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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20일 13시 20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20일 14시 12분 KST

외교는 말장난이 아니다 | 일본 안보법안 통과의 의미

ASSOCIATED PRESS

일전에 외교부의 한 심의관과 저녁을 먹는 중 일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 분 말씀이 일본 유적의 유네스코 등록 문제가 불거졌던 얼마 전, 우리는 이 시설이 식민시대 징용 시설이라는 문제를 제기하였지요. 한일 간에 물밑 협상이 벌어졌을 때 강제 징용에 대해 우리는 "force to labor"라고 한 걸 일본이 슬쩍 "force to work"으로 바꿔서 이걸 관철시키려 집요하게 접근해왔다는 겁니다. 이 두 표현의 차이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labor가 work로 바뀌면 강제성이 표백되어버리는 것이죠. 일본은 이런 외교에 무척 민감해하고 집요한 나라입니다.

일본 안보법안이 통과되자 일본의 유사시 한반도 진출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한국의 주권을 존중한다", "한국 동의 없이 한국에 자위대가 진출하지 않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이런 일본의 몇 마디 말을 근거로 우리 주권에 문제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건 말장난입니다. 임진왜란 때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정벌하겠다"고 말한 적 있습니까? "명나라 정벌하는 데 길 비켜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청일전쟁 당시 일본이 우리 동의 없이 왔습니까? 동학 농민의 반란을 진입하지 못하자 조선 정부가 일본에 출병을 요청한 것입니다. 게다가 청일전쟁은 일본이 청나라에 대해 "조선이 독립국임을 인정하라"는 명분으로 진행한 전쟁입니다. 일제 시대 때 데라우치 총독이 조선을 침략한 걸 인정했습니까? 대한제국의 고종이 알아서 문서로 나라를 바친 것이고 일본은 이를 수락한 것이지요. 적어도 외교상으로는 그런 형식을 갖추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동의 없으면 한반도 진출 안한다"는 입장도 자세히 보면 한반도 남한 정부에게만 해당되는 말이고 북한에 대해서는 구애받지 않겠다는 게 그들의 입장입니다. 남한 정부 역시 현재 한미 연합방위체제 하에서는 일본을 참전국으로 해야만 전쟁이 진행되도록 이미 시스템을 바뀐지 오래입니다. 일본은 미국의 기지국가, 병참국가로서 이미 모든 기능을 완비하고 있습니다. 이걸 부인하면 한반도에서 전쟁수행이 불가능하도록 오래 전에 시스템이 바뀌었다는 겁니다. 위기가 벌어지면 일본은 한국정부 입장과 무관하게 자동으로 참전국 지위를 확보하게 될 것입니다. 이건 미국이 원하는 바입니다. 미일이 한국정부 동의 없이 북한을 공격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번 안보법안 통과는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또 하나의 국가가 탄생했다는 의미입니다. 과거에 일본은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평화헌법이 살아있던 시절에는 말이죠.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결국 남과 북이 적대하고 반목하는 동안 이런 지정학적 변동에 대해 우리는 아무런 발언도 못하는 수동적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군요. 100년 전 역사와 유사성이 발견됩니다. 이제부터 정신 바싹 차려야 합니다. 외교는 말장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