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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29일 07시 26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5월 29일 14시 12분 KST

크기의 우주 | 작은 세상은 거대하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원자 속의 핵과 전자의 크기 관계와 거리를 이해하려면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원자핵이 축구공이라고 가정하고 서울 시청 앞 광장 한가운데 놔 두자. 그러면 전자는 수원쯤에 떠다니는 먼지 한 알이다. 그리고 시청부터 수원까지를 반지름으로 하는 이 지역은 축구공과 먼지 한 알이 차지하는 공간을 제외하면 텅 비어 있다. 그래서 원자의 대부분은 허공이다. 여하튼 이 정도면 충분히 작지 않을까? 천만에. 너무 작고 가벼워 모든 물체를 그냥 통과해 버리는 뉴트리노, 즉 중성미자의 지름은 1욕토미터, 아토미터의 100만분의 1이다.

* 이 글은 '크기의 우주 | <1> 거대한 세상의 이야기'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세계는 겹겹의 우주로 되어 있다. 만약 10펜토미터인 원자핵의 지름을 1미터로 잡으면, 실제 1미터는 우리가 사는 곳에서 명왕성 너머 카이퍼벨트 정도까지의 거리가 된다. 태양에서 약 40억마일 떨어진 카이퍼벨트의 한 물체를 그린 상상도.

모든 사물은 우리가 인식 가능한 만큼 큽니다.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건 머리카락 한 올의 지름이 최대라지만, 우리는 사물과 티끌과 원자의 구조를 생각함으로써, 지각 불가능한 우주의 크기를 그나마 가늠할 뿐입니다. 극소량의 원자와 대부분의 허공, 그리고 티끌만한 지구와 티끌이 떠다니는 우주. 우리 주변의 크고 작은 사물, 가깝고 먼 공간을 통해 상상해봅시다. 그리고 크기의 우주여행을 떠나보실까요?

거대한 별과 은하는 인간의 타고난 감각만으로는 그 크기를 인식할 수도, 느낄 수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과학과 기술, 논리의 힘을 빌려 우리의 영역을 벗어난 그 세계를 이해해 왔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 반대편에도 마찬가지로 인식할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의 일상에서 영겁의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이 작은 것들의 세상도 역설적으로 '거대'하다.

인간이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작은 크기는 머리카락의 지름 정도, 약 0.1밀리미터다. 머리카락 전체는 아주 잘 보이지만 그건 길이 때문이고, 하루에도 수십개씩 빠지는 이 흔한 물체의 단면을 본 기억을 우리는 갖고 있지 않다. 그만큼 작기 때문이다.

덩어리로 생각한다면 각 면이 0.5밀리미터인 소금 결정 정도가 우리가 일상에서 실제로 보는 가장 작은 물체다. 의외로 인간 여성의 난자 지름도 소금의 절반 정도로 역시 눈으로 볼 수는 있다. 물론 본 사람이야 거의 없겠지만.

이제 이것들보다 작은 것을 보려면 렌즈를 사용한 장치가 필요하다. 볼록렌즈를 쓴 최초의 돋보기는 중세에 선구적으로 실험적 학문을 제창한 로저 베이컨이 그 주장에 걸맞게 만들었는데, 13세기의 인물이니 고작 700년 전일 뿐이다. 그는 아마 이것으로 많은 것들을 들여다보며 경이로워했겠지만, 하나의 렌즈로 이루어진 돋보기로는 열배 정도 확대하는 게 고작이다. 그래서 돋보기는 작은 물체를 크게 보기 위한 것이지 보이지 않는 물체를 보기 위한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면 여러 장의 렌즈를 조합해 만든 현미경이 필요하다.

가장 크고, 작은 세계를 열다

현미경을 만들고 개량한 사람은 여럿인데 망원경의 발명자이기도 한 갈릴레이도 그중에 포함된다. 그렇게 보면 한 사람의 손으로 큰 세상과 작은 세상 양쪽의 문을 연 셈이니, 우리가 지금까지도 그를 기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현미경 렌즈 아래 적혈구나 백혈구, 대장균, 미세먼지 같은 미세하고도 놀라운 세계가 우리 눈앞에 실체를 드러냈다. 그렇게 우리는 비로소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아주 작은 것들도 단일한 점이 아니라 복잡한 구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하지만 렌즈를 사용하는 광학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대략 여기까지다. 우리가 보는 빛, 즉 가시광선의 파장은 0.3에서 0.7 마이크로미터-마이크로미터는 1밀리미터의 1000분의 1, 즉 100만분의 1미터-이기 때문에 이보다 더 작은 물체는 잘 볼 수 없다. 이를테면 센티미터 단위의 눈금만 있는 자로 밀리미터를 제대로 잴 수 없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는 '늘 그랬듯이 답을 찾았다'. 빛보다 파장이 짧은 전자파를 쓰는 것, 즉 조밀한 눈금이 있는 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그 답이었다. 그래서 1930년대에 들어 전자현미경이 만들어졌다.

