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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23일 08시 14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1월 23일 14시 12분 KST

그 모든 혼란과 혼돈의 서막

Velvet Goldmine

<벨벳 골드마인>과 데이비드 보위

하루를 흔들어놓는 영화가 있다. 카페에 앉아 뭔가 정리해보려 하지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가슴이 텅 비어 자그마한 진동에도 천둥이 치듯 쿵쾅거릴 것이다. 그런 영화들이 있다. 그런 영화들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흘러야 비교적 선명한 사실관계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사실과 기분이 적당히 분리되고 나면 준비가 된 것이다. 그때 그 영화에 관한 글을 쓸 수가 있다.

문제는 하루가 아니라 평생을 흔들어놓는 영화가 있다는 데 있다. 그런 영화는 프레임과 컷이 아닌 냄새와 질감으로 기억되고, 구체적인 서사가 아닌 뭉쳐진 이미지 그 자체로 동공 저 안쪽에 조각칼로 새겨지듯 각인된다. 그런 영화들에 관해서는 좀체 글을 쓰기 어렵다. 썼더라도 나중에 읽어보면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대개 인생을 흔들어놓을 수 있는 것들이란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불투명하기 때문에 '삶'을 뒤흔들어놓을 만큼 강력할 수 있는 것이다.

1999년 여름, 종로2가의 (지금은 없어진) 코아아트홀을 찾은 건 순전한 의무감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대학교 영화 동아리에 반드시 봐야 할 영화 리스트 같은 것들이 존재했다.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았거나 단종된 것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비디오테크나 황학동 풍물시장 같은 곳을 이용해 영화를 구해 보았다. 어렵게 구한 영화들의 정보를 연합 동아리 연락망을 통해 공유하곤 했는데 지금도 그런 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 리스트 안에 토드 헤인즈의 <포이즌>이 있었다. 선배가 구해온 것을 암굴 같은 동아리방에 모여 작은 비디오비전으로 보았다. 안 그래도 좋지 않은 화질이 담배 연기 때문에 더 뿌옇고 암울했다. 테이프의 상태가 나빠 중간에 비디오 클리너를 세번 정도 돌리고 데크를 네번 정도 내리쳤던 것 같다. 대체 얼마나 끊어 보았는지 거의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이라 해도 다를 바 없었다. 아무튼 나는 <포이즌>에 완전히 매료당했다. 며칠 동안 영화의 잔영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러던 중 토드 헤인즈의 신작이 코아아트홀에서 상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그게 <벨벳 골드마인>이었다.

나는 그날 수업을 다 째고 혼자 <벨벳 골드마인>을 두번 내리 보았다.

극장을 나서 완전히 깜깜해진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완전히 다른 세상 같더라. 아직도 그때 맡은 공기의 냄새를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당시의 기분을 '완전히 다른 세상 같았다'는 말 이외에 다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가 없다. 이상한 노릇이다.

<벨벳 골드마인>은 70년대 글램 록의 시대를 조명한다. 오스카 와일드의 이야기에서부터 100년 후 글램 록이 영국을 점령하기까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쏟아내던 영화는 80년대의 차가운 풍경으로 점프한다. 한때 글램 록의 열렬한 팬이었으나 글램 록 스타 브라이언 슬레이드의 거짓 암살소동 이후 염세적으로 돌변한 기자 아서 스튜어트가 주인공이다. 브라이언 슬레이드의 거짓 암살소동 10주년을 맞이해 기획 기사를 쓰라는 데스크의 요청에 아서는 난감해한다. 취재를 시작하고 아서는 브라이언 슬레이드, 잭 와일드, 수많은 글램 록 스타들, 그들 주위를 맴돌았던 10년 전의 자기 자신을 힘들게 다시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브라이언 슬레이드가 맥스웰 데몬으로, 그리고 다시 토미 스톤으로 둔갑하기까지의 모든 사실을 알아낸다. 그러나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 영화는 내게 일종의 해방구 같았다. 극장 밖의 세상은 허물어져가고 있었다. IMF라는 이름의 부도수표를 우리가 갚아야 한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웠고, 대학생은 면제시켜줄 수 없냐고 손을 들어 질문하고 싶지만 소시민들의 주머니 깊은 곳 금붙이들이 나라 살리는 데 쓰시라며 카메라 앞에 전시되는 저 거대한 서사 안에서 개인의 사정과 생계 따위는 긁으면 까맣게 드러나는 금박마냥 별게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학비와 집세를 벌어야 했다. 99년에는 또 무슨 영어 이름의 광풍이 도착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군대를 가자! 군대를 가자! 나는 그때 술만 마시면 외쳤다. 군대로 튀자! 군대로 도망쳐봤자 나쁘면 나빴지 나을 게 없다는 걸 곧 겪게 되었지만 아무튼 모든 것이 시대를 강타한 1800원짜리 대패 삼겹살처럼 혼돈 그 자체였다.

<벨벳 골드마인>이 그리는 풍경 또한 혼란스러웠다. 이 영화는 뜨겁고 역동적인 글램 록의 70년대와 건조하게 말라붙은 팝의 80년대를 교차해서 보여주면서 점멸 끝에 사라져버린 모든 것들과 거짓말들, 변화한 것들, 변하지 않은 것들을 비춘다. 그 속도와 화려함에 몸을 싣고 가다보면 먹먹하고 슬퍼진다. 변한다는 건 슬픈 일이다. 그러나 단순히 변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반역과 반동,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이 결국 동류의 혼돈으로부터 빚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혼돈은 영원히 지속된다. 그래서 슬픈 것이다. 그런 어쩔 수 없는 반복이 슬픈 것이다. 그렇게 혼이 나가버릴 즈음 잭 와일드가 말한다. 우리는 세상을 바꾸려 했어. 그런데 우리가 바뀌어버렸지.

이제 와 떠올려보면 <벨벳 골드마인>은 이후 겪게 될 그 모든 혼란과 혼돈의 서막과 같았다. 그리고 이 영화는 내가 그 모든 혼돈에 휩쓸려 익사하지 않고 한발 물러서서 관찰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삶과 혼돈은 결코 유리되거나 결별할 수 없는 것이기에, 매번 마냥 슬퍼하고 분노하기보다 껴안아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는 필요를 말이다. 실천하기는 어렵지만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보면 의외의 순간에 도움이 된다. 언젠가는 나도 잭 와일드처럼 그렇게, 브로치를 누군가에게 건네주고 싶다.

데이비드 보위가 사망했다. 본인이 싫어했기 때문에 제목을 제외한 영화에 그의 음악을 쓸 수는 없었다. 그러나 <벨벳 골드마인>은 데이비드 보위의 이야기다. 브라이언 슬레이드는 데이비드 보위이고, 잭 와일드는 이기팝이다. 맥스웰 데몬은 지기 스타더스트이고 비너스 앤 퍼스는 더 스파이더스 프롬 마스인 것이다.

본인이 그토록 좋아하지 않았던 영화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벳 골드마인>만큼 데이비드 보위를 기억하고 떠나보내는 데 어울리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앞서도 말했듯이 이 영화는 브라이언 슬레이드를 모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변화와 혼돈, 그리고 그것을 감당해내는 태도에 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려고 <벨벳 골드마인>을 다시 보는데 UFO가 하늘을 가르는 장면이 등장하자마자 심장이 툭, 하고 바닥을 굴렀다. 그동안 눈이 부시게 반짝거리며 빛나셨습니다. 이제 고향별로 돌아가서 재미있게 사세요. 안녕히.

* 이 글은 씨네21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