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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08일 04시 55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08일 14시 12분 KST

고래의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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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트 오브 더 씨>의 한 장면. '고래의 복수'는 19세기 바다에서 일반적인 사건이었다.

1821년 2월 미국 낸터컷 선적의 포경선 도핀호가 칠레 연안의 태평양을 항해하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 돛을 얼기설기 엮어 놓은 작은 배가 표류하고 있었다. 도핀호는 속력을 줄이며 배에 접근한다. 눈에 들어온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배 위에는 뼈다귀가 여기저기 널려있고 온몸이 온통 종기로 뒤덮힌 두 남자가 죽은 동료들의 뼈에 남은 골수를 빨아먹고 있었다. 그들은 고래에 받혀 침몰된 에식스호의 선원들이었다.

론 하워드 감독의 영화 <하트 오브 더 씨>는 1820년 '에식스호 침몰 사건'을 다룬 영화다.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의 모델이 되었던 역사상 가장 유명한 해양 재난이다. 고래는 커다란 포경선을 공격했고, 선원들은 인육을 먹으면서 석달 넘게 표류하다가 살아남았다.

고래는 인간에게 정말 복수를 했을까? 영화에서 고래는 집요하게 에섹스호의 폴라드 선장과 1등 항해사 오웬 체이스 등 난파된 선원들을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영화에서 약간의 과장이 있지만(이를테면 고래가 계속 따라다니며 공격하는 설정), '고래의 복수'는 당시 포경선원들이 느끼던 두려움이었다. 실제로 많은 배들이 고래에 떠받혀 침몰했고 선원들이 표류하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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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경은 주로 포경선과 이에 딸린 네댓 척의 포경보트가 이용됐다. 일단 고래가 발견되면 기동성 있는 포경보트를 내려 고래를 추적해 작살로 잡았다. 해체는 본선인 포경선에서 이뤄졌다. ⓒ Thomas Jenkins, Bark Kathleen sunk by a whale

에식스호 침몰 사건 말고 고래가 포경선을 공격한 가장 유명한 사건은 포경선 '앤 알랙산더호 침몰 사건'이다. 앤 알랙산더호는 갈라파고스 제도 주변 바다에서 포경보트를 내려 수컷 향고래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래는 가만있지 않았다. 일등항해사가 지휘하는 포경보트를 공격해 보트를 종잇장처럼 찢었다. 고래는 이어 본선 주변으로 다가왔다. 본선에 있던 선장이 작살을 던지자, 고래는 아랑곳않고 거대한 머리로 뱃머리를 박치기 했다. 선장은 분에 못이겨 끝장을 보려고 했던 것 같다. 선장은 선원들에게 나머지 포경보트도 마저 내려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두려움에 떤 선원들은 선장의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보트를 타고 고래와의 미친 싸움판에서 달아나려고 하고 있었다. 앤 알렉산더 호는 서서히 침몰하고 있었다. 운이 좋았다. 침착을 되찾은 선장과 선원들은 식량들을 서둘러 끄집어 내 공포의 바다를 빠져나왔다. 운 좋게 포경선 낸터컷 호에 구조됐다. 이 고래는 다섯 달 후 포경선 레베카 심스 호에 잡혔다. 놈의 옆구리에는 작살과 창이 어지럽게 꽂혀 숲을 이루고 있었다. 머리에는 배들에서 찢겨나간 파편들이 박혀 있었다. (남종영, <고래의 노래> 요약, Joe Roman의 'Whale'에서 재인용)

포경선에 대한 고래의 공격은 당시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1836년 낸터컷 선적 리디아 호는 향고래에 떠받혀 침몰했다. 1838년 투 제너럴 호도 향고래에 당해 침몰했다. 1850년 포카혼타스 호는 고래에 받히고 간신히 항구에 도착했다.(나다니엘 필브릭 <바다 한가운데서>) 에식스호 침몰 사건과 더불어 가장 유명한 앤 알렉산더호 침몰 사건은 <모비딕>이 출간된 1851년에 벌어졌다. 사람들은 '모비딕의 저주'라고 술렁였다. 허먼 멜빌도 꺼림직한 기분을 씻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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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고래의 포악성에도 불구하고 미국 포경업자들이 향고래를 고집한 이유는 고래기름이 다른 고래의 기름보다 그을음이 적고 품질이 좋았기 때문이다. 또한 운이 좋으면 고품질 향료인 용연향도 얻을 수 있었다. 새끼와 함께 다니는 어미 향고래. ⓒ위키미디어코먼즈

고래는 왜 인간을 공격한 것일까? 포경선 침몰 사건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포경선을 공격한 고래는 향고래였다. 대형고래이면서도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고래, 동시에 양초 공장의 기름으로 공수되기 위해 19세기에 집중적으로 학살됐던 고래였다. 둘째, 향고래는 이유 없이 포경선을 공격하지 않았다. 포경선에서 내린 포경보트가 자신을 작살로 괴롭힐 때, 한참을 저항하다가 본선인 포경선으로 가 공격했다. 거대한 머리로 들이받으면 포경선은 산산조각 났다.

정치경제학적 시각에서 인간-동물 관계를 추적한 생태역사학자 제이슨 라이벌은 "산업혁명은 고래의 희생으로 이뤄졌다"며 도발적인 문제 제기를 한 적이 있다. 영화에서 나오듯, 19세기 퀘이커 교도들이 사는 미국의 궁벽한 뉴잉글랜드의 작은 섬 낸터컷은 자부심이 가득 찬 도시로 성장했다. 이들은 향고래를 주 포획종으로 삼는 포경산업의 '혁신'을 통해서 전세계 포경산업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향고래의 기름을 녹여 굳히면 질 좋은 양초를 만들 수 있었다. 근대 문명은 내연기관의 발명으로 이룩됐지만, 학살된 고래의 뼈로 세운 경골탑이기도 했다. 고래기름은 산업도시의 불을 밝혔고, 야간노동은 일상화됐다. 낸터컷은 지금도 '세계를 밝힌 도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자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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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터컷의 포경박물관. 작살, 란스, 포경일지, 고래 뼈 등 미국 포경시대의 유산을 소장하고 있다. 자료 수집과 전시는 낸터컷역사학회와 유기적으로 결합돼 이뤄진다. 미국 뉴베드포드 고래박물관, 아이슬란드 후사비크 고래박물관 등과 함께 세계에서 잘 만들어진 고래박물관 중 하나다. ⓒ남종영

<모비딕>이 출간되기 5년 전인 1846년 낸터컷에는 큰 불이 났다. 낸터컷의 문화적 상징인 박공지붕 목조주택과 창고에 쌓인 기름통이 한순간에 날라갔다. 그뒤 낸터컷은 쇠락했다. 1859년 펜실베니아 주 타이터스빌에서는 석유가 발견됐다. 미국 포경시대는 그렇게 저물어갔다. 그러나 향고래는 이미 씨가 마른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