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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9일 10시 32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1월 19일 14시 12분 KST

나는 당신이 개를 키우지 않았으면 한다

이 모든 건 그 개들의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그 개의 주인들이다. 대부분의 개들이 공을 쫓아 뛰어다니고, 서로 인사하고 냄새 맡는, 그러기 위해 존재하는 공간인 개놀이터에 자기 개를 데려왔다면, 그 개가 어느 정도 제대로 행동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때, 혹은 내가 내 개를 컨트롤 할 수 있을 때 데려와야 한다. 개를 키운다는 것은 그 개의 나쁜 버릇이나 나쁜 행동까지 책임진다는 것이다.

내 개가 다른 개에게 물렸다.

지난 일요일 월드컵 공원 내의 반려견 놀이터에서 벌어진 일이다. (반려견 놀이터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월드컵 공원과 어린이대공원 두 곳에 있는 개를 위한 운동장이다. 목줄 없이 여러 개들이 어울려 놀 수 있는 서울의 거의 유일한 공간이다.)

개들도 취향이 있다. 봄이는 주로 하얗고 까만 보더콜리 스타일의 개들을 좋아하는데 마침 봄이를 문 개가 딱 그렇게 생긴 개였다. 개놀이터에서 늘 하듯이 봄이는 그 개에게 인사를 하러 다가갔고, 그 순간 그 개가 봄일 물어버린 것. 놀라서 나에게 달려온 봄의 얼굴을 살펴보니 눈을 조금 빗겨나간 아래쪽에서 피가 나고 있었고, 나는 봄이를 문 개의 주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는 물론 죄송하다고 말했고, 자기 개가 소유욕이 강해 공을 물고 있을 때 옆에 다가오면 다른 개들을 공격한다고 했다. 그의 사정 설명보다는 당장 저기서 풀이 죽어 피를 흘리고 있는 내 개가 걱정되어 짤막한 사과를 받고 돌아섰지만, 봄의 피를 닦아주고 얼러준 다음 생각해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리고 그 개는 봄이뿐 아니라 다른 여러마리의 개들에게도 계속 공격적이었고, 그런 마찰이 계속 일어나는 것을 참다 못한 개 주인 한 명이 그에게 가서 따지자, 그는 계속 옆에 다가오는 당신 개의 잘못이란 식으로 대꾸했다고 한다. 만약 내 개가 조금 더 윗쪽을 물려 눈을 다쳤다면, 혹은 다른 개가 더 심하게 물렸더라면 어쩔 뻔했을까.

이 멍멍이뿐이 아니라 그날 따라 개놀이터는 정말 '물' 이 좋지 않았는데, 여기 저기서 크고 작은 싸움이 계속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그 싸움의 또 다른 주인공은 아직 어리고 성격이 예민한 도베르만이었다. 이 개 역시 당췌 컨트롤이 되지 않는 아이였는데, 다른 개들한테 계속 싸움을 걸고 다녔다. 주인은 부르면 개가 달려 오는 것도 아니면서 (미끈한 몸매의 도베르만이 맨몸으로 재빠르게 요리조리 피하면 그건 정말 잡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개를 쉽게 제지할 수 있도록 목걸이조차 채워놓지 않았고, 싸우면 안된다고 가르치는 대신 그때마다 품에 안고 어르고 오늘 왜 그렇게 심기가 불편하냐며 진정하라고 달래기만 할 뿐이었다.

개는 (옆에서 내가 보기에는) 그게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라는 걸 전혀 배우지 못하고 있었고, 주인이 자기를 안고 얼러주는 것이 좋아 계속 주인의 얼굴을 핥으며 애교를 부렸다. 사람마다 자기가 개를 키우는 방식이 있을 테니 그건 인정할 수 있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과 다른 개들에게 폐가 되고, 심지어 위협하는 상황이라면? 심지어 봄이를 문 개에게도 도베르만은 계속 싸움을 걸었는데, 자기 개가 남의 개를 공격할 때는 심드렁하던 그 개주인도 자기가 피해자가 되자 도베르만 주인에게 화를 냈다. 그걸 보는 것도 참 씁쓸했다랄까.

그런데, 이 모든 건 그 개들의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그 개의 주인들이다. 대부분의 개들이 공을 쫓아 뛰어다니고, 서로 인사하고 냄새 맡는, 그러기 위해 존재하는 공간인 개놀이터에 자기 개를 데려왔다면, 그 개가 어느 정도 제대로 행동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때, 혹은 내가 내 개를 컨트롤 할 수 있을 때 데려와야 한다. 종종 놀이터에서는 입마개를 씌운 개들을 볼 수 있는데,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게 다른 개들, 그리고 심지어 내 개를 위해서도 옳은 일이다.

