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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15일 10시 06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16일 14시 12분 KST

#팬덤내_사이버불링_아웃

Compassionate Eye Foundation/Jasper White via Getty Images

1.

인생의 절반 이상을 소위 '빠순이', 전방위적 케이팝 덕후로 살아온 나는 '빠순이 발로 차지 마라'라는 칼럼에서 '빠순이를 빠순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빠순이뿐'이라는 말을 한 적 있다. '빠순이'라는 집단의 특성 때문이다. 사회가 어린 여성의 취향과 소비를 맹목적이고 천박하고 일시적인 것으로 후려쳐온 현상 속에서, 제대로 된 소비자로서의 권리도 누리지 못한 팬덤은 손쉽게 맨스플레인과 훈계의 대상이 된다. 얼마 전 "왜 팬덤에서 자성적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보느냐"라는 인터뷰 질문을 받았을 때, 내가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은 "외부에서 진단하는 '빠순이 담론'이 자꾸 헛발질 하는데 열 받아서, 당사자들이 직접 말하기 시작한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외부의 목소리가 자주 핵심을 비껴나가 부유하는 이유는 팬덤을 멋모르는 어린 여성으로 간주하여 그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개인들의 욕망과, 집단의 지속적이고 역동적인 동력을 파악하지 못한 탓이지만, 동시에 팬덤이 직접 '굴러본' 사람들만 아는 현상과 룰이 지배하는 또 하나의 '월드'라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돌 산업은 그 규모나 영향력 면에서 더 이상 '철없는 어린 여성'들만의 하위문화가 아니다. 다양한 분석과 진단의 시도가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빠순이와 이 현상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빠순이 당사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방탄소년단 여성혐오 공론화 계정이 나오고, 아이돌 가사의 데이트 폭력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잡지 빠순〉이라는 독립 잡지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척 설레고 고무적이었다. 아이돌 산업은 지금껏 팬덤의 무급 노동에 많은 것들을 아웃소싱하고 착취하며 몸집을 불려왔는데, 팬덤이 연대하여 자성적이고 비평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이를 뜯어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령 소비자의 기본 권리를 찾고(한겨울에 야외에서 몇 시간씩 대기하게 한다거나, 경호원들이 팬들을 때리고 폭언을 한다거나, 비공개 영상 등을 볼모로 조회수를 올리게 하는 행위 등이 대표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관행이다) 아이돌 문화를 비평하고 소통함으로써 기획사나 소속사가 안일하게 생산하거나 자가 복제해온 콘텐츠의 질을 높이는 것이 가능하다.

대중문화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영향을 받고 또 흐름을 이끌어가는데, 아이돌 산업 역시 이 갈래에 속해 있다. '시커먼스'가 국민 개그였을 만큼 인종차별에 무감한 나라였지만, 케이팝의 향유 범위가 이미 지리적 의미에서 'K'를 넘어서고 멤버들의 국적이 다양해진 상황에서 멤버 개개인이나 콘텐츠 생산자에게는 민감한 인권 감수성이 요구되는 식이다. 아이돌 문화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그것을 가장 잘 이해하고 향유하고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이기도 한, 팬덤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와 움직임은 시도와 동시에 즉각 거센 반발에 부딪힌다. 방탄소년단의 여성혐오 공론화 계정처럼 유의미한 성과를 낸 사례도 있지만(소속사로부터 피드백과 사과를 받았다), 세븐틴의 페미니즘 서적 선물 시도처럼 기획 단계에서 좌절되기도 했으며, 현재진행형인 샤이니 월드의 '사이버 불링'처럼 발화자가 개인으로 특정될 경우 마녀사냥이 일어나기도 한다. 바로 앞서 말했던, 팬덤을 지배하는 '그들만의 룰' 때문이다.


사이버 불링은 #팬덤내_사이버불링_아웃 이라는 해시태그에 참여하거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계정까지 확산되고 있다.


2.

