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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9월 06일 06시 51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1월 06일 14시 12분 KST

나의 대학, 우리의 대학

아뿔싸! 학교 밖에서, 이를테면 전국을 순회하면서, 현 정부의 대학구조조정 정책을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하던 중에, '나의 대학'인 덕성여대가 대학살생부라고 불리는 "정부재정지원제한 대학"에 끼고 만 것이다! 마치 큰 싸움이 벌어진 전쟁터에 나가 있는 사이에 고향마을이 적의 습격을 받은 것 같이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되었던 이 제도가 막을 내리는 마지막 해에, 불운하게도 그 희생양이 된 것이다. 교육부의 강압적이고 비교육적인 기업식 구조조정 정책의 희생물이 어찌 덕성여대뿐이겠는가?

덕성여대

내가 재직하는 대학은 전국에서 몇 안 되는 여자대학 중의 하나다. 미혼의 젊은 학자로 처음 이 대학의 교단에 섰을 때가 1985년이니 이번 학기를 마치면 30년을 꽉 채우는 긴 세월을 우리 학생들과 함께 한 셈이다. 이 작은 여자대학에서의 30년! 스스로 생각해도 놀라운 나머지 픽 웃음이 나온다. 이쯤 되면 수업에는 귀신이 다 되어 별로 새로울 것도 없고, 지겨워지기까지 할 법도 하다. 그런데 웬걸, 나는 요즘 수업이 즐겁다. 학생들이 옛날 같지 않다는 이야기도 많지만, 솔직히 그런 말을 들으면 겉으로는 동의하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고개를 젓는다. 알고보면 다 나름대로 힘겨운 삶을 버티면서 모색하고 있는 이 시대의 젊음들이니, 교실에서 글을 매개로 그들과 나누는 대화와 소통만큼 나같이 나이든 선생에게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건 '너의 학교'라서 팔이 안으로 굽기 때문"이라고 공박하는 친구의 목소리도 들린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사실 청춘을 바친 곳이다보니 어찌 남다른 정이 없을까.

그렇지만 내 '즐거운' 수업을 광고하자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심각한 상황에 빠져 있는 '나의 대학'에 대해서, 나아가 이 나라의 모든 대학 즉 '우리의 대학'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서다. 수업 이야기부터 하니까 내가 수업에 몰두하는 무슨 대단한 선생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다. 그런데 꼭 그렇지 못한 것이 요즘 내 형편이다. 최근 몇 년간 사실 나는 전공인 영문학 공부조차 좀 소홀히 하면서 대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학교 안팎에서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왔다. 우선 이명박 정부가 멀쩡한 나의 대학을 뜬금없이 '정상화'시키겠다면서 분규 끝에 쫓겨났던 구재단을 대학에 밀어 넣으려는 바람에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같은 처지의 다른 대학 교수 학생들과 연대투쟁조직을 만들어서 수년간 이 구재단 복귀사태를 막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사회적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의 밀어붙이기로 수많은 대학들에 구재단이 복귀하였고, 나의 대학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어서 들어선 박근혜 정부는 대규모의 대학 구조조정 정책을 강행하기 시작했다. 고질화된 사학문제만이 아니라 국공립까지 포함하여 한국의 대학 전체가 큰 위기를 맞고 그야말로 전환기에 접어든 것이다. 지난 6월 국내 최초로 대학을 연구하는 학술단체인 한국대학학회가 출범하게 된 것도 대학사회의 위기감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나 자신 이 흐름의 중심에 서 있다 보니, 어느새 대학전문가니 교육운동가니 하는 과분한 칭호까지 얻게 되었다.

그런데 아뿔싸! 학교 밖에서, 이를테면 전국을 순회하면서, 현 정부의 대학구조조정 정책을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하던 중에, '나의 대학'인 덕성여대가 대학살생부라고 불리는 "정부재정지원제한 대학"에 끼고 만 것이다! 개학을 불과 사흘 앞 둔 지난 8월 29일이었다. 마치 큰 싸움이 벌어진 전쟁터에 나가 있는 사이에 고향마을이 적의 습격을 받은 것 같이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되었던 이 제도가 막을 내리는 마지막 해에, 불운하게도 그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것도 수도권 4년제 대학으로서는 유일하게! "재정지원제한 대학"으로 지정되면 부실대학 후보가 되어 심하면 퇴출의 수순을 밟게 된다는 것이 일반화된 인식인지라, 이를 알게 된 학생 교수 동문들은 충격이 컸다. 창학 100주년을 바라보는 유서깊은 대학으로서 이런 오명을 쓰게 되어 이 날을 "교치일"이라고 자조하는 소리까지 나왔다.

나 또한 설마 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으니 탄식이 나오긴 했다. 그러나 솔직히 별로 충격은 받지 않았다. 곧 종식될 과거 제도의 희생물이 되어 기가 막히긴 하나, 도대체 덕성여대가 수도권 유일의 '부실대학' 후보자로 뽑혔다니, 소가 웃을 일이기 때문이다. 수도권에는 모두 70여개의 4년제 일반대가 있다. 덕성여대는 이 가운데 상위권에 속하는 대학은 아니지만, 서울소재의 비슷한 대학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기반과 교육환경을 가지고 있고, 학생 수가 작다보니 예산 규모 탓에 정부의 지표기준을 훌쩍 넘어서지는 못하나 재정적으로나 교육적으로나 별 문제 없이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해온 전통사학이다. 전국대학 10위권에 드는 충분한 적립금에다 법정부담금을 제대로 내는 30프로 내의 대학에 드는 점에서 재정이 비교적 튼튼하고, 분규니 구재단 복귀니로 진통을 겪기는 했으나 현재 이사회는 상지대 등 복귀구재단의 횡포로 몸살을 앓는 다른 대학들과는 달리 학사개입을 거의 하지 않으며, 오히려 대학평의원회가 정상적인 기능을 하고 교수직선의 인사위원회가 구성되어 있는 등 민주적인 거버넌스가 확립되어 있다. 즉 교육부가 대학에 요구하는 대학운영의 민주화를 일정하게 달성한 곳이다. 그런데 그런 대학이 어째서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이런 굴레를 쓰게 되었을까?