이 전자현미경으로는 이제 90나노미터-나노미터는 마이크로미터의 1000분의 1, 즉 10억분의 1미터- 크기의 인간면역결핍(HIV)바이러스가 보인다. 일반 현미경으로도 잘 보이던 세균, 즉 박테리아나 비슷한 거라고 여기기 쉽지만 실은 이쪽이 지름 기준으로 백배나 작다. 대략 코끼리와 쥐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거니 전혀 비슷한 크기가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작은 것들이 꼭 자연의 작품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에이치아이브이 바이러스 하나가 시디(CD) 표면의 홈에 쏙 맞게 들어간다. 다시 말해 우리가 컴퓨터로 시디 한장을 구울 때마다 전자현미경으로나 보이는 미세한 홈들을 레이저로 파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이런 걸 만든단 말이야 하고 놀라기는 이르다. 이보다 훨씬 작은, 2나노미터밖에 되지 않는 물체도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다. 컴퓨터의 마이크로프로세서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 게이트가 그것인데 대략 디엔에이(DNA)와 비슷한 정도의 크기니 그야말로 무진장 작다.

그럼 이 물체를 통해 지금 얼마나 작은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는 3억8000만미터다. 계산하기 쉽도록 인간의 키를 약간 키워 1.9미터라고 가정하면 그 거리는 우리 키의 2억배다. 정말 멀구나 싶지만, 2나노미터는 5억분의 1미터이기 때문에 우리 키의 10억분의 1보다 조금 클 뿐이다. 즉, 내 발밑에 놓여 있는 저 컴퓨터 속 부품을 우리가 사는 세상의 크기, 대략 지름 1미터 정도로 생각하면 거기서 내 머리까지의 거리는 지구에서 달까지의 5배에 가깝게 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가 끝일 리 없다. 나노미터 바로 아래에는 10분의 1인 옹스트롬이란 단위가 끼어 있고, 나노미터의 1000분의 1, 즉 1조분의 1미터는 피코미터라고 부른다. 이 피코미터와 함께 우리는 분자 크기로 들어선다. 예를 들어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하나로 이루어진 물 분자의 크기는 2.8옹스트롬 혹은 280피코미터다.

대략 여기까지가 전자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한계고, 그 한계를 넘어서면 바로 원자의 세계가 펼쳐진다. 원자의 크기는 각양각색이지만 원자핵에 전자 하나가 돌고 있는 가장 단순하고 작은 수소 원자의 크기는 25피코미터, 즉 400억분의 1미터다. 이 원자의 직경을 1미터라고 가정하면 진짜 1미터는 400억미터, 즉 4000만킬로미터이고 이는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4분의 1이 넘는 거리다. 이렇게 작은데도 원자현미경을 통해 우리가 이것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점은 놀라울 뿐 아니라 자랑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볼 수 있는 건 대략 여기까지고 작은 세상의 끝은 아직 멀었다.

원자는 아주 작은 '구조'

원자의 개념을 처음 발상했던 옛 과학자들은 이것을 물질이 더 이상 나뉘지 않는 최소의 단위일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이것이 단일한 물체가 아니라 플러스 전하를 갖는 원자핵 주변을 마이너스 전하의 전자가 돌고 있는 '구조'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 구조를 이루는 요소들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지름은 10펜토미터이다. 펜토미터는, 이제 우리가 익숙해진 대로 피코미터의 또 1000분의 1, 즉 1미터의 1000조분의 1미터다. 그러니 10펜토미터인 원자핵의 크기는 100조분의 1미터인 셈. 우리 세상에 한번 더 대입해 보면 원자핵을 1미터로 잡으면 실제 1미터는 100조미터, 즉 1000억킬로미터가 된다. 지구에서 태양까지 거리의 700배쯤이니 명왕성을 넘어 카이퍼벨트를 꿰뚫고 나간다.

이 원자핵 주변에 존재하며 원자를 완성하는 전자의 크기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다만 월드북 백과사전에 따르면 양성자의 1000분의 1이라고 하는데, 이게 맞다면 그 지름은 1아토미터, 즉 1미터의 100경분의 1, 아까처럼 거리를 생각해 보면 우리의 1미터는 100광년에 달한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원자 속의 핵과 전자의 크기 관계와 거리를 이해하려면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원자핵이 축구공이라고 가정하고 서울 시청 앞 광장 한가운데 놔 두자. 그러면 전자는 수원쯤에 떠다니는 먼지 한 알이다. 그리고 시청부터 수원까지를 반지름으로 하는 이 지역은 축구공과 먼지 한 알이 차지하는 공간을 제외하면 텅 비어 있다. 그래서 원자의 대부분은 허공이다.