'사이버 불링(cyber bullling)'이란 특정인을 사이버상에서 집단적으로 따돌리거나, 집요하게 괴롭히는 행위 또는 현상을 일컫는다. 언제나 어디서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쉽고 빠르게 다수에 편승하여 타인을 괴롭히고 파괴할 수 있다. 전통적인 린치 방식과 달리 최소한의 물리적 접촉조차 없다는 특징 때문에, 죄책감이나 도덕적 감각 같은 안전장치는 금방 망가진다. 온/오프라인의 구별이 무의미해진 현재, 현실의 괴롭힘이 사이버 상으로 이어지고 또 사이버 불링이 현실의 위협으로 나타나고 있다.

샤이니 멤버 종현의 콘서트에서 인종차별적 VCR과 호모포빅한 발언을 문제 삼은 트위터리안 L씨에 대한 샤이니 팬들의 사이버 불링과 오프라인(콘서트장)에서의 언어폭력 경위는 웹 매거진 iZE의 기사 〈2016년의 아이돌 팬덤-'꽃길만 걷자'는 무엇을 배제하는가〉에 잘 정리되어 있다. (링크) 흥미로운 것은 해당기사가 나온 이후 팬덤의 반응이 이 기사의 의의, 즉 "내 아이돌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고 듣게 하려는 '꽃길만 걷자'라는 캐치프레이즈가 팬덤 내의 다른 목소리(비판적 시각)를 탄압하고 척결해야 하는 대상으로 설정, 공격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을 그대로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항의메일과 전화를 넣고, 언론위에 제소하겠다거나, 한 쪽 의견만 보고 사실을 왜곡해서 기사를 쓴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사이버 불링은 L씨에만 한정되지 않고, #팬덤내_사이버불링_아웃 이라는 해시태그에 참여하거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계정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 글이 올라가면 나 역시 블락 리스트(트위터의 '차단' 기능 서비스. 팬덤 내 블랙 리스트이며, '팬코 트페미'로 카테고리화된 계정 사용자들의 목록. L씨 역시 블락 리스트에 있었다)에 이름을 올리거나 사이버 불링의 대상이 될 것이다.

사이버 불링을 하는 이들의 주장은 L씨와, 샤이니나 샤이니의 콘텐츠에서 미소지닉한 부분을 지적해온 소위 '팬코 트페미(팬 코스프레를 한 트위터 페미니스트)'들이 샤이니 멤버들의 사진을 올려놓고 성희롱적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해당 자료들을 꼼꼼히 보니 주로 문제가 된 것은 L씨의 발언이 아니지만, L씨가 블락 리스트에 있다는 이유로 함께 리스트에 있던 사람들의 문제 발언을 묶어서 '가해자들'로 통칭하고 있었다. 아이즈의 기사가 잘 지적하고 있듯, 아이돌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은 아이돌 산업에서 아주 중요한 윤리적 의제이다. 아이돌은 다양한 층위의 매력 자본을 파는 직업이고, 여기에는 성적 매력과 멤버들 간의 관계성도 포함된다. 무대에서 옷을 벗는 등의 섹스 어필, '남친 짤', '뫄뫄 커플 떡밥'이 여기에 해당한다. 기획사는 이것을 적극적으로 조장하고 판매하며, 팬덤은 대상으로서의 아이돌과 실존하는 인간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며 덕질한다. 팬덤은 아이돌을 대상화하는 것이 정체성인 집단이지만(우리는 개인으로서의 아이돌을 절대 알 수 없으며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그저 보이는 모습을 퍼즐처럼 자신의 해석에 따라 짜맞출 뿐. 이것도 대상화이다) 동시에 그들을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지켜주고 싶은' 분열된 욕망의 소유자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모든 팬덤이 매달려 석달 열흘을 토론해도 모자란, 불가분해보이는 아이돌의 성적 대상화가 그러나 실재 인물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라는 심오한 주제이다. 아이돌의 생활을 어디까지 소비할 것인지(사생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공항 사진은? 광고 촬영 현장에 따라가 카메라가 꺼진 상황을 촬영하는 것은? 가족의 결혼식 사진은?), 성적 욕망의 표현은 어떤 경로를 거쳐 다듬어지고 제지되어야 하는지, 기획사나 콘서트장의 떼창이 멤버가 원하지 않는 노출("벗어라! 벗어라!")을 강요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등... 토의할 주제를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다.


