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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6월 27일 13시 41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8월 27일 14시 12분 KST

박주영 선수의 비극

박 선수의 비극은 프리미어 리그 진출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금전적으로 약간 손해를 보거나 명성이 약간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고 프랑스 리그에 잔류했더라면 이번 월드컵은 그의 무대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난 2, 3년 동안 거의 실전 경험이 없는 그로서는 월드컵 무대에서 밟는 잔디밭이 생소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말에 "닭 대가리가 소 꼬리보다 더 낫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국 박 선수의 비극은 힘에 부치는 판에 끼어든 실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비단 박 선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실책을 저지르면서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학생들이 유학을 갈 때 학교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그와 비슷한 현상을 자주 관찰할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

이번 월드컵에서 보인 우리 팀의 졸전과 관련해 가장 많은 욕을 먹고 있는 선수가 바로 박주영 선수가 아닌가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오늘 그가 소속되었던 팀에서 방출되었다는 소식까지 들려 오네요.

한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격수로 화려한 활약을 보이던 그로서는 이래저래 받아들이기 힘든 굴욕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축구들 잘 모르지만, 박주영 선수는 확실히 천재적인 소질을 갖고 있는 선수처럼 보였습니다.

최소한 프랑스 리그에서 활약할 때만 하더라도 그는 최정민-차범근-최순호-안정환(혹은 황선홍)으로 이어지는 우리 축구 골잡이 계보의 확실한 황태자처럼 보였습니다.

그런 박 선수가 오늘의 굴욕을 맛보게 되었다니 그를 아끼는 한 사람으로서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여러분들도 흔쾌히 동의하시리라 믿습니다만, 박 선수의 비극은 프리미어 리그 진출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금전적으로 약간 손해를 보거나 명성이 약간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고 프랑스 리그에 잔류했더라면 이번 월드컵은 그의 무대였을지 모릅니다.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그는 확실한 우리 팀의 리더였을 테니까요.

그러나 지난 2, 3년 동안 거의 실전 경험이 없는 그로서는 월드컵 무대에서 밟는 잔디밭이 생소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아스널로 이적한다고 했을 때 과연 한 순간에 주전을 꿰찰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었을까요?

본인도 그 사실을 잘 알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열심히 노력을 하면 언젠가는 주전 자리에 오를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희망에서 프리미어 리그의 화려한 무대로 오르기로 결심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나는 그가 프리미어 리그로 옮긴 후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였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넘지 못할 높은 벽이 가로막혀 있음을 절감하게 된 것이 아닐까요?

세계 최고의 선수들만 모은 무대에서 선뜻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인다는 건 정말로 어려운 일일 테니까요.

우리말에 "닭 대가리가 소 꼬리보다 더 낫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축구 천재들이 우글거리는 범의 소굴로 들어가 설움을 겪느니 차라리 명성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만만한 프랑스 리그에 만족했더라면 오늘의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리미어 리그로 옮기기 직전 프랑스 리그에서 올린 성적을 보면 거기에서 스타의 반열에 오르지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결국 박 선수의 비극은 힘에 부치는 판에 끼어든 실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충분히 견딜 만한 판을 선택했더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비극인 것이지요.

그런데 비단 박 선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실책을 저지르면서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우리 학생들이 유학을 갈 때 학교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그와 비슷한 현상을 자주 관찰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유학 갈 학교를 고르는 요령은 지극히 단순명료합니다.

어드미션을 얻은 대학 들 중 가장 랭킹이 높은 학교를 고르는 것이 만고불변의 법칙입니다.

물론 미국 학생처럼 자기가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데 어떤 대학을 가면 가장 적합할지를 고를 정도로 성숙된 평가를 기대하기는 어려울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 특유의 '일류병'이 여기에서 그대로 드러나 무조건 랭킹이 높은 대학을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자기의 능력에 비추어 볼 때 충분히 감당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수준의 대학을 선택한다는 건 아예 고려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나는 원하는 명문 대학에서 어드미션이 오지 않아 실망하고 있는 제자에게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위로해 줍니다.

그런데 그게 단순히 위로해 주려는 목적에서 하는 빈말이 아니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격려입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걸 자주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랭킹이 조금 떨어지는 대학으로 유학을 간 제자들 중에 아주 좋은 성과를 거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계적인 명문으로 유학을 갔는데 막상 성과는 시원치 않은 사람이 꽤 됩니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랭킹이 조금 떨어지는 대학에 간 사람은 거기서 스타 정도의 대접을 받기 십상입니다.

더군다나 능력은 있는데 운이 나빠 더 좋은 대학에서 어드미션을 얻지 못한 경우에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더욱 큽니다.

이렇게 스타 대접을 받다 보니 자신감이 생기고 좋은 지도교수 만나서 좋은 논문을 쓰는 성공의 길로 달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최고의 명문이라고 일컫는 곳에 가면 족탈불급(足脫不及)의 경지에 이른 천재들이 득시글합니다.

L. Summers, P. Krugman 혹은 T. Piketty 같은 사람들과 한 클라스를 이루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자신감이 얼마나 떨어질 것이며, 교수들 눈에 띈다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 일이 될까요?

바로 이런 역학관계 때문에 원하는 대학에서 어드미션을 받지 못한 것이 오히려 복이 되는 역설적인 결과가 빚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자신의 능력에 비추어 조금 만만한 판을 골라 승부를 거는 것이 승리의 지름길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록 유학을 갈 대학을 고르는 일에만 적용되는 진리가 아니라, 우리 인생의 여러 측면에서 적용될 수 있는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행정고시 붙은 사람이 별로 인기가 없는 부서에 배치된 것도 나중에 보면 하나의 축복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짝 찾는 일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눈높이를 한껏 높이고 사는 사람은 성공하기도 힘들고 행복해지기도 힙듭니다.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은 바로 박주영 선수의 예에서 잘 알 수 있는 것이고, 행복해지기 어렵다는 것은 기대수준과 현실 사이의 격차가 클수록 더욱 불행해진다는 평범한 진리가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는 조금 눈높이를 낮추며 사는 버릇을 가지라고 충고해 주고 싶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 충고를 고맙게 생각하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확신합니다.

* 이 글은 이준구 교수의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