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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15일 10시 45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16일 14시 12분 KST

한상균 위원장의 석방을 위하여

연합뉴스

집합적 사회운동은 다양한 투쟁 레퍼토리를 가진다. 예컨대 사람들은 집회를 할 수도 있고,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다. 경찰을 향해 화염병을 던질 수도 있고,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을 할 수도 있으며, 촛불을 들고 거리행진을 할 수도 있다. 이런 투쟁은 그것을 통제하려는 시도와 상호작용한다. 예컨대 경찰은 촛불집회에 대해 차벽이라는 대응 양식을 개발했다. 그리고 차벽에 화가 난 사람들은 밧줄로 차를 끌어내려 했으며, 경찰은 그런 이들에게 물대포를 쏘았다.

2016년 촛불집회는 자제심을 발휘해 차벽을 '존중'해주는 쪽으로 나아갔다. 백만 이상의 사람들 앞에서 쳐진 차벽은 사실 수수깡이나 다름없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무너뜨리는 대신 예쁜 꽃 스티커를 붙여주었다. 더 나아가 의경들을 위해 그 스티커를 다시 떼어내는 친절을 베풀고 의경의 헬멧에 꽃을 꽂아주기도 했다. 이런 행동은 경찰을 적대적 상대에서 우애의 영역으로 데려오는 헤게모니적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민중총궐기대회의 양상은 그렇지 않았다. 집회 참여자는 많았지만 압도적이지 않았고, 권력의 중심은 지금처럼 내부로부터 붕괴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정권에 대한 경찰의 복종 태세는 아주 완강했고, 지금 "그녀를 만나기 100미터 전"을 허용하는 법원이 그때는 집회의 자유 따윈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집시법은 동일한데, 지난해 거리의 외침은 집시법 위반이고 일부 과격분자들의 책동이었지만, 지금 거리를 채우는 대중의 함성은 주권적 의지로 받아들여진다.

지난해 민중총궐기대회 때, 사람들은 밧줄로 경찰차를 묶어 잡아당기긴 했다. 하지만 그날 가까이 본 내 소감으로는, 밧줄은 차벽이 주는 암담한 감정에 화가 난 사람들이 벌인 항의의 퍼포먼스에 가까웠다. 경찰 버스는 밧줄에 흔들거리긴 했지만, 이중 삼중으로 엮여 있어서 넘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거칠긴 해도 뭐랄까, 경찰과 줄다리기하는 분위기가 물씬했다.

그래도 그것은 지금과 달리 폭력 시위라고 한다면,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식의 논법에 대해 이렇게 묻고 싶다. 도대체 광화문에 170만이 넘게 모여 집회를 해도 부상자 한 명 연행자 한 명 없었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가? 경찰의 압박 없이 자유롭게 의지를 표명할 수 있으면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는 걸 입증하지 않는가?

2016년 촛불집회가 감동적 승리를 거둔 지금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작년 민중총궐기대회에서 백남기 농민이 경찰 물대포에 의해 살해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폭로된 덕에, 유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비겁한 법원이 발부한 희한한 부검영장을 들고 와 시신을 탈취할 듯했던 경찰 시도는 중지됐다. 하지만 그 집회를 주도한 민주노총 위원장 한상균씨는 지난 13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쌍용자동차 해고 및 그로 인한 노동자 투쟁에 관련된 여러 쟁점 또는 민주노총의 중심 토대인 대기업 정규직 노조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가질 수 있다. 그들을 싫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집회의 자유가 대한민국 역사를 통해 가장 눈부시게 빛난 지금, 집회의 힘이 국가 개혁의 물꼬를 연 지금, 물대포로 사람을 죽이는 진압이 있던 집회의 책임을 엉뚱하게도 한상균 위원장이 3년의 징역형으로 뒤집어쓰는 일은 용납할 수 없는 불의(不義)이다. 진경준 같은 자가 1심에서 130억원어치 공짜 주식에 대해 뇌물죄를 벗고 고작 4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것에 비춰보면 더더욱 그렇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