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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0일 09시 07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20일 14시 12분 KST

오늘도 정의로운 싱글이 되게 해주세요

[연애하지 않을 자유]

어서 와, 비연애 칼럼은 처음이지? 무가당이라고 광고하는 음료수에 설탕이 가득한 세상인데, 연애 칼럼 코너에 싱글이 좀 끼면 어떤가. 첫 연재이니 자기소개부터 하자면, 25년간 연애하지 않으면 학이 된다는 속설과 달리 오늘도 튼튼하게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사는 영장류이다. 비연애인구 전용잡지 <계간홀로>를 독립출판으로 만들면서 산다. 싱글을 불쌍한 존재, 짠한 존재, 어딘가 하자가 있는 존재로 보고 조롱하고 연민하는 세상의 편견에 맞서 '비연애' 영역을 확보하고자 오늘도 읽고 쓰고 설친다. 주님, 오늘도 정의로운 싱글이 되게 해주세요, 룰루팡 룰루피 룰루얍☆ 잡지를 발행한 지 어느덧 2년 반째, 이렇게 똑같은 소개를 반복하다보니 좀 민망하지만, 혜성처럼 전진하는 그룹이라는 인사를 17년째 써먹는 아이돌도 있으니 넘어가자.

연애하지 않을 자유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일단 몇 개의 산을 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눈을 홉뜨고 나에게서 어떤 '하자'를 찾아내려고 한다. 연애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요소가 하나라도 포착되면, 그때부터 내가 하는 모든 말은 '열폭'이나 '정신승리'로 번역된다. "못하면서 안 하는 척한다"거나, "자유 되게 많을 것 같은데"라는 빈정거림도 간간이 들린다. 이렇게 상대방의 비연애 상태를 폄하하는 일은 매우 쉽다. 그것은 개그 프로그램과 같은 각종 미디어,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하지만 '~하지 않을 자유'가 성립되지 않는 '~할 자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머리 자를 자유가 없는 두발 자유는 그저 '머리를 길러야 하는 억압'에 불과하듯, 이는 비단 연애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이 낯선 개념을 반기면서 "그래,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다!"고 기뻐하는 사람도 있다. 대체로 '너는 멀쩡한데 왜 연애를 안 하냐'는 압박에 시달리거나, '이만하면 어디 가서 안 꿀리는데...' 하고 생각하는 이들이 쌍수 들고 환영하더라. 하지만 '못하는' 싱글과 '안 하는' 싱글의 구분은 매력 자본이나 경제적 능력 등의 검증을 필요로 한다.

비연애가 무능력에서 기인한 것이 아님을 입증하려는 욕망은, 결국 '연애인구=능력자' '비연애인구=어딘가 하자가 있는 사람'의 도식을 반복 재생산할 뿐이다. 여러분, 핏발 선 눈을 잠깐 감았다 뜨고, 주변을 둘러보면 알 수 있잖아요? '연애 중'이라는 상태는 그 사람의 됨됨이나 가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그렇다면 왜 여러분의 전 ××가 그렇게.... 연애는 그저 그 사람이 그 순간에 선택해서 누군가와 맺고 있는 관계일 뿐이다. 그것은 선택할 수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삶의 형식 중 하나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나는 연애를 안 하기도 하고, 또 못하기도 한다. 그 사실을 감추지 않는 것은 자신의 매력 없음을 폭로하는 일이라는 조언은 넣어둬, 어허 넣어둬. 이미 지겹게 들었으니까. 그 말은, 굳이 따지자면 절반만 맞다. 아무래도 나는 이성에게 어필하는 매력은 없는 모양이다. 대신 다른 방면의 매력이 터진다. 그것은 나라는 인간의 특성이고, 나를 둘러싼 관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나라는 인간의 역사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연애 대상으로서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것은 멋진 재능이지만, 없다고 해서 비참하거나 매력 없는 인간이 아니라는 뜻이다. 모든 인간이 연애에 최적화될 수는 없고, 세상의 관계는 연애 이외에도 무궁무진하니까!

물론 이렇게 '연애하지 않을 자유'를 주장하기까지 나에게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기승전 "그러니까 연애해" 하고 머리채를 잡는 세상이니, 날 때부터 자존감 대왕이 아니면 버티기 쉽지 않거든. 연재는 이제 시작이니, 그 이야기는 차근차근 하도록 하자.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