여하튼 이 정도면 충분히 작지 않을까? 천만에. 너무 작고 가벼워 모든 물체를 그냥 통과해 버리는 뉴트리노, 즉 중성미자의 지름은 1욕토미터, 아토미터의 100만분의 1이다. 그래서 우리의 1미터는 이 녀석에게는 1억광년, 즉 우리 은하가 속해 있고 수만개의 은하를 거느린 처녀자리 초은하단의 지름과 맞먹는다.

이제 뉴트리노를 넘은 우리는 우주에서 가장 작은 것에 가까워졌다. 바로 초끈이다. 초끈이론에 따르면 우주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아주 작은 이 끈의 진동으로 생겨난다. 수학적으로 유추한 것이지만 실제로 있다면 이 녀석의 크기는 욕토미터보다 0이 11개 더 붙는, 그래서 길이 자체가 물리적 의미가 없어진다는 플랑크 길이와 비슷하다. 만약 이 초끈을 1미터로 생각한다면... 이제 그만두자. 그저 우리가 아는 우주 전체의 크기보다 훨씬 더 커진다는 정도만.

이런 작은 세계는 그저 크기만 작은 세계는 아니다. 원자부터 그 이하의 작은 세상은 양자역학이라는, 우리 인간이 생활하는 영역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기괴한 물리법칙에 지배받는다. 그래서 흔히 상상하는 것과 달리 전자는 태양을 공전하는 지구처럼 원자핵을 빙글빙글 돌지 않는다. 그 위치와 크기를 확인하려 할 때마다 전자는 매번 다른 곳에 다른 크기로 나타나는 도깨비 같은 존재다.

반면 거대한 세상에서 지구가 태양을 돌고 또 은하들이 서로 모이는 현상은 중력법칙, 즉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해 해석된다. 거기에는 제 맘대로 움직여 다니는 전자와 소립자는 없는 대신 구부러진 시공간이 있고, 그래서 아빠보다 일찍 늙어버리는 딸이 산다. 물리학자들은 이 두 세계를 다스리는 법칙,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합쳐 우주 전체를 해석하는 대통합 이론을 만들고 싶어하지만 쉽지 않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것도 과연 답을 찾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지난 편부터 이렇게 살펴본 것처럼 별의 세상과 티끌의 세상은 많이 다르다. 크기 자체부터 적용되는 물리법칙까지 서로 아주 떨어진 세상이다. 하지만 아주 근본적인 공통점이 하나 있다. 은하에서부터 극미의 입자에 이르기까지 우주를 이루는 모든 것은, 멀리서 보면 단일한 점 같지만 실은 복잡한 구조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거리와 크기는 같은 것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세계를 채운 허공의 역설

나아가 이 '구조'의 관점을 통해 또 하나의 중요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별과 별, 은하와 은하, 은하단과 은하단 사이에 별, 은하, 은하단 자체와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빈 공간이 존재하듯이 원자 아래의 세상에도 빈 공간들이 실은 대부분의 영역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주 속 대부분의 지역은 물질이 아닌 허공이,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헤로도토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세계는 원자와 허공으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 바 있었다. 그의 시대로부터 2300년이 지나 그 말을 조금 고쳐본다면, 세계는 온갖 크고 작은 구조를 만들어내는 극소량의 원자와 나머지 대부분의 허공으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물질은 그냥 단단한 덩어리가 아니며 허공도 그저 허무한 빈 공간이 아니다. 둘은 장엄하고 신비로운 자연법칙 안에서 얽혀 조화를 이루며 우리가 보고 느끼고 아는 것들과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아직 알지 못하는 삼라만상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둘은 서로가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주의 모든 것이 그렇다. 그리고 이 물질과 허공들의 춤 속에서 우리 인간은 한편으로는 아무 의미도 없는 티끌이며, 동시에 우주 전체만큼이나 크고 복잡한 존재다.

여기까지 알게 되는 데 우리의 머나먼 조상이 이 지구에 생겨나고 35억년이라는 장구한 시간이 걸렸다. 이제 앞으로의 35억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보고 알고 깨닫게 될까.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세상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그리고 그 상상을 한 걸음씩 확인해 나갈 수 있는 과학이라는 멋진 도구를 가진 것만으로, 우리는 이미 그곳을 향해 가고 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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