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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21일 12시 23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21일 14시 12분 KST

'대통령의 추석선물 하사' 어느 왕조시대의 풍경인가

연합뉴스

"박 대통령이 다가오는 추석을 맞이해 부사관 이하 모든 국군장병들에게 격려 카드와 특별 간식을 하사할 예정"이라는 청와대 보도 자료가 나왔습니다. 선물을 주면 주는 것이지, 청와대가 스스로 '하사(下賜)'라고 말하는 건 기가 막힌 일입니다. 하사라는 표현은 과거 군주시대에 국가는 왕의 소유라는 사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왕이 자신의 일부를 떼어내 백성들이 먹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걸 하사받은 국군장병은 "황공하옵니다"라고 외쳐야 할 것만 같은 왕조시대의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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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 시절에 군에 복무한 저는 복무 중에 딱 한 번 "전두환 대통령 각하 하사품"이란 걸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부드러운 빵이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이런 건 사라진 줄 알았습니다. 최근 전역한 장교와 병사들 몇 명을 상대로 군 복무시 '대통령 하사품'이란 걸 받은 적이 있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재작년에 소령으로 전역한 장교는 "한 번도 없다"고 하고, 병사들도 "그런 기억이 없다"고 합니다. 1박2일 특별휴가증까지 첨부하면서 청와대가 "건군 이래 처음"이라고 말하는 걸 보니 생소하긴 한 모양입니다.

과자 3종 세트와 1박2일의 휴가증. 달콤한 하사품이지요. 그러나 실상을 보면 땀이 차는 군복에 밑창이 갈라지는 군화, 총탄에 뚫리는 방탄복으로 고생하는 장병들에게 그나마 과자 먹고 휴가 다녀오라는 이야기지요. 인간의 생명가치가 총체적으로 저평가된 병영에서 이걸로 위안을 받으라는 이야기지요. 이게 건군 이래 처음이라니 박근혜 대통령이 얼마나 자애로운 어머니 같겠습니까. 내년 총선 앞두고 참으로 적절한 인기몰이 같습니다. 아, 더 이상 슬퍼서 못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