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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30일 07시 18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30일 14시 12분 KST

비인간인격체 여행 #2 동물은 자동반응기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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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키마이어 보호구역이 진행하는 돌고래 먹이주기. © 남종영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7시45분까지 선착장에 나가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때쯤이면 저 멀리서 돌고래 몇 마리가 자기들끼리 놀면서 서서히 다가왔습니다. 매일 10~20분 사이의 오차로 정확히 8시께 선착장에 도착했습니다. 돌고래들이 어떻게 시간을 아는지 궁금할 뿐이었습니다.

서호주 샤크베이의 몽키마이어. 언제부터 돌고래들이 해변에 찾아오기 시작했는지, 어떻게 사람이 주는 생선을 받아먹기 시작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지역 서점에 가서 이 지역 사람들이 쓴 책을 찾아보았는데, 1950년대부터 자기들이 먼저 돌고래에게 먹이를 줬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꽤 있었습니다. 보통 돌고래들은 고깃배를 보면 선수타기를 하곤 하는데 낚시한 생선을 주면서 해변까지 같이 왔다는 이야기, 철없는 아들이 포테이토 칩스를 줬다는 이야기 등 여러 버전이 있었습니다.

어쨌든 몽키마이어 돌고래와 인간의 특별한 관계가 소문이 나면서, 돈이 된다는 것을 안 사람은 여기에 캐러반 파크(호주의 캠핑장)를 짓고 이것이 1990년대 '몽키마이어 리조트'의 개장으로 이어집니다. 여행업자, 관광객 등 사람들은 마구잡이로 생선을 주기 시작합니다. 돌고래에 대한 접근성이 좋은 사실을 안 과학자들도 들어와 돌고래 행동 연구를 시작합니다.

호주 정부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지요. 1982년 몽키마이어는 정부에 의해 보호구역으로 지정됩니다. 1990년대 들어 과학자들에 의해 한 조사 결과가 나옵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1983년부터 94년까지 해변에 먹이를 받아먹으러 온 어미들의 새끼 15마리 가운데 4마리만 살아남은 것입니다. 즉, 새끼들은 어미로부터 먹이 사냥 기술을 습득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호주 정부는 먹이 주기를 통제하기 시작합니다. 아예 금지시키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관광객들에 의한 먹이주기를 전면 금지했고, 대신 보호구역 직원들이 돌고래의 출현 및 행동 등을 직접 모니터링하면서 하루 섭취량의 아주 일부만을 주기로 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간식' 정도만 줌으로써, 하루 세끼 밥은 바다에서 알아서 섭취하도록, 먹이사냥 기술을 잃지 않도록 유도한 것이지요. 먹이 주기가 돌고래의 생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이 있었지만, 동시에 정부는 적막한 오지 마을에 돈을 가져다주는 산업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돌고래들은 그래도 계속 찾아왔습니다. 호주 정부의 바람대로 '제한적 먹이 주기'는 돌고래의 먹이사냥 능력을 녹슬게 하지 않았습니다. 1995년부터 2010년까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새끼 15마리 가운데 15마리가 생존하면서, 돌고래의 생존율은 자연 수준으로 회복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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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키마이어 해변에는 먹이를 받아먹지 못하는 돌고래들도 찾아옵니다. 먹이주기가 지정된 네 마리(서프라이즈, 퍽, 쇼크, 피콜로) 외의 다른 돌고래들은 주변에서 물장구를 치는 등 기다리며 노는 것처럼 보입니다. © 남종영

야생을 건드려선 안 된다. 순수한 야생 그대로 남아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언터처블'한 야생보전의 문제로 주장하고 끝내기에는 몽키마이어의 돌고래들은 인간에게 너무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아일랜드의 '인간과 친한 외톨이 돌고래' 펑기와 같이, 저는 몽키마이어에서 형성된 인간과 돌고래의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관련 기사 ☞ 돌고래 한 마리 떠나면 모두 실업자 된다고?

순수 야생의 돌고래가 인간과 분리되는 게 가능할까요? 가능하지 않다면 인간과 돌고래는 어떻게 만나야 할까요? 만남을 통제한다면 어떤 철학과 논리로 어떤 수준에서 통제해야 할까요? 가장 중요한 것. 그렇다면 돌고래의 (인간에게 찾아오는) 자유의지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간식 정도 받을 거면 굳이 안 와도 되는데, 돌고래가 굳이 찾아오는 이유는 뭘까요? 또 여기에 관심이 없는 돌고래들은 뭔가요? 왔다가 구경만 하고 가는 이들의 방문 목적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동안 인간은 동물을 하나의 '자동반응기계' 정도로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동물은, 적어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좋고 싫음이 있고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배울 줄 알고 전할 줄 아는 문화적 존재이자 비인간인격체인 것입니다.

인간은 옛날부터 스스로 돌고래보다 똑똑하다고 여겨왔다. 인간이 자동차, 뉴욕, 전쟁 등 무수한 업적을 이룩하는 동안 돌고래는 물속에서 몰려다니며 희희낙락한 일밖엔 한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확히 같은 이유로 돌고래는 옛날부터 스스로 인간보다 월등히 똑똑하다고 믿었다. (더글러스 애덤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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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가 나를 쳐다봅니다. 옆으로 드러누어서 바라봅니다. 돌고래는 두 눈의 위치상 이렇게 옆으로 봐야 물 밖의 물체를 안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 남종영

요 며칠 사이 돌고래에게 먹이 주는 관광객들 사진을 참 많이도 찍었습니다. 그러자니 저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돌고래는 객체가 아닙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주체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알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지요.

"이제 비인간인격체라고 부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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