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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21일 07시 06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4월 22일 14시 12분 KST

잘못된 예측 다음엔 겸손한 해석이라도

연합뉴스

이번 총선 결과는 나 자신을 포함해 거의 모든 사람의 예상을 벗어났다. 선거가 끝나자 언론인, 지식인, 정치인 가릴 것 없이 잘못된 예측과 그것에 입각해 잘못된 주장을 했던 것에 대한 반성이 이어졌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런 놀라운 선거 결과를 낳은 유권자들 또한 잘못된 예측에 입각해 선택을 했던 것이다. 그러니 '잘못된 예측'이란 말을 조심스럽게 써야 한다. 심각한 편기를 가진 여론조사와 선거구도에 대한 경험칙에 입각한 판단이 조합된 '어떤 예측'에 근거해서 유권자들이 내린 선택의 총합이 그 예측을 잘못된 것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정리해보면 이렇다. 정당과 정치인은 잘못된 여론조사를 방치하거나 조장하고는, 어쩔 수 없이 그것에 입각한 믿음을 형성하고, 거기에 몇 가지 추정을 더한 판단에 기초해 전략적으로 행동했다. 유권자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은 믿음과 추정 위에 정치인과 정당들의 행동에 대한 판단을 추가해서 선택을 했다. 결과가 개별 정치인에 따라서 혹은 유권자 자신의 정치 성향에 따라서 요행히 즐거울 수도 있지만, 과정 자체는 오류를 수반하고 그 오류가 결정 요인으로 개입한 복잡한 것이었다.

내 보기엔 이런 사태가 우선 제공하는 교훈은 두 가지다. 하나는 여론조사가 좀 더 정확해지도록 법적·제도적 여건을 정비하는 일이다. 안심번호에 기초한 이동전화에 대한 조사 허용은 이제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문제는 해결책이 명료하고 여론조사 전문기관의 편에서도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 쉽게 풀릴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제력과 관련된 좀 더 어려운 과제인데, 그것은 잘못된 예측에 대한 이왕의 반성적 태도를 총선의 의미에 대한 해석에서도 견지하는 것이다. 정치인, 유권자, 언론인 모두가 너무 과감하게 해석하지 말고, 단정하지 말고, 아전인수를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총선은 '승패'를 동반한다. 그러니 '패배'한 편에서는 패배를 부인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려는 심리가 생기고, '승리'한 편에서는 그 성과를 찬탈하려는 동기가 생긴다. 이로 인한 다소간의 아전인수마저 피하긴 어렵다. 하지만 총선 후 며칠이 지나기도 전에 운전으로 치면 가드레일을 들이박는 것 같은 난폭한 의미부여가 너무 많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선거에 대해 거의 유일하게 합의할 만한 해석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대중의 실망과 반발의 표현일 텐데도, 유승민 때문에 졌다, 이건 국회 심판 맞다 같은 아연한 주장이 새누리당 일각에서 나온다. 야권도 아전인수에서 크게 뒤지지 않는다. 김종인 대표 덕에 이겼다. 아니다, 그의 셀프공천으로 인한 역풍을 문재인이 겨우 막았다. 무슨 소리냐, 문재인의 호남 방문은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아니다, 그 덕에 수도권에서 결집이 이루어졌다. 국민의당은 호남에 갇혔다. 아니다, 정당지지율에서 더민주를 능가하며 전국정당화를 이뤘다. 오히려 더민주야말로 수십년 문전옥답을 잃었다. 문재인이 그랬듯이 호남 없는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면 이제 더민주는 정권교체의 주도권을 잃었다. 무슨 소리냐, 더민주는 호남 없이도 전국정당화를 이룩했다. 호남인들이야말로 이 사태 앞에서 당황하고 있다. 모두가 야단스럽고, 엄밀히 말하면 근거가 박약하고 정치적으로 위험한 해석들이다.

많은 논의가 대통령 선거를 향한 정치산술 그리고 내부 권력투쟁과 연계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섣부른 판단이나 예측에 입각한 전략적 선택이 언제나 자신에게 만족스런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원하는 결과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라도 총선의 의미에 대해 더 겸손한 해석을 시도해야 할 때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