히 환경경제학자가 명쾌하게 정리해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밝혀주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그런 사회의 등대 역할을 하도록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꺼내기가 심히 거북스럽습니다만, 저를 포함한 환경경제학자의 책임이 특히 컸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썽 끝에 4대강사업이 종료되기는 했지만, 수많은 문제들이 아직도 잠복상태에 머물면서 여차하면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는 상황입니다. 정부는 애써 은폐하고 축소하려 들지만, 그 사업으로 인해 4대강 연변의 생태계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는 정황증거가 하나둘씩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더 이상 문제가 심각한 양상으로 치닫기 전에 시급하게 대책을 세워야 할 부분도 상당히 많아 보입니다. 환경경제학자 동료들에게 간곡하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이제라도 이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직면한 환경 문제로서 이것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없다고 믿습니다.

최근 우리 경제뿐 아니라 세계 경제가 모두 저성장 국면으로 진입하면서 많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과거의 비교적 빠른 성장국면에서도 개발을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에 맞서 환경보존을 외치기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저성장 국면으로 진입하면서 모든 관심이 성장률 제고로 쏠림에 따라 환경 문제가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봅니다. 단적인 예로 탄소배출권제도 시행과 관련해서 그렇지 않아도 상황이 어려운데 그 제도로 인한 부담까지 떠맡게 되었다는 기업의 불멘소리가 더 많은 공감을 얻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저성장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경제적, 사회적 문제가 불거져 나오는 상황에서 환경보존은 하나의 사치품으로 여겨지기가 십상입니다.

그러나 성장률이 아무리 바닥으로 떨어진다 해도 지속가능성장의 중요성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습니다. 성장률을 손톱만큼 끌어올리기 위해 지속가능성을 도외시하는 우를 저지른다면 우리는 두고두고 후회할 일을 저지르는 셈입니다. 저성장시대에서 우리 환경경제학자들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무는 국민에게 지속가능성장의 중요성을 부단히 설득하고, 당장의 급한 불을 끄고 싶은 유혹에 빠져 지속가능성을 도외시하는 어리석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감시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4대강사업의 뼈저린 경험을 좋은 교훈으로 삼아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대규모 환경파괴가 자행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항상 깨어있는 파수꾼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