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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15일 12시 42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16일 14시 12분 KST

네가 싫은 건, 네가 나라서야

[허지웅의 설거지 ] 다자이 오사무와 미시마 유키오의 삶과 죽음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그렇게 쓰고 다자이 오사무는 죽었다. 애인과의 동반자살이었다. 시신은 그의 서른아홉 번째 생일에 발견되었다. 평생에 걸쳐 네 번의 자살기도를 했다. 다섯 번째는 실패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 세 번은 애인과 동반한 자살기도였다. 두 번째에는 애인만 죽고 다자이는 살아남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다자이 오사무를 한심하게 생각했다. 언젠가 여자친구에게 그에 대해 심하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죽는 것조차 혼자 할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 앗아간, 심약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내용이었다. 실은 그녀가 언제나 끼고 있었던 '인간실격'에 질투를 느껴 실제보다 조금 더 부풀려 심한 말을 한 것이었다. 다자이 오사무를 언급하게 될 때면 늘 그 일을 떠올리며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살아 있는 자가 죽음을 평가하는 건 거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의 내막에 관해 알 수 있는 건 죽은 사람뿐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성격적인 결함 때문에 자살한 것이다. 그런 결함들은 냉수 목욕이나 기계 체조와 같은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만으로 충분히 치유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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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 위키피디아

그렇게 말하고 미시마 유키오는 훗날 자살했다. 할복자살이었다. 우익 정치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그는 방패회라는 무장투쟁조직을 결성했다. 천황의 완전무결한 숭고함을 물질문명과 공산주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무장투쟁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방패회 조직원들과 함께 '우수자위대원 표창'을 명목으로 자위대 동부 총감과 면담하던 중 일본도를 꺼내들어 위협하며 인질극을 벌였다. 그리고 총감의 방 발코니에서 천황을 지키기 위해 자위대가 당장 분연히 일어나 쿠데타를 실행해야 한다는 연설을 했다. 연설은 주변 소음 때문에 거의 들리지도 않았고 자위대원들은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이 자리에서 미시마 유키오는 계획한 대로 방패회 멤버와 함께 할복자살했다. 극심한 고통 때문에 할복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명민하기 이를 데 없고 천재성으로는 따를 자가 없었던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의 괴상한 자살은 세계적인 가십이 되었다. 그는 소설 '우국'에서 천황을 위해 목숨을 희생하는 할복을 아름답기 짝이 없게 묘사한 바 있었고 자신의 할복 또한 그럴 것이라 예상했으나 현실의 그것은 소란스럽고 끔찍한 난장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다자이 오사무는 자기 안으로 후퇴하고 침식되다 죽음을 선택했다. 미시마 유키오는 대의에 매료되어 뜬구름 잡는 뜨거움을 주장하다가 허황된 죽음을 선택했다. 누군가는 다자이 오사무와 미시마 유키오를 서로 완전히 상반된 두개의 이미지로 비교한다. 그러나 나는 저 둘이 서로 완전한 닮은꼴이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한 사람은 자기 존재가 버거워 그것을 감싸 안으며 안으로 끝없이 파고들어갔다. 다른 하나 역시 자신을 버거워했으나 안으로 파고드는 대신 천황과 일본의 무장을 핑계로 '극기'와 '남자다움' 따위에 한없이 매료되었다.

미시마 유키오는 저 위의 말 이외에도 다자이 오사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겼다.

"나는 우선 이 인간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인간의 촌스러운 하이칼라 취미도 싫다. 마지막으로 이 인간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연기하는 것 또한 싫다."

생긴 것도 싫고 취미도 싫고 하고 다니는 것도 싫다니 누군가가 싫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이보다 더 노골적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말 자체가 머리를 짜내 싫어하는 이유를 늘어놓아 봤자 결국 무언가를 싫어하는 데에는 이유가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아무튼 당대에 인터넷이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나는 미시마 유키오의 태도가 결국 자기혐오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 두 소설가는 나약하다는 점에서 서로 닮은꼴이었다. 우리 모두가 나약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 나약한 부분을 동반자처럼 짊어지고 그것과 친구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끝내 인정하지 않고 고약한 위악을 내뿜는 사람도 있다. 미시마 유키오는 후자였다. 그는 그걸 용납하기 어려웠다.

일찍이 미시마 유키오는 감기를 결핵으로 속여 2차 대전에 참전하지 않았다. 초기작 '가면의 고백'은 잠재적인 동성애자에 관한 자전적 이야기다. 실제 그가 자기부정형의 게이였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로 여겨진다.(그의 애인이라고 주장하는 후쿠시마 지로 또한 소설을 통해 고백한 바 있다.) 미시마 유키오는 병역을 부정하게 면제받았던 일과 성적 정체성, 그리고 나약한 신체에 대해 매우 창피하게 생각했다. 피트니스 운동과 우익 활동에 병적으로 집착했던 맥락을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그가 운동으로 다져진 몸으로 일본도를 들고 우익 머리띠를 두른 채 찍은 화보를 보고 있으면, 그래서 조금 슬퍼진다. 그는 자신이 했던 말 그대로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연기"하고 있다. 거의 벌거벗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거기에 실제 그 자신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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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 © 한겨레

다자이에게서 지우고 싶은 본래의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미시마는 몸서리를 쳤다. 사람은 상대방에게서 나를 발견했을 때 더욱 격렬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흔히 말하듯이, 그림자는 그것을 부정할수록 더욱더 커진다. 미시마는 스스로를 부정하고 육체적인 단련을 통해 극기에 탐닉했다. 또한 천황을 향한 무사도에 투신하는 자신이야말로 진짜 자신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극단으로 달음박질하다가 끝내 붕괴하고 말았던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와 미시마 유키오는 거의 동일한 인격체가 서로 완전히 양극단의 삶을 선택함으로써 도달한 결과물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끝은 똑같은 자살이었다. 이처럼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는 드물지만 어찌됐든 우리 모두는 어떤 면에서 다자이이기도, 또한 미시마이기도 하다. 우리는 본래의 타고난 부분에 순응해 살아가고, 가끔씩은 그것을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켜 놀라운 성취를 거두기도 한다. 한편 정말 마주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본성이나 실수 앞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현실을 뒤틀어 재구성해버리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왜곡과 거짓, 고통과 외면의 기억 또한 잘 정돈된 예술의 토대 위에 쌓아올리는 데 성공한다.

내 안에 다자이와 미시마의 비율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해본 일이 있다. 아무래도 미시마 쪽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저 두 가지 사이에서 근사한 비율을 찾아보려고 노력했지만, 사실 그게 세월에서 얻어지는 한줌의 지혜와는 별반 관계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오늘도 나는 나와 다투고, 또다시 친구가 되기를 반복한다. 지치는 일이지만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계속될 일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면 거리 위를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슬퍼 보인다. 예민함은 더 많은 것에 공감할 수 있게 만들어주지만 꼭 그만큼 공연한 슬픔을 안겨주기도 한다.

"나는 다자이와는 더욱더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건 아마도 내 안의 어딘가에 다자이와 같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더욱 분발해서 그와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것이겠지요."

미시마 유키오의 고백이다. 나는 이 고백이 굉장하다고 생각해왔다. 니체는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나를 들여다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어둠 안에 머물며 심연과 눈을 마주하고 있었던 사람은 마침내 심연의 눈 안에 비친 자신의 벌거벗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미시마 유키오는 어느 순간 그것을 보았던 것이다. 운이 좋다면 언젠가 나도 그걸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