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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15일 05시 00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2월 15일 14시 12분 KST

박근혜 정부가 '끝장'낸 것들

연합뉴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핵실험·로켓발사로 이어진 북한의 잇단 도발에 대해 북한이 다시는 '핵실험을 도발하지 못하도록'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끝장 결의'(terminating resolution)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며 국제사회의 협조를 끌어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언론은 정부가 이런 이유로 개성공단을 "끝장"내는 극단의 조처를 취했다고 전한다. 통일부 장관은 "더는 개성공단 자금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이용되는 것을 막고, 우리 기업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라고 개성공단 전면 중단의 공식 사유를 밝혔지만, 그 얘기가 그 얘기다.

이 조처가 얼마나 비상식·반민주·즉흥적인지는 이미 많이 지적됐으므로 굳이 첨언하지 않겠다. 다만 국제사회의 어느 나라도 개성공단의 북한 노동자들한테 지급되는 임금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전용된다고 주장하지 않는 상황에서 당사자인 한국 정부가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 2094호를 위반한 '죄인'이라고 고백한 '자해성 희극', 피눈물을 흘리며 전면 중단을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개성공단 입주기업들 앞에서 정부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우리 기업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홍용표 통일부 장관)라고 말하는 후안무치는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번 유엔의 "끝장 결의"를 이끌어 내겠다며 한반도의 평화와 공영을 위한 자산들을 "끝장"내며 이를 판돈으로 걸고 '올인'하고 있다. 정부의 시도가 실패하면 한반도는 냉전 시대의 갈등과 분쟁 상황으로 퇴보할 것이며, 박근혜 정부는 통일·외교 분야에서 식물정부라 불릴 만큼 무기력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이 무기력을 극복하려고 집권세력은 어떤 형태건 '북풍'의 유혹을 강하게 받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끝장 결의" 추진은 성공할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북핵 문제는 남북의 문제를 넘어서 미국·중국 등의 이해가 얽힌 복잡한 사안이다. 따라서 "끝장"을 보려면 우리만 판돈을 다 걸어서는 안 된다. 다른 나라도 걸어야 한다. 특히 중국이 걸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은 제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며 "근본으로 돌아가 (한)반도 핵문제를 협상의 궤도로 돌려놔야 한다"며, "끝장"을 위해 모든 힘을 다할 뜻이 없음을 이미 밝혔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가 중국을 압박할 명분을 움켜쥐려면 최소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문제를 이렇게 일찍 언급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전략적으로 볼 때, 사드 배치 찬성론자라도 우선 안보리 제재 결의에 집중해야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 이후 중국과 제재 문제로 진지한 협의를 할 틈도 없이 대통령이 나서서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사드 배치를 언급하고, 곧장 한·미 협의에 나섰다. 그러면서 중국한테 "끝장" 제재를 하자고 하니 누가 그 진정성을 믿어주겠는가? 중국을 향한 공세적 대결 구도의 공고화를 위한 한·미·일 연대를 공공연히 주장하며 "끝장 제재"에 동참하라고 하니, 중국 지도부로선 어이가 없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끝장 결의"를 도출해 내겠다며 개성공단까지 폐쇄하는 비장감을 보였으나, 사드 배치 문제로 스스로 발목을 잡아 스텝이 결정적으로 꼬였다. 중국은 사드 배치 문제를 한·미의 대중국 안보 전략의 리트머스시험지로 볼 것으로 예상된다. 사드가 배치되면 중국은 한-중 관계의 수준을 조정하고, 안보적 조처들을 취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 궁극적으로 북-중 군사협력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이 북한 체제를 동요시킬지 모를 "끝장" 제재에 동의하기 어려운 데는 양국의 전통적인 정치안보적 이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 못지않은 새로운 이해관계가 양국 사이에 형성되고 있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낙후한 중국 동북지역의 지방정부가 북한의 경제개방 속도가 빨라지자 북한과 협력을 경제발전의 중요 축으로 인식하고 관련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 구상들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제창한 "일대일로" 전략과 결합돼 있다. 중국은 육상에서 14개 국가와 2만㎞의 국경을 접하고 있는데, 최근 중국 국무원은 동부해안이나 중앙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한 이 변경지방에서 인접국가와 공동 경제개발을 통해 공동 발전을 도모하는 전략을 내놓았다. 여기에는 역사적으로 분쟁이 끊이지 않아 늘 불안했던 중국의 국경선을 안정시킨다는 안보전략적인 포석도 깔려 있다.

