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5년 07월 22일 07시 15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7월 22일 14시 12분 KST

간첩이 떡볶이를 좋아하는 이유

과문한 필자는 국정원이 간첩을 잡는 데 왜 떡볶이 맛집 정보와 벚꽃 축제 일정과 서울대 공대 동창생 명부가 필요한지 알 길이 없다. 처음엔 간첩이 빨갱이니까 붉은 떡볶이를 좋아하는가, 했다. 간첩이 주로 카톡으로 지령을 수수한다는 이 새로운 학설이 국가안보에 어떤 도움을 주는 것인지도 필자의 상상력으로 추론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무언가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광범위하게 확산하는 데는 아주 쓸만한 콘텐츠들이다. 국가는 모든 걸 보고 있었다는 그런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 느낌은 개인의 자유의지를 마비시키는 단계를 초월하여 시민공동체를 유지하는 자유로운 인간정신의 정수리를 뚫어버릴 것이다.

한겨레

올해 3월에 발간된 한병철 교수의 저작 <심리정치>에서는 현대 신자유주의시대는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디지털 파놉티콘(원형감옥)"이라고 선언한다. 파놉티콘은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는 뜻의 'opticon'의 합성어다.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1791년에 처음 설계한 이 감옥은 중앙의 원형공간에 감시탑이 있고 그 둘레를 따라 죄수들의 방이 있다. 중앙의 감시탑은 어두운 반면에 죄수의 방은 밝게 해 놓으면 죄수들은 늘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느낌이 죄수들 스스로 규율과 감시를 내면화해서 자기검열을 수행하고 권력의 요구에 복종하는 결과를 낳는다. 지금의 국정원 민간인 사찰 논란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보유한 개인은 스스로 자유로운 주체라고 착각하며 산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에 정보기관이 나를 다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순간부터 기실 그 자유라는 것은 착각에 불과했음을 깨닫는다. 이때부터 개인은 자기검열을 수행하여 의심받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착한 시민이 된다. 더 나아가 정보기관이 직접 개입하지 않았음에도 나쁜 시민을 색출하여 고발하는 적극적인 개인도 나타난다. 동료 시민을 고발함으로써 자신은 면죄부를 받으려는 의도다. 바로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시대의 풍경이다.

단순한 사찰이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주는 사회적 충격은 이처럼 은밀하고 광범위하게 퍼져나가 시민공동체 내에서 인간관계를 변형시킨다. 이 원형감옥은 권력의 요구에 부응하는 친대한민국 세력과 이를 비판하는 반대한민국 세력으로 여론을 양분한다. 국정원 사찰 논란이 벌어져 그 진상이 규명되기도 전에 이미 사회는 친국정원 안보세력과 반국정원 안보파괴세력으로 여론을 양분한다. 이 질식할 것 같은 사회에서 진리와 이성으로 창조적 토론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좌절한 개인은 노출된 공론의 장에 참여하기를 포기하고 상아탑이나 개인적 공간으로 몸을 숨긴다. 정치권력이 빅데이터와 스파이웨어를 신봉하는 약간의 모습만 보여주어도 시민적 공론의 비옥한 토양은 급속도로 사막화된다. 논란이 확산되는 어느 순간에 박근혜 대통령이 한마디 국정원을 거들기만 해도 충분하다. 시민은 권력자가 징벌자, 감시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서둘러 자기검열을 수행한다. 자칭 보수·안보 세력은 나쁜 시민을 색출하는 착한 시민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설 것이다. 그렇다면 작금의 국정원 민간인 사찰 논란이 정권에 불리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 단물을 최대한 뽑아 먹을 수 있다면 이 논란이 왜 불리하겠는가.

과문한 필자는 국정원이 간첩을 잡는 데 왜 떡볶이 맛집 정보와 벚꽃 축제 일정과 서울대 공대 동창생 명부가 필요한지 알 길이 없다. 처음엔 간첩이 빨갱이니까 붉은 떡볶이를 좋아하는가, 했다. 간첩이 주로 카톡으로 지령을 수수한다는 이 새로운 학설이 국가안보에 어떤 도움을 주는 것인지도 필자의 상상력으로 추론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무언가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광범위하게 확산하는 데는 아주 쓸만한 콘텐츠들이다. 국가는 모든 걸 보고 있었다는 그런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 느낌은 개인의 자유의지를 마비시키는 단계를 초월하여 시민공동체를 유지하는 자유로운 인간정신의 정수리를 뚫어버릴 것이다. 그렇게 불구자가 된 인간정신은 권력자가 지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기면서 복종한다. 이 얼마나 황홀한 디지털 전체주의인가. 모든 개인이 서로를 감시하면서 착한 시민이 되려는 경쟁이 솔선수범으로 나타나는 사회. 권력자에게는 통치하기에 편리하고 시민에게는 복종하면 편안해지는 사회. 이 감옥에서 살아남으려면 자기검열부터 할 일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광고] 네스프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