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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26일 11시 35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8월 26일 14시 12분 KST

진실에 대한 우리의 자세

한겨레/사진공동취재단

최근 제가 방송에서 '천안함 폭침'이란 용어를 구사했다고 지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건 저의 부주의였다고 인정하더라도 "그래서 천안함은 북한이 했다는 거냐?"고 따지는 건 최근 사태의 본론과 무관한 압박이라고 봅니다.

지금 어떤 자리를 가도 꼭 나오는 질문이 "천안함의 진실이 뭐냐?"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정신적 고문을 받는 느낌입니다. 사실 우리 사회에 천안함에 대한 논의는 아주 왜곡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질문을 해 보죠. "천안함을 북한이 저질렀냐?"고 질문하면 북한 어뢰설을 믿는 사람은 "그렇다"고 하고 좌초나 기뢰폭발로 인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답변할 것입니다. 그러나 "수중 폭발이 있었냐"고 질문을 바꾸면 북한 어뢰설과 기뢰설은 모두 "그렇다"고 할 것이고 좌초설을 믿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질문에 따라 편이 다르게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냐? 어뢰설을 한편으로 하고 그 반대편에 기뢰설과 좌초설이 묶여져 있습니다. 이건 아주 이상한 것입니다. 천안함 사건의 핵심 질문인 수중 폭발 여부로 따진다면 기뢰설과 좌초설이 서로 싸워야 합니다. 이게 과학논쟁이기도 한 것이지요. 그런데 행위의 주체가 북한이다, 아니다, 라는 정치적 입장으로만 갈라져 있기 때문에 전혀 다른 주장인 기뢰설과 좌초설은 싸우지도 논쟁하지도 않습니다. 과학적 태도가 아닌 것이지요. 여전히 믿음의 문제로만 천안함을 보려는 것이지요.

저는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해 판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난 5년 동안 이와 관련된 전직 장관, 청와대 핵심 관계자, 민군합동조사단 관계자, 합참 고위인사, 해군 관계자들을 무수히 접촉했습니다. 과학적 지식은 없지만 이들 주장에 대한 진실성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 결과 이들 주장에 많은 논리적 허점이 있다는 건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이 의도적인 거짓말이라는 증거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판단은 유보하고 더 긴 시간을 인내하며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는 걸 기다려야 합니다. 진실은 시간의 편입니다. 이건 무엇을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닌 연구자의 기본자세라 할 것입니다.

제가 <서해전쟁>을 쓰는 데는 꼬박 5년이 걸렸습니다. 온갖 은폐와 방해를 무릅쓰고 취재를 하기가 이렇게 힘듭니다. 그렇게 쓰고 나니 또 허점이 보이고 일부 오류가 있습니다. 이걸 다시 정정해서 쓰는 데 또 3년이 걸릴 상황입니다. 그리고 지난주에 제가 책에서 제기한 연평해전의 풀리지 않은 문제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마침내 잡을 수 있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증언을 청취한 것입니다. 그래서 또 수정판을 내야 할 상황입니다. 그런데 정치인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이 사람들은 어떤 사건의 진상에 대해 판정을 내리는 단 5분도 기다리지 못합니다. 어떤 때는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제가 5년이 넘게 규명하고자 하는 문제를 성의 없이 결론을 내리고 맙니다. 그런 사람들은 여당의 안보 공세가 밀려올 때 연이은 실수로 무너집니다. 지난 총선, 대선이 그랬습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발생한 지 5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새로운 진실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말 진실을 알기를 원한다면 기다려야 합니다. 즉답을 요구하면서 자신의 믿음과 다르다는 이유로 다그치는 건 매우 잘못된 태도입니다. 그런 식으로 지금까지 개혁․진보 진영은 많은 실수를 되풀이해 왔고 그 피해를 고스란히 당했습니다. 북한 무인기 출몰사건, 이번 지뢰사건에서도 일부 그런 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정신적 고문이라고 할 수 있는 믿음을 요구하는 행태는 자제함이 마땅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