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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1월 08일 08시 53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1월 08일 08시 54분 KST

기술부채 권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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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는 한국 스타트업 회사들의 내면을 살펴보면, 싼 초급 개발자를 구해다가 대충 서비스를 개발해 투자를 받아낸 뒤, 나중에 이용자가 늘어나자 이를 감당하지 못해 장애가 마구 터지면서 뒤늦게 고급 개발자를 찾을 때가 종종 있다. 이들의 소스코드를 뜯어보면 황당할 때가 많다. 비밀번호가 암호화되지 않은 채 보관된 업체부터, 다른 사람의 아이디를 베껴 가입하면 아이디 중복 확인이 없어 그의 개인정보를 한 번에 받아낼 수 있던 소셜코머스 서비스까지 정말 가지가지다.

이런 날림 개발 때문에 훗날 떠안게 되는 위험을 전문용어로 '기술부채'라 부른다. 급히 서비스를 만들며 감수한 부채가 훗날 이자까지 얹어져 돌아온다는 개념이다. 개인정보 유출 같은 보안사고, 꾸준히 터지는 장애와 업무마비, 미래를 생각 안 하고 짠 '레거시 코드'로 인한 개발지연, 이로 인한 기업경쟁력 저하 등이 기술부채의 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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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때 수리하는 것으로는 답이 안 나올 정도로 장애가 밀려들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끔은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것이 현명할 때도 있다. 부실하게 건물을 짓는 바람에 보수공사를 계속하다 파산할 지경이라면, 차라리 건물을 부수고 새로 튼튼히 짓는 것이 더 나은 것처럼 말이다.

금융권 개발업계에서는 이런 작업을 '차세대'라 흔히 부른다. 발주사업 이름이 '차세대'였던 적이 많아서다. 금융 시스템은 사소한 오류가 하나라도 있으면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그래서 시스템을 새로 구축했다가 안정성을 믿을 수 없어 수백억원의 개발비만 날리고 옛 시스템으로 되돌린 경우도 많다. 국내 한 은행은 오래된 시스템으로 계속 버티다 그 시스템이 전면 마비되는 바람에 1959년에 개발된 '코볼' 언어를 쓰는 '할아버지 개발자'를 겨우 모셔다 고쳤다는 전설도 나돈다. 쌓이고 쌓인 기술부채를 걷어내는 것은 이렇듯 쉬운 일이 아니다.

기술부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회사들도 있다. 하지만 거꾸로 기술부채를 키워가는 곳이 한국에는 더 많아 보인다. 마케팅에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회계·정산 시스템은 수년간 방치한 채 작가 정산을 엉터리로 해오다 들킨 회사가 요즘 꾸준히 회자되고 있다. 창업 초기의 기술부채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빠르게 검증하는 것이 숙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단기에 성장을 끌어내 빠르게 '엑싯'(투자회수)하는 것에 집중하는 투자자본이 시장 대부분을 차지하는 창업 생태계에선 되레 기술부채 발행을 적극 권하는 일이 벌어진다. 창업 생태계가 투자가 아닌 단기 투기판에 몰입하면 기술부채는 사회 전체가 감당하는 폭탄 돌리기 게임이 된다. 이 게임에서는 고급 개발자가 설 자리가 없다.

20년 전 한국 개발업계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고급 개발자 1명을 데려오는 대신, 초급 '인부' 20명을 쓰는 게 더 싸다며 고급 개발자를 내치곤 했다. 20년 뒤 스타트업을 권하는 요즘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거리마다 흔히 보이는 '백수탈출 빅데이터 무료교육' 입간판에서 보듯, 전문가 대신 인부 수요가 더 많은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그래서 주변의 많은 고급 개발자들이 '탈조선'을 결행한다. 어느 신문에서 이를 두고 인재 유출이라 부르며, 언젠가는 이들이 꼭 귀국해 조국 발전에 이바지했으면 한다는 기사를 냈다. 기술부채 권하는 나라에서 퍽이나 가능하겠다 싶다.

* 이 글은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