아이돌에 대한 성희롱과 성적 대상화에 대한 팬덤의 자성과 논의는 공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지 그런 발언을 한 개인을 족치는 방식은 아니다.


3.

그런데 현재 L씨와 블락 리스트의 계정주들이 '성범죄자', '악질 팬코 성희롱범'이라는 논리에는 이러한 고민이나 과정이 빠져 있다. 아이돌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은 나쁜 범죄라는 명제만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 만약 블락 리스트의 계정주들이 '성희롱'이라고 트집 잡힐 만한 발언을 하지 않았다면 다른 행동이나 발언이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팬덤의 누구나 사이버 불링의 타깃이 될 수 있다). 살아 있는 누군가를 성적 대상화하는 것은 당연히 윤리적 재고를 요청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성적 대상화가 아이돌 산업에서 어떤 의미인지 다 알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유희하거나 소비하거나 최소한 묵인해왔던 팬덤이 갑자기 "성적 대상화는 성희롱이고, 범죄다!"라고 나온다면 논지를 흐리는 물타기 그 이상은 아니게 된다. 지금도 트위터에 L씨의 닉네임을 치면 'L 피코'라는 단어가 먼저 뜨는데, '피해자 코스프레'를 뜻하는 이 말은 L씨가 당한 온/오프라인 피해를 지우고, '성희롱 가해자'라는 날조된 이미지만 남긴다. 아이돌에 대한 성희롱과 성적 대상화에 대한 팬덤의 자성과 논의는 공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지 그런 발언을 한 개인을 족치는 방식은 아니다. 그것은 다수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폭력에 불과하며, 성적 대상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문제를 비판하고 싶다면, 우선 개인에 대한 사이버 불링을 멈춘 후 논의와 토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힘들다. 팬덤은 장르 불문 꾸준히 다른 목소리를 내는 소수를 색출하고 축출해왔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페미니스트 팬들이 주로 트위터에만 몰려 있다는 것은 이러한 발언이나 문제 제기가 팬덤의 커뮤니티에서는 불가능한 상황을 의미한다. 이 사태는 사실 샤이니 팬덤이 유난하다거나, 그들이 특별히 악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팬덤 특유의 방어적이고, 집단주의적인 특성이 시기와 맞아떨어져 우연히 발현된 케이스이지 크고 작은 규모의 사이버 불링은 앞서 예로 들었듯 다른 팬덤에서도 빈번하다. 어찌 보면 이 문제는 L씨에게서 치명적인 어떤 '약점'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커지는 중인데, 제대로 된 구실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L씨는 신속하게 매장되고 이 사태가 알려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얼마나 많은 팬들이 지워졌을까.

사이버 불링은 비단 팬덤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개인을 다수가 응징하고 발언권을 빼앗아 방관하고 순응하는 문화를 만들어온, 사회 전체의 분위기와 결합한 결과이다. 이것은 인터넷 사용 문화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폭력의 멀티태스킹적 면모를 보여주는 징후이기 때문에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차원의 고민과 접근이 필요하다.


익명화되고 개인화된 팬덤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이 연대하거나 의견을 교환할 기회조차 박탈한다.


4.

