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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6일 10시 20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1월 26일 14시 12분 KST

나는 원래 딱딱한 침대를 좋아했다

침대에 나란히 누운 5분동안 '와, 이제 우리는 이 침대에 평생을 이렇게 함께 잠들겠구나.' 라고 잠깐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함께 침대를 구입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만한 생각이겠지.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그때 점원이 덧붙였다. "퀸 사이즈는 몇 주 기다리셔야 합니다. 대신 싱글 두 개를 붙여서 쓰시는 집도 많아요. 싱글은 내일 당장 갖다 드릴 수 있어요." 오, 이렇게 현실적인 조언이. 그럼 헤어질 때 하나씩 가져가면 되는 거네.

전 남자친구와 이 침대를 사러 갔던 날이 생각난다. 2011년 가을쯤이었던가 싶다. 두바이인지 어디인지 해외촬영을 다녀왔던 그는 그 호텔에 있던 것 같은 푹신한 침대를 사고 싶다고 했다. 나도 동의했다. 나 역시 누우면 온몸이 그 안으로 꺼지는 푹신한 침대를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당시 쓰던 침대는 내가 처음 집에서 독립한 2004년 샀던 무지의 더블 베드였다. 함께 지낸지 5년만에 우리는 가끔 자리를 잘못 잡으면 발이 침대 밖으로 삐져나와서 여지없이 고양이들한테 공격당하는 (고양이들은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발가락을 가지고 놀길 좋아한다. 덕분에 내 엄지발가락은 늘 발톱 자국 투성이였다.) 작고 좁고 울퉁불퉁한 싸구려 침대를 버리고 크고 푹신하고 어이없이 비싼 침대를 샀다. 별 이유도 없이.

점원은 침대에 누워보는 우리에게 거위털 이불을 덮어주었다. 침대의 한 가운데로 푹 꺼지는 느낌이 드는, 우리가 원했던 침대였다. 여기에 누우면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지 그 매장에서는 실제로 2-3시간의 트라이얼 슬리핑 세션을 진행하고 있었다. 침대에 나란히 누운 5분동안 '와, 이제 우리는 이 침대에 평생을 이렇게 함께 잠들겠구나.' 라고 잠깐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함께 침대를 구입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만한 생각이겠지.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만약 당신에게 그런 경험이 없다, 말해두는데 그건 전혀 로맨틱한 느낌은 아니었다. 느낌표도, 하트도 끝에 찍히지 않은 그저 "이제 이렇게 되는 건가." 에 가까운 문장에 머리를 가로질러 전광판처럼 흘러갔을 뿐이다. 그때 점원이 덧붙였다. "퀸 사이즈는 몇 주 기다리셔야 합니다. 대신 싱글 두 개를 붙여서 쓰시는 집도 많아요. 싱글은 내일 당장 갖다 드릴 수 있어요." 오, 이렇게 현실적인 조언이. 그럼 헤어질 때 하나씩 가져가면 되는 거네.

"평생 이 침대에서 같이 자겠구나," 와 "헤어질 때 침대 한 쪽씩 가져갈 수 있겠다."를 동시에 떠올렸단 사실이 심지어 그다지 이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침대를 사고 한 17개월 만에 우리는 헤어졌다. 싱글 두 개를 사서 하나씩 나눠가져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치고는 꽤 오래 버텼다고 그와 헤어지고 난 며칠 후 그 날의 잠깐을 떠올리며 이별에 꽤나 수긍했다. 우리들의 '촉' 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정확하고 예민하다. 단지 그걸 부정하려는 노력이 훨씬 더 클 뿐.

이별을 그다지 힘들지 않게 넘긴 것과는 상관없이 그 후 몇 달 동안 나는 계속 그 전처럼 침대의 왼쪽편에서 잤다. 침대 한 가운데에 보이지 않는 빨간 선이 그어져 있는 듯이, 개가 마당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설치하는 전기 펜스라도 있는 양 나는 몇 달째 왼쪽에서 자고 있었다. 그건 그냥 버릇이었다. 그 버릇을 가끔 기분이 울적한 날에는 다른 의미로 해석하기도 했던 것 같지만, 그저 버릇일 뿐이라는 것을 난 알고 있었다. 어느 날 밤 나는 문득 이 침대가 매우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러다간 침대 한 쪽만 움푹 패여진 그야말로 처량맞기 그지 없는 꼴이 될 것 같았다. 비싼 침대가 너무 걱정되어서 이별의 후유증 따윈 순식간에 극복해내는 나는 참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잠깐 생각하며 스스로의 어깨를 자랑스럽게 토닥거렸다. 다음날 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침대의 오른쪽에서도 왼쪽과 다름없이 쿨쿨 자기 시작했고 5개월이 지난 지금 침대를 팔아버리고 싶어졌다. 이 침대는 지나치게 푹신해서 늪처럼 날 붙잡았다. 지나치게 편해서 버릇처럼 이어져 나갔던 나의 관계를 상기시켜주는 물건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원래 딱딱한 침대를 좋아했었다는 걸 다른 남자의 침대에 누워 드디어 기억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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