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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16일 10시 56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7월 16일 14시 12분 KST

먹고사니즘과 먹방

짙은 정치적 그늘 속에서 핀 버섯을 식재료로 볶음밥을 하며 즐거워하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남은 수수께끼는 "오늘 뭐 먹지?"가 되었다. 이 골치 아픈 수수께끼에 답하는 것은 "요즘 핫한 떡볶이 맛집~ 침이 넘어가네요" 하는 국정원의 문자메시지다. 하지만 하루종일 헤드폰을 끼고 모니터를 바라보며 도감청하다 지쳐 원룸으로 돌아간 국정원 직원의 밤 시간을 무엇이 채우겠는가? 야식 주문 메뉴 책자 아니면 먹방일 것이다. 그 또한 그렇게 자신이 참여해 만든 체제의 희생자인 것이다.

한겨레

지난달에 종영한 티브이 드라마 <프로듀사> 2회에서 팀에 배치된 첫날부터 실수를 저질러 안절부절인 신임 피디 백승찬(김수현 분)에게 선배 피디(배유람 분)가 이렇게 말한다. "너 피디에게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알아? 시간외 근무 수당 신청. 남는 건 그거밖에 없어. 바로바로 입력해라. 5일 지나면 사라져버려." 실제의 방송사와 프로그램을 계속해서 언급하고 다큐 형식을 가미함으로써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애매하게 처리하는 이 드라마에서 외주 제작사도 아닌 케이비에스의 정규직 피디가 한 이 말만큼 우리 사회에 편만한 '먹고사니즘'을 잘 드러내 주는 것이 또 있을까?

이만큼 인상적이진 않아도 먹고사니즘이 사회지도층이나 전문직에게까지 깊게 파고들었음을 보여주는 예는 많다. 언제부터인가 '생계형 국회의원'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 그들을 특정 정당에 가입한 프랜차이즈 점주로 묘사하기도 하는데, 모욕적이기보다는 적합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고등교육의 방향 설정과 관련해 책임 있는 태도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는 대학의 젊은 교수는 "그저 좀 좋은 직장에 취직한 것뿐인데 책임이라뇨"라고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먹고사니즘이 아니고서야 환자에게 긴요하지도 않은 고가 의료장비 사용을 권하는 의사가 어떻게 인지 부조화를 벗어날 수 있겠으며, 기자가 조회수에 연연하며 낚시성 기사 제목을 뽑을 수 있겠는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한 그릇 밥에 깃든 노고를 낮잡아 보아서가 아니다. 먹고사니즘이 도처에서 승리를 거두는 과정이 삶의 다른 가능성들이 가로막히는 과정이기도 해서이다. 완성을 향한 숙련과 자기 도야의 자리가 직업에서 취미로 옮겨가고, 우리를 동시대인으로 묶어주는 것이 실시간 검색순위가 되고, 공적 관심사가 연예 기사에 대한 관심으로 이전되거나 공적 토론 자체가 아예 예능 프로그램을 닮아가는 것이 우리 시대의 풍경이다. 그럼으로써 먹고 살아있음이 열정적 작업과 공적 참여를 뒷받침하기보다 그런 차원의 삶이 발아하는 것을 막아서거나 외면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그런 세태를 반영하는 먹고사니즘이란 이 기막힌 말은 우리가 먹고 생식하고 배설하는 신진대사, 생로병사의 사적 공간에서 진행되는 단순한 생명의 원환에 갇혀 있음을 말해준다.

이렇게 정치와 작업에서 분리된 단순한 삶은 생명 자체에 깃든 단순한 즐거움에 몰두한다. 그리하여 잘 사는 것이 잘 먹는 것으로 환원된다. 맛집을 순례하고, 순례가 끝나면 식자재의 무덤인 냉장고를 발굴하고, 고급이 아니라 고급져 보이는 음식을 위해 설탕을 쏵 또는 쏴악 뿌리고, 그렇게 삼시세끼를 챙겨 먹는 중에 하루해가 저문다.

이런 시대에 '셰프'가 대세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셰프는 식재료를 다스려 풍미를 더하고 편하게 소화되는 음식 뒤에 말없이 머무는 요리사가 아니다. 먹는 입이 사회적 소통을 주도하는 말하는 입과 절연되는 사회에서 말하는 입은 먹는 것에 대해 말하는 입이 된다. 지금 요리사가 아니라 '셰프'라 불리는 이들은 먹는 입을 위해 먹을 것을 만들며 먹는 것에 대해 맛깔스럽게 말하는 존재이다.

그리하여 짙은 정치적 그늘 속에서 핀 버섯을 식재료로 볶음밥을 하며 즐거워하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남은 수수께끼는 "오늘 뭐 먹지?"가 되었다. 이 골치 아픈 수수께끼에 답하는 것은 "요즘 핫한 떡볶이 맛집~ 침이 넘어가네요" 하는 국정원의 문자메시지다. 하지만 하루종일 헤드폰을 끼고 모니터를 바라보며 도감청하다 지쳐 원룸으로 돌아간 국정원 직원의 밤 시간을 무엇이 채우겠는가? 야식 주문 메뉴 책자 아니면 먹방일 것이다. 그 또한 그렇게 자신이 참여해 만든 체제의 희생자인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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