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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2월 08일 07시 32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2월 09일 14시 12분 KST

트럼프는 왜 전화를 끊었을까?

Jonathan Ernst / Reuters

지난 한 주, 필자는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 있었다. 시드니의 로이(Lowy) 국제정책연구소 초청으로 세미나에 참여했다. 캔버라에 있는 호주 외무부도 방문할 수 있었다. 회의는 트럼프 시대 한국과 호주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관한 논의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호주는 미국과의 동맹이 매우 특별하다고 믿는다. 호주는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재균형 정책에는 인도네시아에 인접한 다윈 지역에 미국 해병대 기지를 내주면서 동맹의 견고함을 과시했다. 미국이 주도했던 환태평양파트너십 협정 타결을 위해 선봉에 서기도 했다. 이러한 '친미' 호주한테 워싱턴발 '동맹' 충격이 공교롭게도 필자가 호주에 있었던 주에 발생하였다.

1월28일 호주 총리 턴불과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전화회담을 하다 심한 언쟁을 벌인 끝에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것으로 2월2일에 알려졌다. 트럼프는 "내가 오늘 일본, 독일, 프랑스, 러시아 정상과 통화했는데, 턴불 당신과의 통화가 최악이다"라며 25분 만에 전화를 끊어 버린 것이다. 애초 1시간으로 예정된 전화회담이었다.

사실은 이렇다. 미국과 호주는 지난해 11월 미국이 남태평양 나우루 공화국과 파푸아뉴기니에 위치한 호주 난민 시설의 수용자 일부를 수용하고, 호주는 중남미 코스타리카에 있는 미국의 역외 수용소 난민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했다. 미국이 합의한 난민의 수는 정확히 1250명이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2월2일 "믿을 수 있나요? 오바마 행정부가 호주로부터 수천명의 불법 이민자를 받아들이기로 합의했다네요. 왜요? 이 멍청한 합의를 검토해 봐야지!"라는 트위트를 날렸다.

가장 정감 어린 대화를 나눴어야 할 동맹의 두 정상이 왜 "최악의 통화"를 나누었을까? 왜 트럼프는 애초 1시간으로 예정된 전화회담을 25분 만에 중단한 것일까? 호주 유력지 <시드니 모닝헤럴드>에 의하면, 턴불은 양국간 합의한 난민교환협정의 이행을 확인해 달라고 트럼프에게 요구하였다. 트럼프는 이를 수용하면 "(내가) 정치적으로 죽을 것"이라며 "보스턴 폭파범을 수출하려고 하냐"며 호주 총리에게 쏘아붙였다. 이행 확인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통화 당일은 트럼프가 반이민 행정명령을 시행한 날이었다. 그러나 턴불은 당황하지 않았다. 국가간 합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트럼프에게 합의 이행 약속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트럼프 입장에서 당연히 호주와의 통화가 최악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턴불 총리는 언론과 회견에서, "나는 호주의 이익을 대변할 뿐이다"(I always stand up for Australia)라는 말을 남겼다. 이 에피소드는 미국이 미-호 간의 난민교환 협정을 준수하겠다고 한발 물러나면서 결말을 맺는다.

호주 주요 언론은 "과연 호주에게 미국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호주의 이익이 반영되지 않는 미-호 관계에 대한 재조정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미국에 대한 미숙한 의존보다 자주적인 성숙한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도 등장했다.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성향과 상관없이 동맹의 구조와 제도는 여전히 공고하다는 칼럼도 눈에 띈다. 필자가 만난 호주 지식인들은 "낯선 미국"과 어떻게 호주의 이익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였다. 반트럼프 정서가 있지만, 호주의 이익이 무엇인지 계산한다. 아무도 미-호 관계가 최악이라며 호들갑을 떨거나, 턴불 총리를 비판하지 않았다. 트럼프 시대, 우리에게 한-미 동맹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할 때다. 공유된 이익이 동맹의 기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