개를 키운다는 것은 그 개의 나쁜 버릇이나 나쁜 행동까지 책임진다는 것이다. '개를 키운다는 것은 큰 책임을 동반하는 일이야.' 라고 말할 때 사람들은 종종 그 책임이 아플 때 병원에 데려갈 책임이라거나, 건강하게 키울 책임, 그리고 평생 버리지 않고 같이 살 책임 정도라고 생각하고 마는 것 같다. 하지만 당신이 책임져야 할 자잘한 일들은 생각보다 많고 또 세세하다. 길에 싼 똥은 깨끗이 치워야 하고 (나는 개가 설사를 할 것 같은 날에는 작게 자른 신문지 몇 장을 함께 가져간다. 개가 자세를 잡으면 타이밍을 맞춰 신문지를 밑에 깔아준다. 그렇게 하면 길에 보기 안 좋은 똥자국을 남길 일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남의 집 문 앞이나 가게 앞에서는 오줌을 싸게 두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되도록 여름에는 집 앞 산책때 생수병에 물을 채워 가지고 다니다가 혹시라도 건물 입구 같은 곳에 잘못 오줌을 싸면 물을 뿌려둔다. 아무리 내 개가 착하고 순하다고 해도 무슨 일이 벌어질 지는 알 수 없으니 다른 개들과 인사를 할 때는 항상 조심하며 (마음을 놓을 수 있기 전까지는 최대한 끈을 짧게 잡는다), 다른 개들을 만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가르쳐야 한다. 또, 공공장소에 개를 데리고 간다면 최대한 예의 바르게 행동하도록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하며, 침을 많이 흘리는 우리 개 같은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의 옷에 침을 묻히지 않도록, 혹은 내 개를 만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침이 묻을 수도 있다고 미리 말을 해 준다. 개를 환영해주는 맘 좋은 동네 카페에 갈 때는 내 개가 그 카페의 바닥에 흘린 침 정도는 닦고 나와야 한다. 함께 쓰는 계단 통로에 떨어진 개털은 직접 자주 청소하고, 분리불안 같은 문제를 겪는다면 시간과 노력이 얼만큼 들든 참을성을 가지고 교육으로 안정시켜줘야 한다.

이것말고도 수십, 수백가지의 책임질 일들이 있지만, 사람들은 종종 그걸 잊고 "개인데 어쩔 수 없잖아요" 라는 식으로 어깨를 들썩인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애가 다 그렇지, 어쩔 수 없잖아요? 라고 말하는 한심한 부모들이 떠오른다.) 그러게, 개인데 어쩔 수 없으니 당신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개인데 어쩔 수 없잖아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주로 개를 버리거나 포기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 어쩔 수 없다고 감싸면서 잘못된 사랑을 하다가, 결국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지면 모든 걸 버릇 나쁜 개 탓으로 돌리는 비겁한 사람들이 이들이다.

내 주변만 보아도 지난 1년간 개들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하지만 개를 키울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 책임 질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띄고 그것만큼 속상한 광경도 없다. 무엇보다 그 개의 미래가 걱정되어서 속상하고, 지금도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 속상하고, 그 개주인들 때문에 개를 싫어하게 되는 사람들이 생길까봐 속상하다.

나는 준비가 되지 않은 개주인들을 개놀이터에서 (혹은 내가 얼마 전까지 살던 이태원/경리단 지역에서 -이 동네는 유난히 큰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너무 자주 보고 있다. 처음 내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개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때만 해도 아직 알려지지 않은 때라 좀 신기할 정도로 열정적인 개어멈, 개아범들이 많았다. 개를 키우지 않는 사람들이 봤다면, "저 사람은 개가 인생의 모든 것인가 봐."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퇴근하면 바로 개를 픽업해 이리로 달려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들의 개들은 정말 놀라우리 만치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며 또 동시에 더 놀라울 만큼 예의 바른 아이들이었다. (재미있게도 대부분의 개들이 나이가 있는 개들이었다.) 고양이들만 10여년을 키우다가 첫 개로 봄이를 입양한 지 갓 2년차가 된 나에게는 굉장히 좋은 수업과 같아서, 그 후 몇 달간 나 역시 매일같이 개놀이터를 들락거리며 그 개들과 개주인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처음에는 혼자 테니스공하고만 놀던 봄이도 다른 개들과 어울리는 법을 느리지만 차근차근 배웠고, 나는 어떤 행동은 괜찮고 어떤 건 꼭 고쳐야 하는지를 배웠다.

물론 내 개에게도 여전히 고치지 못한 나쁜 버릇은 있다. 아까 말한 하얗고 까만 자기취향의 개를 만나거나, 아직 어린 대형견들을 보면 지나치게 흥분해 종일 스토킹을 하고, 계속 올라타려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 와중에 상대 개의 등짝에 흥건하게 침을 묻히는 건 보너스랄까... 혼을 내고, 저지하다가 안되겠다 싶으면 나는 공원을 떠난다. (축구공에 지나치게 환장하는 것도 아직 못 고쳤다. 지난 몇 달간 놀이터에서 터트린 세 개의 축구공의 주인견과 주인에게, 괜찮다고 하셨지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또 사과드린다, 흑...) 내 개를 문 그 개주인과 도베르만 주인도 개들과 함께 공원을 떠났어야 했다. '어렵게 주말에 시간을 내서 운전해 여기까지 왔는데 고작 다른 개들한테 몇 번 으르렁거렸다고 집에 가야 한다니'라며 억울해 하거나, 집에 돌아가자마자 개인데 어쩔 수 없으니까 깨끗이 잊어버리는 대신 얘와 내가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우리 모두 더 행복해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개를 키울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 무턱대고 개들을 들이고, 그건 고스란히 다른 개와 그 주인들에게 연대책임으로 돌아간다. 당신이 줍지 않은 개똥 하나를 지나가면서 보게 되는 열 다섯 명 중 한 명은 그 후로 지나가는 개들을 볼 때마다 눈살을 찌푸릴지도 모른다. (올드독님의 책 "개를 그리다"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창문에서 키우는 개들과 함께 바깥을 감시(?)하다가 지나가는 개와 개주인이 개똥을 줍지 않으면 "똥 치우세요!" 라고 외쳤다던 장면. 그건 더러워서도, 내 집 앞이 걱정되어서도 아니고 내 개와 다른 모든 개들을 위해서인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은 '나 하나쯤이야' 와 '난 안 그러니 상관없어' 의 콤비네이션으로 늘 더 악화된다. 당신이 이런 사람이라면, 책임이라는 단어에 얹은 먼지 하나까지 제대로 바라볼 생각이 없다면 나는 당신이 개를 키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을 위해서, 그리고 그보다 당신이 키우게 될지도 모르는 그 개의 행복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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