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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4일 13시 04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2월 24일 14시 12분 KST

철이의 마운드

지금 생각해보면 녀석은 우리가 야구하는 모습을 먼 구석에서 몇날 며칠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우리에게는 단지 '어느 날'일 뿐이지만 녀석에게는 벼르다벼르다 작심한 날 큰 용기를 내어 그렇게 우리에게 걸어 들어왔을 것이다. ...한 쪽 다리를 많이 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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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옛적 이야기다. 내가 또래 중 키가 제일 크고 말라서 당시 'OB' 베어스의 1루수 신경식에 비유되던 시절이니, 대략 백악기 말엽 비슷한 때라고 보면 된다.

그 때는 누구나 동네에서 야구나 축구를 하곤 했다. 지금보다 공터가 훨씬 많았고 학교 운동장이 주차장으로 쓰이지도 않았으며 초등학생들이 학원에 다니는 일도 없어서 시간과 공간이 남아 돌았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살던 아파트 근처에는 무언가를 지으려다 만 넓은 터가 있었는데, 이러다저러다 보니 여기에 일종의 야구 리그가 만들어졌다. 우리 아파트 1단지와 2단지가 각 한 팀씩 만들어 서로 경기를 벌이고 많이 이기는 팀이 우승하는 거라 진짜 리그도 아니었지만, 여하튼 우리는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

이런 동네야구도 몇 년을 하다보니 나름 레귤러 진용이 잡히고 실력도 늘어갔다. 2천원짜리 싸구려 배트가 괜찮은 알미늄 배트로 바뀌고 포수에게는 헬멧과 프로텍터가 생기고, 1루수가 전용 미트를 사용하고 나아가 투수에게 로진 백이 생길 때 쯤 돼서는 웬만큼 경기력을 갖췄던 것도 같다.

30년도 넘은 옛날이라 이름은 기억나지 않으니 그냥 철이라고 부르자. 녀석이 나타났던 것은 그 모든 것의 마지막이 되던 해였다. 철이는 우리 아파트 주민이 아니었다. 연습이나 경기가 있을 때마다 낡은 글러브와 공 하나를 들고 공터 반대쪽을 가로질러 걸어왔으니 말이다. 첫날도 우리끼리 연습하고 있던 중 마치 늘 그랬다는 듯이 글러브를 옆구리에 끼고 나타났고, 쟤는 뭐지, 하던 우리는 어느 틈엔가 녀석과 캐치볼을 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녀석은 우리가 야구하는 모습을 먼 구석에서 몇날 며칠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우리에게는 단지 '어느 날'일 뿐이지만 녀석에게는 벼르다벼르다 작심한 날 큰 용기를 내어 그렇게 우리에게 걸어 들어왔을 것이다.

...한 쪽 다리를 많이 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우리는 의아하리만치 거기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었다. 캐치볼을 해 보니 녀석은 공을 무척 잘 던졌다. 두 팔과 몸 전체를 축으로 움직여 던지는 묘한 폼을 갖고 있었는데 아마 불편한 다리를 커버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지 싶다. 그런데 공이 정확하고 빨랐다. 그리고 아무래도 절룩거리는 다리로는 내외야의 수비를 전담할 수는 없기에 철이의 포지션은 자연스럽게 투수가 됐다.

우리는 녀석을 주전투수로 내세워 그 해 2단지를 상대했다. 사실 객관적인 전력은 2단지가 좀 나았다. 그들에게는 묵직한 돌직구와 낙차 큰 커브를 구사하는 방울이와 초등학생으로는 믿기 힘든 강속구를 던지던 현철이가 버티고 있었고, 거포 상욱이는 툭하면 큰 홈런을 쳐 내곤 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전력이 고른 편이지만 특출한 실력을 가진 스타 플레이어가 없었다.

그렇게 봄부터 가을까지 옥신각신하는 승부들이 계속 되고, 어떤 시스템이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가을이 되자 한국 시리즈를 흉내낸 7연전이 시작됐다. 여기에서 이기는 자가 1년의 승자, 이런 거였다. 시리즈는 거짓말같이 3승 3패가 되었고 결국 한 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승부에 임하게 됐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늦가을 오후, 관객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시멘트 공터에 운명의 두 팀이 마주했다. 우리 모두는 매일 계속된 경기에 지쳐 있었고 컨트롤이라고는 안 되던 우원이 투수로 나설 정도로 철이 또한 심하게 소진된 상태였다. 반면 옹골찬 멘탈을 자랑하던 2단지의 에이스 방울이는 여전히 안정된 돌직구를 뿜어내며 건재했다. 누가 봐도 우리가 힘없이 패배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방울이가 흔들렸다. 뭔가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였는지 콘트롤이 되지 않아 신경질적이 점점 되어 갔다. 반대로 철이는 그야말로 눈부신 투구를 하기 시작했다. 양팔을 다 휘젓듯이 던지는 녀석의 투구 폼은 평소보다 더 커졌고, 공은 그만큼 빨랐다. 수비가 할 일이 별로 없을 정도의 삼진쇼였다.

