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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01일 14시 37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6월 01일 14시 12분 KST

미국의 협박, 중국의 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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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3월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재외공관장 만찬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장수 주중국대사, 윤병세 외교부장관, 박근혜 대통령, 유흥수 주일본대사, 안호영 주미국대사.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우리의 전략적 가치를 통해 미·중 양측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상황은 결코 골칫거리나 딜레마가 아닌 축복"이라고 했다. 이 말이 최근 사드 요격체계 배치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과 같은 문제를 우리 정부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주적으로 결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면 환영할 만하다. 사실 처음부터 이런 태도로 나왔어야 한다.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걸 내세워서 이도 저도 아닌 소신 없는 태도로 우물쭈물하다가 막차에 올라탄 박근혜 정부로선 뒤늦은 감마저 있다. 전략적 모호성이란 전략이 있는데 그걸 모호하게 표현한다는 게 본래 의미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전략이 없기 때문에 모호할 수밖에 없었다. 장고 끝에 결론은 사드 배치 유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가입이다. 이렇게 행선지가 결정되니까 모처럼 화색이 돌아 제법 들을 만한 말을 했다.

그런데 정녕 한반도 상황은 딜레마가 아닌 축복인가? 미국과 중국은 과연 우리에게 러브콜을 하고 있는가? 먼저 미국을 보면 숨소리가 너무 거칠다. 일전에는 "북한의 핵탄두 소형화가 성공했다"고 해서 우리를 거의 기절상태로 몰고 갔다. 그런데 이제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실전배치 수순에 돌입했다"고 몇걸음을 더 나가버렸다. 처음엔 진짜 그런가 했다가 이제는 어쩐지 미국에서 나오는 말이 양치기 소년의 허풍처럼 들린다. 어떻게 된 것이 자고 일어나면 북한의 핵 능력이 달라지니 우리는 미국에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언제 한반도 북단에 우리가 모르는 초강대국이 등장해서 미국까지 떨게 만든 것이냐고. 이건 미사일방어(엠디)에 대한 거부감을 차단하려는 일종의 협박이 아니냐는 거다. 사드 요격체계 배치를 비롯한 미사일방어 정책을 미국의 의도대로 결정지으려는 협박 말이다.

그런가 하면 중국은 다른 계산을 했다. 미국의 압력 때문에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가입에 우물쭈물하는 한국 정부에 "진짜 가입 안 할 거냐"며 "사드 배치 문제도 방관하지 않겠다"고 양면에서 압박했다. 이때까지는 중국의 숨소리도 거칠었다. 그러던 중국도 한국이 가입을 결정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사드 논란을 싹 거두어들였다. 그러면 중국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사드 논란은 단지 구실에 지나지 않고 진짜 본심은 동아시아 국가들을 막대한 경제력으로 매수하려는 것 아니냐고. 이걸로 살살 미국을 약올리면서 장차 경제 패권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려는 것 아니냐는 거다. 장차 아시아와 유럽 국가들에게서 조공으로 관계 맺는 중화의 천하 질서, 즉 중국몽을 실현하려는 매수 말이다.

이렇게 협박과 매수가 교차하는 한반도에선 미국과 중국의 일대 격돌이 불가피하다.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과 중국의 성장하는 경제는 두 강대국의 확실한 비교우위다. 우리는 경제와 안보 공히 미국과 중국에 대한 대외의존도가 너무나 높아서 어느 한쪽만 흔들려도 국가의 생존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즉 한반도는 강대국 정치의 열점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걸 축복이라고 하기에는 주변 상황이 너무 엄중하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집권 3년차가 지나도록 도대체 외교안보전략이 무엇인지 모호한 이 정부는 도대체 무엇에 써먹으려고 탄생시킨 정부인가. 상황을 주도하는 게 아니라 항상 막차만 타는 신세가 되면 지금의 축복이 재앙으로 돌변하지 않겠느냐고. 이걸 타개하는 유일한 활로는 역시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 외에는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다. '제2의 중동붐'도 아니고 '창조경제'도 답이 아니다. 관리 불가능한 북한을 관리 가능한 북한으로 만드는 게 한국 정부가 주도할 수 있는 생존전략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