1월 초 중국 국무원은 국경지방의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며 "중점지구"를 지정했다. 북한과 인접한 지구로는 7개의 국경도시와 3개의 변경경제합작구가 지정됐으며, 연변조선족자치주와 단둥시는 국제관광합작구로 발전시키라는 방침을 내놨다. 이는 북한과의 협력이 중국 동북지방의 발전 및 일대일로 전략 수행에 중요 포인트가 된다는 뜻이다. 이런 복합적 사정 탓에 중국이 "끝장 결의"에 동참하려고 이 국가전략을 포기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유엔의 새로운 대북제재 결의가 나오면 북-중 경협에서 일정한 지체 현상이 나타날 수 있지만, 중국이 이 전략을 수정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요컨대 박근혜 정부는 "끝장 결의"를 추진한다는 구실 아래 아무런 실익도 없이 너무나 중요한 우리의 자산을 "끝장"내 버렸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통해 남북공영의 현실적 실험장을 "끝장"내버렸고, 오직 3면 바다만으로 오늘을 이룬 한국 경제가 새로운 도약을 위해 기회의 창으로 삼은 남북경제공동체와 '북방경제'의 꿈을 "끝장"냈으며, 개성공단 덕분에 지난 10여년간 일체의 교전이 멈춘 서부전선의 군사적 안정을 "끝장"냈다. 어렵더라도 남북화해와 민족공영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많은 이들의 꿈 역시 "끝장"에 몰렸다. 더욱이 박근혜 정부는 한-미 동맹 일변도에서 벗어나 중국의 성장에 대응해 균형외교를 추구하겠다고 공언해 놓고, 섣부른 사드 배치 언급으로 균형외교 노력을 "끝장"냈다.

무엇보다 최근 일련의 사태를 보면 박근혜 정부의 통일외교안보 정책결정체계가 사실상 붕괴된 것으로 보인다. 5자회담, 사드 배치 등 대통령이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중대 현안에 대해 무절제하게 공식 석상에서 발언하고, 이를 수습한답시고 비현실적이며 비합리적인 정책을 각 부처가 잇따라 내놓으며 추종하는 형국이 초래되고 있다. 외교안보 부처 관리들이 대통령의 5자회담, 사드 배치 언급이 얼마나 부적절한지 모를 리 없고, 통일부 관리들이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 기름을 안고 불섶에 뛰어드는 무모한 행동이라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할 리 없다고 본다. 그러나 그들은 대통령의 판단을 교정하려는 결기보다는 대통령의 심기 관리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한국 외교에는 '지피'(知彼)나 '지기'(知己)는 없고, 오로지 '지통심'(知統心)만이 존재한다. 막장 드라마의 연속이다.

이 비극을 멈출 동력은 존재하나? 답은 간단하다. 제재도 해야 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론 한반도의 적대적 불신 구조를 해소하려면 대화 국면으로 전환해야 한다.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6자회담의 유용성을 의심했으나, 북한의 4차례의 핵실험은 6자회담이 중단된 상황에서 발생했다. 대화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도발이나 로켓발사는 없었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가 이런 인식과 접근법에 동의할 리 없다. 한가지 길이 있긴 하다. 북한의 첫 핵실험 한달 뒤인 2006년 11월 부시 미국 대통령이 중간선거에서 참패하자 네오콘의 상징인 럼스펠드를 경질하고 6자회담에서 2·13 합의를 도출한 선례가 보여주듯 '선거의 힘'이다. 그러나 야권의 분열로 그마저도 기대하기 어려우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