스코어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마지막 아웃이 녀석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느린 땅볼이었던 것은 아직도 선명하다. 철이는 황급히 공을 잡으려다 넘어졌지만 다행히 유격수가 잡아 1루의 내게 던져 경기가 마무리됐다. 한 해 동안 계속된 '리그'의 최종 우승은 바로 우리 1단지의 것이었다.

나는 승리의 기쁨에 펄쩍펄쩍 뛰며 공을 들고 철이에게 달려갔다. 비록 넘어지긴 했지만 다칠 상황은 아니었는데 그는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모두들 마운드에 모여서 보니 철이는 그 자리에 넘어진 채 훌쩍거리며 울고 있었다. 어리디 어렸던 우리는 잠시 넘어져 아파서 우는가 하다가, 이내 뭔지 모를 뜨거운 것이 솟구쳐 올라와 녀석을 붙들어 일으켜서 헹가레를 쳤다. 철이는 내내 눈물을 흘리다가 고맙다는 말을 되뇌이고는,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저녁 그림자를 길게 늘이며 늘 그렇듯 공터 구석으로 사라졌다.

그게 내가 녀석을 본 마지막 모습이다. 우리는 모두 중학생이 되었고, 우리의 야구도 그렇게 끝이 났다.

그때는 몰랐다. 적어도 우리 속에서 철이는 장애인이 아니었고 한번도 그렇게 대우받은 적이 없다. 녀석은 우리 팀의 중요한 일원이었고, 실력으로 인정받은 주전투수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속 마음도 우리처럼 편하진 않았을 것이다.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거절당할지 모른다는 걱정에 조마조마했으리라. 그리고 매 경기를 그렇게 열심히 뛴 것도, 장애인인 만큼 더 확실한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초조함이 있었을 거다. 투수가 아니면 다른 포지션은 맡을 수 없다는 생각에 우리가 보지 않을 때 혼자 투구 연습에 매진했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이제 중학교에 올라가면 야구를 할 수 없을 거라는 점도 녀석은 알고 있었을 거다. 우리는 어차피 동네 아이들일 뿐이며 그 '리그'는 계속 이어지지 않는다. 대충 재미로 하다가 그만두면 끝이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야구를 하기 위해 우리보다 몇 배의 노력과 용기가 필요했던 녀석의 야구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우리보다 훨씬 컸을 테지만, 그가 아무리 좋은 공을 던진다 한들 선수로 받아주는 학교 같은 곳은 없었을 거다.

그래서 그 날의 경기가 그에겐 전부였을 것이다. 휘청거리는 가느다란 한쪽 다리를 억지로 지탱하며 녀석은 공 하나하나에 그야말로 혼신을 쏟아 부었다. 기가 질릴 정도의 집중력과 투혼으로, 철이는 우리 어린 날의 마지막 승부를 승리로 이끌고야 말았던 거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때가 묻고 편견에 사로잡히는 과정이기도 하다. 가끔 그 친구가 기억나면 그 자리에 있던 우리 모두가 자랑스러워진다. 그 작은 승부에서 이겨서가 아니다. 1단지와 2단지 팀원을 통틀어 아무도 그를 장애인이라는 편견의 눈으로 보지 않았던 어린 우리들의 순수함이 예뻐서다. 그리고 야구를 하기에는 치명적일 수도 있는 소아마비를 극복하고 우리들에게 나타나서 승리를 선사해 준 녀석이 멋져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짠해진다. 그 날 이후 아마도 야구에서는 멀어졌을 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지낼 수 있었던 유일한 공간이었을 우리들의 울퉁불퉁한 야구장과 얼치기 야구팀, 비록 작고 초라하지만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었던 그 곳을 떠난 후 녀석에게는 어떤 삶이 펼쳐졌을까. 1980년대 초반이던 그 때부터 지금까지, 이 대한민국에서 철이는 얼마나 많은 편견과 장벽을 만났고 얼마만큼의 좌절을 경험했을까. 어린 아이들도 할 수 있었던 것을 왜 다 컸다는 어른들은 하지 못하는 걸까.

이제 오늘이면 장애인 아시아경기가 끝난다. 이런 큰 경기를 개최하는 건 장애인 권익과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지님에 분명하다. 참가한 모든 선수들에게 진심으로 응원과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일상, 삶의 현실에서의 모습이다. 이 땅의 수많은 철이들이 매일의 생활 속에서 편견과 장벽 없이, 주위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자신들의 경기에 나설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때로는 이기고 때로는 지겠지만, 적어도 마운드에 오를 기회만은 동등하게 제공받는 날 말이다.

나는 어린 시절 작은 승리의 경험으로 그럴 수 있을 때만 모두 함께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우리 1단지 팀의 진정한 에이스였던 철이를 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