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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07일 11시 09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07일 14시 12분 KST

통일의 상대는 중국이 아닌 북한입니다

연합뉴스

아침 신문을 보니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하여 중국과 대화를 시작하였다"고 일제히 대서특필하고 있습니다. 이를 일컬어 일부 언론은 '통일외교', '신사고 외교'라고도 표현하고 있고 박근혜 대통령의 인기는 계속 치솟고 있습니다. '통일대박'이 환상이 아니라 구체적 가능성인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저는 이것이 이상합니다. 우리가 통일을 하자는 건 중국과 하자는 게 아닙니다. 북한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중국의 동북 4성이 되자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또한 중국 측 어떤 발표문에도 이를 확인하는 내용이 없습니다. 다만 중국 관계자들은 "남북한의 자주적 통일 논의를 지지한다"는 예전의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평화통일을 이루는 데 주변국의 역할이란 방해하지 않고 지지해주는 조력자 역할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통일의 상대인 북한과는 아무런 진척이 없는데, 중국을 상대로 통일에 대해 대화하자는 태도는 비자주적입니다.

신동방정책을 표방한 서독 빌리 브란트 총리의 대주변국 외교는 '긴장완화 정책'이었습니다. 빌리 브란트와 그 외교 참모 에곤 바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소련의 브레즈네프 서기장을 번갈아 만나면서 밀월외교를 한 것은 동·서독 상호인정을 통한 긴장완화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반면 서독은 통일의 방식이나 통일의 미래상에 대한 논의는 '민족 내부의 일'로서 주변국의 간섭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동서독 통합으로 민족 자결과 자존의 시대를 여는 데 있어 독일은 그 원칙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경우를 보면 노태우 대통령이 '민족자존과 통일의 시대'를 천명하였을 때 대주변국 외교의 핵심 기조는 교차 승인이었습니다. 미국과 일본이 북한을 승인하고, 중국과 소련이 한국을 승인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제사회에서 정통성을 확보하게 되면 통일과 민족 화해협력은 북한과 이야기하는 것이었지요. 이 역시 독일의 긴장완화 정책과 유사합니다. 왜 이렇게 하느냐? 주변국은 한반도 통일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변국은 지금의 분단체제를 만든 장본인이고, 지금의 분단체제의 현상유지를 바랍니다. 게다가 그들은 통일의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외교는 북한을 따돌려버리고 주변국과 밀월관계 속에서 하자는 것입니다. 이건 신라가 당나라와 동맹을 맺어 고구려와 백제를 망하게 하는 식의 통일론에 가깝습니다. 민족 자결과 자존이라는 우리 통일 논의가 함축하는 근대의 과제는 이행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망하면 주변 강국이 북한을 통치하다가 우리에게 주도권을 인정하고 철수하는 식의 삼국통일 시대의 통일론입니다. 우리가 북한이 아닌 중국과 평화통일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는 건 중국으로서도 황당한 일입니다. 아직 북한에 대한 전략적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이 논의를 받아들이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왜 너 네 민족의 문제를 우리와 먼저 상의하느냐"고 생각할 것입니다. 미국도 황당하게 생각할 겁니다. 동맹을 제키고 중국과 그런 대화를 하겠다면 동북아 세력균형에 민감한 미국으로서는 한국에 발끈할 일입니다.

이런 걸 알고 이야기하는 것인지, 모르고 이야기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런 게 바로 준비 안 된 정부임을 드러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박근혜 대통령은 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