한마디로 지난 정부에서 대학을 강제로 구조조정할 목적으로 만든 문제투성이 평가기준 때문이다. 비중이 큰 취업률의 경우 그동안 대학을 취업학원으로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빗발쳐서 현 정부 들어와서 인문 예체능계는 평가대상에서 제외하기도 했지만 실은 어느 학문이라고 다르겠는가? 취업률 지표는 세계 어느 나라의 대학 평가기준에도 없는 부적절한 기준으로 진작 완전히 폐기되어야 마땅했다. 전임교수강의 담당비율은 또 어떤가? 이 비율을 높이려고 각 대학들이 무리하게 전임들에게 강의를 떠맡기고 강좌 수를 줄여서 대형강의를 늘리는 바람에 수많은 학문후속세대 강사들이 일자리를 잃고 교육의 질은 질대로 나빠졌다. 그런데 덕성여대를 재정지원제한 대학에 걸리게 한 주된 지표가 바로 이 취업률과 전임교수강의 담당비율인 것이다. 도대체 그것이 대학교육의 질이나 재정의 건전성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이뿐이 아니다. 이번 재정지원제한대학 지정은 순전히 지표에 따른 것만이 아니라, 여러 후보대학들 가운데서 추가로 정원감축을 하는 경우 지정에서 제외하는 구제절차를 두었다. 수도권에서도 애초 많은 대학들이 이 범주에 들었으나, 덕성여대만이 정원감축을 거부함으로써 결국 '독박'을 쓰게 된 셈이다. 대학을 평가하면서 이런 유의 뒷거래가 있다는 것 자체가 추문이다. 한마디로 교육부가 대학에 오명을 쓸 것이냐 정원을 줄일 것이냐의 택일을 강요하는 셈인데, 이것이 과연 교육부가 할 행동인가? 나는 덕성재단 이사회가 하는 일에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명씌우기를 무기로 정원줄이기를 강요하는 교육부의 요구를 거부한 것은 백번 잘했다고 생각한다. 학교 규모 상 받아들일 수 없는 객관적 상황도 상황이거니와 그런 비교육적인 요구는 학교기관으로서는 거부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기도 하다. 경기도의 한 대학은 최근 감사결과 수많은 비리가 드러난 문제사학임에도, 무려 15프로 감축안을 수용한 덕으로 무사했으니, 교육부의 이번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지정과정은 한편의 소극을 방불케 한다.

그러나 이렇게 '나의 대학'이 교육부의 그릇된 정책방향 때문에 억울하게 오명을 쓰게 되었음을 폭로한다고 해서 풀리지 않는 곤경이 '우리의 대학' 전체에 있다. 교육부의 강압적이고 비교육적인 기업식 구조조정 정책의 희생물이 어찌 덕성여대뿐이겠는가? 최근 몇 년간 비슷한 경로를 거쳐서 오명을 쓰고 교육부 기준에 맞추려고 온갖 편법까지 마다하지 않으면서 지표 끌어올리기에 매진한 대학들은 한 둘이 아니다. 실제로 전국의 많은 대학들이 교육의 질이나 환경의 개선보다는 취업률이 높거나 돈이 되는 방향으로 대학을 구조조정하는 바람에, 기초학문이나 인문학 등 대학의 근간을 이루는 학과들이 폐과되는 등 대학교육의 본령이 무너지는 현상을 우리는 목도해온 것이다.

나는 묻는다. 설혹 '나의 대학'이 그런 오명을 벗어났다해도 '우리의 대학'이 겪는 심각한 문제가 남의 일일 수 있겠는가? 그동안 전국을 순회하면서 나는 지역의 많은 대학들에서 정부의 이같은 그릇된 정책이 빚어놓은 '피눈물나는' 한국 대학의 현실, 어떻게 지표경쟁이 대학교육의 기본원칙과 틀조차 망가뜨리고 있는지를 목도하였다. '나의 대학'이 이런 불명예와 불이익을 당하게 되면서 '우리의 대학'의 현실은 더 절박하게 다가온다. 어떤 분은 '나의 대학'이 곤경에 처했으니 앞뒤 가리지 말고 우선 발등의 불부터 끄라고 충고하시지만, 나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의 상황에서 내 발등의 불은 꺼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남의 발등으로 옮겨갈 뿐이기 때문이다. 대학을 무한경쟁 속에 몰아넣고 이를 무기로 대학을 통제하고 강압해온 그 왜곡된 구조를 인식하고 여기에 맞서는 것, 그것이 너와 내가 함께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내 발등의 불을 남에게 넘길 것이 아니라, 그 불을 꺼트리기 위해 서로의 발을 내밀어야 할 때가 아닌가? 그러니 나의 사랑하는 학생들이여, 정부재정지원제한 따위에 기죽지 말고 더 높은 꿈을 향하여 당당하게 나아가기를!