팬덤이 꽃길에 집착한다는 것은 그만큼 팬질이 가시밭길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앞서 이야기한 '팬덤 특유의 방어적이고 집단주의적 특성'은 팬덤의 모든 행위를 철없고 맹목적인 것으로 후려치는 사회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다. 아이돌에게 쏟아지는 악플이나 루머에 대처하기에 기획사는 너무나 무능하고 소극적이고, 이미지가 곧 생명인 아이돌은 스스로 방어하거나 공격할 수 없으며,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자고 일어나면 다른 아이돌이 치고 올라오는 정글이다. 팬덤은 부정적인 것들로부터 아이돌을 보호하고자 하고, 이 과정에서 '화력'이 중요해진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팬덤의 화력은 곧 아이돌의 인기 척도이기도 한데, 음원 차트의 성적을 위해 스트리밍을 돌리거나 뮤비 조회수를 올리거나 댓글 지원을 나가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팬덤이 으레 해야 할 노동, 즉 '꽃길'을 가꾸는데 참여하지 않거나 JINJUNSUNG을 입증하지 못하는 팬들은 '입스밍(입으로만 스밍한다는 뜻)', '까빠(까면서 빠는 팬)', '겸덕(두 가수 이상을 좋아하는 팬)' 등으로 네이밍 되고 규탄받는다. 화력을 위해서는 단결해야 하고, 단결하려면 분열을 조장하는 '이의'가 있으면 안 된다. 이것이 팬덤을 지배하는 룰이자 팬덤의 집단주의적 성격이다.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무엇이 해일이고 무엇이 조개냐를 두고 박터지게 싸우며 때로는 '대의'를 위해 소수자를 탄압하는 정치학은 팬덤만의 것이 아니지만, 익명화되고 개인화된 팬덤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이 연대하거나 의견을 교환할 기회조차 박탈한다. 커뮤니티 내에서 다른 의견을 내거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말을 하면 '분탕 종자' 등으로 몰려 아이디 공개를 당하고(이것을 '효수'라고 한다) 쫓겨나고 이러한 과정은 '본보기'로서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추억의 가수들이 컴백하면서 '머글'로 살던 친구들-이라고 쓰고 냉동인간이라고 읽는다-이 2016년의 팬질을 이해하지 못해 우왕좌왕할 때, 나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친구들에게 조언했다. "일단 튀면 안돼." 과거 손발이 오그라드는 닉네임으로 인터넷 세상을 누비며 팬질했던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해서 방울눈을 뜨고, 나는 덧붙인다. "최근의 팬덤은 익명 커뮤니티가 기본이고, 이것은 친목을 막기 위한 목적이지만 모두가 공평한 새우젓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한때 나도 새우젓이라는 표현을 좋아했다. 팬덤이 같은 취향을 공유한다는 이유만으로 나이, 성별, 계급, 성정체성, 지역, 학력 등 다양한 요소들을 뛰어넘어 평등한 관계를 이루고, 뜨거운 취향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때 그랬다.

그러나 새우젓이라는 표현은 입체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을 지우고 팬덤의 룰에 따라 '얼굴 없고 목소리 없는' 진짜 새우젓이나 면봉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으로 탈바꿈했다. 튀면 안된다는 말은 처음에는 누군가를 특정할 수 있는 개인 정보를 올리거나('셀털', 즉 셀프털이) 표식과 같은 이모티콘, 말투 등을 쓰지 말라는 뜻이었지만, 이제는 획일화된 팬의 이미지에 자신을 우겨넣는 일이 되었다. 룰은 누가 정하는가? 보통 불문율이 있지만 팬덤 내부의 사소한 규율이나 분위기는 '대세'를 따른다. 팬덤 내에서도 정보 보유 수준이나 팔로워 수에 따라 '네임드'가 존재하며 이것이 계급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주로 사진을 찍는 '대포' 홈마와 팬픽 작가, 팬아터 등이 피라미드 계급의 최상위를 차지하는데, 팬들이 새우젓이라면 이들은 대하 정도의 존재감이다. 네임드들은 주로 아낌없는 사랑과 무조건적인 지지를 드러내며 팬덤이 실천해야 할 사랑의 양식을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이들의 의견이 곧 여론이나 룰이 되기 쉬운 구조이다. 그 어떤 대포도 오늘의 내 아이돌이 못생겨서 사진 찍을 맛이 안 난다거나 뮤직비디오에서 소수자 혐오적인 부분이 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 실수로 그런 말을 했다가는 저격'을 받거나 색색깔의 '알계'가 나타나 그 무엄한 발언에 대한 자필 사과문을 요구할지니.

