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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7일 12시 34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27일 14시 12분 KST

비인간인격체 여행 #1 | 돌고래는 왜 찾아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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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 먹이 주기는 환경부 산하의 몽키마이어 보호구역 직원들만 줄 수 있습니다. 오전에만 두세 차례 주는데, 오전 9시가 되면 돌고래들이 귀신같이 나타납니다. © 남종영

나는 오스트레일리아 샤크베이의 몽키마이어 해변에 있다. 오랑우탄 거울실험 프로젝트를 하기에 앞서 야생에서 '비인간인격체'를 만나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 뒤늦은 여름휴가가 절반은 일이 됐다. 이번 휴가의 콘셉트는 '비인간인격체' 여행이다.

이곳은 서호주의 주도 퍼스에서 1000킬로미터를 이틀 넘게 달려야 올 수 있는 곳이다. 해변까지 사막이 뻗어있고 핸드폰과 인터넷도 제대로 터지지 않는 오지다. 여기까지 온 이유는 이 해변에 남방큰돌고래들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서울대공원에서 쇼를 하다가 제주 앞바다로 돌아간 '제돌이'와 같은 종이다. 몽키마이어에서 돌고래들은 종종 해변 가까이 다가와 사람들 주변에서 헤엄치다 떠난다.

이곳에서 돌고래-인간의 특별한 관계의 역사는 오래됐다. 1964년 한 어부가 돌고래들에게 생선을 주면서, 돌고래들에게 어떤 '문화'가 생겼다. 돌고래들은 먹이를 먹으러 오고, 사람들은 돌고래를 구경하러 온다. 관광지가 됐고 대형 리조트가 생겼다. (무차별적인 먹이 급여로 인한 야생성 훼손으로 논란이 일어났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급여량과 급여시간을 규제했고, 1990년대부터는 몽키미아 보호구역 직원들만 먹이를 줄 수 있게 되었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하도록 하겠다.)

재밌는 점은 돌고래가 인간을 만나러 오는 게 하나의 '문화'라는 점이다. 샤크베이의 돌고래는 3000마리. 이 중에 몽키마이어 해변에 찾아오는 돌고래는 몽키마이어 무리 중 일부다. 새끼들은 어미를 따라 이곳에 와서 인간을 만난다. 가끔씩 친구들이 따라 오기도 한다. (자주 오는 걸 보면, 그들도 이곳에서 인간이 레스토랑을 열었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돌고래들은 단순히 먹기 위해 이 해변에 방문하는 것은 아니다. 야생성 훼손을 막기 위해 생선은 암컷 네 마리(서프라이즈, 퍽, 피콜로, 쇼크)에게만 하루에 딱 여섯~여덟 마리만 지급된다. (다른 돌고래에게는 국물도 없다) 돌고래의 하루 섭취량이 8~10킬로그램이니, 여기서 주는 건 간식 정도 수준이다. 그럼에도 돌고래는 몽키마이어에 온다. 오는 날도 있고 안 오는 날도 있다. 돌고래 '퍽'은 자주 오긴 하지만 먹이는 잘 안 먹고 돌아간다. 네 돌고래의 친구 돌고래들은 해변에 가봤자 먹이를 먹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씩 들러서 놀다 간다.

그러니까 돌고래들은 가끔씩 "인간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쇼핑하러 오는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문화는 세대를 타고 새끼들에게 '수직 전승'되고, 친구들에게 '수평 전파'된다. 이렇게 인간 문화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 돌고래에게서 고스란히 관찰되는 것이다.

샤크 베이는 '돌고래의 곰베'로 알려진 곳이다. 곰베는 알다시피, 제인 구달이 침팬지가 도구를 이용해 흰개미를 잡아먹는 걸 보고 '유레카'를 외친 아프리카의 정글이다. 샤크 베이의 남방돌고래들은 해면류를 입에 물고 물고기를 꼬이게 해 사냥한다. 도구를 이용하는 것이다. 샤크 베이의 돌고래 전체가 해면류를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몽키마이어의 레스토랑 방문객처럼 일부 집단만 해면류를 이용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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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를 쫓아가는데, 돌고래가 펠리칸 앞에서 머리를 들고 물을 흩뿌렸습니다. © 남종영

해질녘 해변을 바라보고 있는데 돌고래 대여섯 마리가 나타났다. 먹이를 주는 아침도 아니었다. 돌고래들은 수영을 하고 스노클링을 하는 사람들 사이로 부드럽게 유영해 지나갔다. 나는 돌고래를 쫓아 해변을 달렸다. 200미터는 쫓아간 거 같다. 한 마리가 나에게 다가왔다. 나를 훅 둘러보고는 태양 속으로 사라졌다.

비인간인격체에게는 문화가 있다. 좋고 싫음, 취향을 가지고 있으며, 도구를 이용하며, 그것을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한다. 그것이 문화가 되는 것이다. 샤크베이의 돌고래 중 일부 무리는 인간이 준 먹이를 먹고 인간과 어울리는 문화를 누린다. 어떤 돌고래는 그런 돌고래를 구경하러 온다. 그것도 문화다.

다음달 11일부터 약 한 달 동안 우리는 서울대공원 오랑우탄에게 거울실험을 한다. 거울실험은 동물의 자의식을 알아보는 가장 기초적인 실험이다. 자의식은 동물이 타자를 인식하고 성찰적 사고를 할 수 있는지를 보는 중요한 기준이다. 고도의 사회성을 이루는 기초적 능력이자, 문화의 개인적 뿌리이기도 하다. 거울실험을 위해서는 인력과 비용이 많이 든다. 거울을 특수제작하고 설치하는 것은 물론 단편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도 촬영에서 메이킹필름 제작, 사운드 등 적지 않은 인력과 비용이 들어간다. 크라우드 펀딩(funding21.com) 사이트를 열었다. 아무 것도 아닌 일이 큰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이곳에 가면 역사적인 거울실험에 참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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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의 몽키마이어 해변. 야생에서 인간과 돌고래가 가장 가깝게 만나는 곳입니다. © 남종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