이 지점에서 질문하고 싶다. 동일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 놓인 무수한 심연을 한 번에 건너뛰어 연결하는 강력한 사건이자 인력이지만, 그 사실이 1%의 첨가로 딸기우유가 되어버리는 딸기향의 마법처럼 나의 정체성과 태도를 결정짓게 두어도 괜찮은가? 사랑했을 뿐인데 어째서 팬덤의 룰을 지키고자 나의 욕망과 의견을 지우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아이돌과 콘텐츠에 대해 입을 다물고 눈을 감고, 더 나은 것을 누릴 즐거움을 포기하고, 벌거벗은 임금님 앞에서 동공지진하며 찬양하는 기분으로 덕질하다가, "임금님이 벌거벗었네"라고 말하는 사람을 패는 팬덤의 용병333으로 남아야 하는가? 물론 벌거벗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누군가가 벌거벗었다고 말한다면 최소한 왜 그런지, 그렇게 보일 수 있는 지점은 무엇인지, 벌거벗지 않은 것으로 보이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함께 궁리해보는 방향일 수는 없는가?


빠순이는 새우젓이나 우매한 어린 양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비판하고 변화할 줄 아는 개인이고 따라서 특정 규범에 맞추거나 재단할 수 없다.


5.

나는 케이팝 빠순이인 동시에 케이팝 팬덤의 빠순이(?)이기도 하다. 시대별로 확연하게 나뉘는 팬덤의 특성이나 트렌드, 익명의 공동체로서의 공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순정에 자주 감동받고 위로 받았다. 모 만화 작가님의 말처럼 나도 리모콘 돌릴 힘만 남아있으면 엠카운트 다운을 보며 시대의 흐름과 맞물리며 돌아가는 아이돌 콘텐츠와, 드물고 귀한 재능을 가진 이들을 보고, 또 팬덤이 어떤 신문물로 듣도 보도 못한 덕질 방식을 개척하는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팬덤 문화가 아이돌 산업과 함께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뻗어나갈 수 있고, 팬덤에 속한 개개인이 행복하고 안전하고 충만한 방향으로 덕질을 계속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일련의 사태들은 팬덤 문화가 지금 그것을 결정하는 기로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자정 능력을 잃은 공동체는 장르 불문하고 도태되거나 사라질 수밖에 없다. 팬덤 스스로가 문제를 제기하고 더 나은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언어를 잃는다면 결국 빠순이나 팬덤 문화는 영원히 맨스플레인과 계몽의 대상으로 남을 것이다. 팬덤이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아이돌이 이를 수용하여 변화하는 방향과, 바깥의 누군가가 그것을 지적하고 "인종차별적 콘텐츠의 문제점도 모르는 빠순이"로 프레임을 짜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빼앗기고 왜곡 당한 것으로 족하다. 더 이상 빠순이가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존재임을 알리는 것을 미룰 수 없다.

왜 아이돌에게 정치적 올바름을 요구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이 문화여야 하기 때문이다. PC함이나 비평을 거부한다면, 예술이나 문화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물론 그래도 좋다면, 거창한 문화니 예술이니 비평이니 다 싫고 꽃노래만 듣고 부르고 싶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게 편협하고 폐쇄적인 세계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특별한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안목의 소유자이고, 강렬하게 매혹될 줄 알기에.

내 아이돌에게 흠집을 내려는 세력은 시대를 불문하고 존재해왔다. 그러나 이제 빠순이는 아이돌이 완전무결하고 매끄러운 '우상'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안다. 살아있는 인간은 언제나 실수하고 잘못을 저지르고, 그것을 고치고 더 나은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흠집을 내거나 이미지를 나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더 나은 것을 만들고 향유하려는 시도이다. 여성혐오적이거나 퀴어포빅한 내용을 지적함으로써 더 풍부하고 섬세하고, 진부한 관습을 넘어서는 콘텐츠들을 접할 수 있고, 차별적이거나 혐오적인 사상 대신 아름답고 좋은 것들을 알아보는 사람을 좋아할 수 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나'의 존엄이나 행복에도 영향을 끼친다.

빠순이는 새우젓이나 우매한 어린 양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비판하고 변화할 줄 아는 개인이고 따라서 특정 규범에 맞추거나 재단할 수 없다. 팬덤의 룰은 아이돌만큼이나 스스로를 돌보고 팬덤이 겪는 차별을 개선하는 쪽으로 기울어져야 할 것이다. 연대하고, 소통하고, 풍부한 논의의 장이 펼쳐지는 리얼 새우젓 월드를 꿈꾸며, 해시태그로 마무리한다. #팬덤내_사이버불링_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